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왜 그토록 행복을 갈망하는가?
21가지 질문 중 평소 선, 후배님들에게 자주 이야기하는 ‘행복’에 대해 서머리 하려 한다. 법륜스님의 卽問卽說(즉문즉설)은 아니지만 고민 상담 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바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대부분은 회사생활에서 생기는 고민과 갈등들로 행복하지 않다는 이야기이므로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해서다.
‘회사 다니는 것이 행복하지 않다면 늦기 전에 빨리 그만두세요. 시간의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내는데 행복하지 않다면 지옥이잖아요. 월급이 적어도 본인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야지요. 퇴사가 어렵다면 회사 안에서 행복을 찾으려 노력해야 합니다. 행복과 행운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찾아야 하는 것이거든요.’
‘우리 뇌는 생각보다 샤프하지 못해요. 공산국가에서 반복하여 세뇌 교육하여 거짓을 진실로 착각하게 됩니다. 제일 먼저 출근길이 행복해야 하니 매일 아침 일어나 회사가면 행복하니 빨리 출근해야지 하며 되 내이면 정말로 출근하고 싶어집니다. 출근이 기다려질 때까지 계속 해보세요. 효과 있습니다. 제가 해보고 후배들도 해봤거든요. 저는 이제 세뇌를 하지 않아도 출근이 기다려지고 회사 나오는 것이 즐겁고 마음이 편해집니다.’
‘그리고 행복이란 것은 추상 명사이기에 개인 별로 크기도 다르고 모양이 다를 수밖에 없어요. 가능하면 작고 그리고 실체화 하는 것이 필요해요. 내 아파트를 갖고, 아이들 좋은 대학 보내는 것을 행복이라 생각하면 죽을 때까지 몇 가지 행복밖에 없어요. 아파트를 갖기 위해 저축하는 과정, 좋은 대학 보내기 위해 공부시키는 과정 등 과정의 행복을 느끼게 된다면 행복이 많아져요. 우선 발전소에서 정비하는 것, 퇴근 후 동료들과 막걸리 먹는 것, 가족들과 놀이동산 가는 것도 행복이잖아요. 소소한 행복을 찾으세요.’
이러한 행복에 대한 나의 어설픈 관점은 경험이자 혼자만의 주관이기에 다른 사람, 특히 철학자 생각을 듣고 싶었는데 짧게 설명한 책을 만났으니 좋은 기회다.
--------------------
5. 왜 그토록 행복을 갈망하는가?
행복을 수중에 넣는 유일한 방법은 행복 그 자체를 인생의 목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행복 이외의 다른 목적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는 일이다. - 존 스튜어트 밀 -
아리스토텔레스는 원하는 것을 이루는 게 행복이라고 말한다. 행복을 가늠하는 객관적인 잣대는 없다. 행복은 주관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원하는’것과 ‘바라는’것은 다르다고 지적한다. 어떤 것을 얻기 위해 나의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면 그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다. 가지고 싶긴 하지만 노력할 생각이 없다면 그저 ‘바라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자신이 가진 모든 힘과 노력을 기울여 원하는 것을 성취했을 때 진정한 행복을 얻게 된다. 같은 100만원이라도 복권 당첨으로 얻은 것과 아르바이트를 해서 받은 100만원의 의미는 다르다. 물론 일한 대가로 받은 돈이 더 스스로를 행복하게 한다.
러셀은 ‘행복은 마치 무르익은 과실처럼 운 좋게 저절로 입안으로 굴러 들어오지 않는다.’라고 했다. 세상은 피할 수 있는 불행, 피하지 못하는 불행, 병, 갈등, 투쟁, 가난, 악의로 가득 차있다. 행복하기 원하는 사람은 둘러싸고 있는 불행을 다룰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 사람은 어떤 경우에 불행하다고 느낄까.
첫째, 이룰 수 없는 것을 원할 때 불행해진다. 한비자에 나오는 守株待兎(수주대토)처럼 노력 없는 대가는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힘과 열정을 쏟은 뒤에 열매를 맺었다면 다음에도 노력하여 얻을 수 있고 어려움을 겪는 과정중의 깨달음이 발걸음을 더욱 힘차게 하지만 행운은 반복되지 않는다.
둘째,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 불행해진다. 사회학자인 린지만은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개념으로 현대인의 끝없는 불행을 진단했다. 상대적 박탈감이란 나와 타인을 비교하는 데에서 오는 박탈적인 심리다. 모두 가난하면 내가 가난하다는 것을 모르지만 남보다 가난하다는 것을 아는 순간부터 불행에 빠진다. 가난하지 않아도 늘 가난한 기분으로 살고 달리고 있어도 늘 뒤처지는 것 같아 불안하다. 비교는 공감의 반대말이다. 비교하는 관점에서 타인이란 내 행복과 불행의 원인 제공자일 뿐이다. 자신이 다른 사람의 종속 변수가 되어 절대적으로 행복해 질수 없으므로 남과 나를 비교하는 것은 불행해지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셋째, 쾌락을 탐하면 탐할수록 불행해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제비 한 마리가 날아온다고 하루아침에 봄이 오지 않듯 사람도 하루아침에 행복해 지는 것은 아니다.’라 했다. 한순간의 쾌락이 곧 행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쾌락을 행복과 동일시할 때 인간은 불행해진다. 탐할수록 만족이 멀어지고 오히려 불행해 진다.
우리는 왜 행복을 갈망하는가? 갈망하는 것이 과연 진정한 행복인가? 사랑에 빠진 아찔했던 순간, 승리의 순간에 도취된 기쁨을 행복으로 여기는 것은 아닌지. 스토아학파는 불행해지는 것은 욕망을 절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금욕적 생활을 제안했다. 쾌락과 행복을 혼동하기 쉬운데 쾌락은 일시적이고 행복은 지속적이다. 쾌락이 떠나면 허무해지고 허탈감에 빠져 더 큰 쾌락을 갈구하지만 갈증만 깊어진다. 쾌락은 신기루와 같은데도 사람들은 행복으로 착각해 신기루를 쫒는다.
원하는 것을 이루었을 때 느끼는 감정이 행복이라면 과정과 결과 중 어느 쪽에서 더 행복을 느끼게 될까? 이루어낸 결과만이 행복이라면 행복의 가능성이 훨씬 줄어든다. 세상에 이루어지지 않은 꿈이 얼마나 많은가. 사고로 손가락을 잃은 피아니스트는 다시는 행복해 질수 없을까. 훌륭한 피아니스트라는 목표를 바꾸지 않는 한 불행할 것이나 다른 목표를 찾는다면 행복해 질수 있다. 과정과 결과 모두에 행복이 있다. 어떤 일을 즐기며 할 때도 행복하고 그 결과로 성과를 거두었을 때도 행복하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성장하는 존재이며 수많은 과정들을 통해 성숙해 지는데 이것을 자아실현이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행복을 위해서 살아가는데 가장 행복한 상태는 자아가 실현될 때이다.’라 말했다. 자기가 가진 잠재력이 최고로 실현될 때를 자아실현이라 한다. 자아가 잠재적 가능성을 실현하는 과정이 인간의 삶이고 인간은 그 과정에서 행복해 질수 있다고 했다. 진정한 행복은 자아의 집착에서 벋어났을 때 이루어지는 것으로 자아를 크게 가져야 한다. 그러면 행복이 온다. 자아를 작게 갖는 것은 현재 느끼고 있는 욕망 하나하나를 곧 자아의 전부로 착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늘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여 상대적 박탈감에 빠져들게 된다. 반 자아가 커지면 일희일비하며 불행에 쉽게 빠지지 않는다. 풍랑에 범선이 흔들리지 않듯 자아를 키울수록 우리는 행복해 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