551. 철학의 힘(1) (김형철著, 위즈덤하우스刊)

부제: 만족 없는 삶에 던지는 21가지 질문

by 물가에 앉는 마음

‘천천히 낯설게 봐야 합니다. 놀라는 것은 능력입니다. 아이들의 능력은 놀라는 것입니다. 놀라는 것은 감정이입이 됐다는 겁니다. 그 현상을 뇌리에 박으면서 경험하는 겁니다.’(박웅현著 여덟 단어 중에서)

말을 하기 시작하는 아이들은 ‘이게 뭐야?’를 입에 달고 산다. 세상 모든 것이 궁금한 시기라 질문이 많은데 성인이 되어 많은 것을 알게 되면 호기심과 물음표가 없어지고 시니컬하게 변해 매우 무미건조한 느낌표만 남는다. 심지어는 ‘세상 사는 게 그렇지 뭐!’ 이 정도가 되면 세상사는 재미가 없다.

이 책은 철학이나 인문학의 입문서 정도에 해당된다 하겠다. 비평가가 아니므로 문학적 가치는 모르겠으나 김형석 교수님의 수필집 ‘백년을 살아보니’에 이어 근래 읽었던 책 중에 가장 유익한 책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질문을 만들어 내는 근원적 힘이 인문학이라 했는데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해서인지 다양한 질문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질문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남의 질문 정도는 들어봐야 하므로 책을 집어 들었다. 사실 아래 나열한 21가지의 질문은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지나쳤던 질문도 있고, 저것도 질문인가? 하는 것도 있다. 그중 몇 가지는 궁금했던 질문이며 답을 찾기 위해 이 책 저 책을 기웃거렸던 것이기도 하다.


1. 인생은 왜 짧은가?

2. 삶은 왜 불공평한가?

3.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인가?

4. 어떻게 살아야 가치 있는 삶인가?

5. 왜 그토록 행복을 갈망하는가?

6. 어떻게 하면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는가?

7. 일에서 어떻게 만족을 얻을 것인가?

8 정의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9. 피자를 나누는 가장 정의로운 방법은?

10 열 명을 살리기 위해 한 명을 죽일 것인가?

11. 법은 옳고 그름을 정의할 수 있는가?

12. 왜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하는가?

13. 사람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부도덕 한가?

14 탐욕을 부리면 왜 안 되는가?

15. 모든 것이 결정된 세상에서 나는 자유로운가?

16. 왜 역지사지가 필요한가?

17. 용서는 왜, 어떻게 하는 것인가?

18. 엿듣기와 엿보기는 늘 나쁜 일이가?

19. 약속은 꼭 지켜야 하는가?

20. 불편한 진실을 말해야 하는가?

21. 인간에게 죽을 권리를 허용해야 하는가?


프롤로그

철학과 입시생들의 면접을 해보면 예나 지금이나 모두 부모와 싸우고 온다. 철학을 전공하겠다고 하는 순간 전쟁 시작이다. ‘하고 많은 전공 중에 왜 하필 철학을 하겠다는 거냐. 너 그럼 굶어 죽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거 공부해서 뭐 하려고 그래’ 1973년 연세대 철학과 원서를 쓸 때의 나도 그랬다. 부모님께서 완강히 반대하셨지만 나는 무슨 생각인지 철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 그 쓸모없는 철학으로 더 오래 살아남았다. 철학, 인문학의 쓸모없음에 쓸모 있음이 있다.

실용을 앞세우는 분야일수록 정신없이 쏟아지는 이론들이 다음날이면 폐기 처분된다. 그리고 철학은 2500년 전 스승들의 말씀이 그대로 남아 우리에게 지혜와 통찰을 준다. 그 쓸모없음으로 인해 고전으로 오랫동안 살아남았다.

철학의 힘은 현실에서 힘이 없다는 사실에서 나온다. 철학한다고 돈이나 권력이 생기지 않는다. 그럼 철학은 우리에게 어떤 힘을 주는 것일까? 바로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다. 무엇이 쓸모 있고 없는지는 바로 우리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다. 쓸모없는 것이 쓸모 있는 것이고, 쓸모 있는 것이 쓸모없는 것이라고 말한 장자는 이 모든 것이 우리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하지 않은가. 부디 철학을 만나시길, 인문학을 만나시길, 그 만남이 얼마만큼 쓸모 있는지는 온전히 당신에게 달려 있다.


옛날 나무 네 그루가 모여 저마다 최고라고 뽐냈다. 첫 번째 나무는 나는 단단하고 곧아 최고급 가구를 만드는 목수가 좋아하지. 두 번째 나무는 열매를 많이 맺는다 자랑하고, 세 번째 나무는 향기로운 예쁜 꽃을 피운다고 자랑했다. 네 번째 나무는 구불구불하고 껍질도 딱딱해 아무 쓸모가 없었기에 아무 자랑도 하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무 세 그루는 사람들에 의해 베어졌고 네 번째 나무만 홀로 남았다. 더운 여름날 마을 사람들은 나무 그늘에 모여 앉아 ‘이 나무 그늘 정말 시원하다.’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2500년 전 장자가 말한 無用之用 즉, 쓸모없음이 쓸모 있음에 나오는 우화다.


장자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사물의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은 사물에 내재된 속성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용처를 아는 사람에게는 쓸모 있고 모르는 사람에게는 쓸모없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다. 다만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자리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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