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서 어떻게 만족을 얻을 것인가
6. 어떻게 하면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을까
호스피스 전문가가 많은 말기 암환자들을 지켜봤더니 그들이 죽음에 임박하여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더 많이 했더라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했더라면’, ‘죽도록 일만 하지 않았더라면’하는 후회였다고 한다. 평생 최선을 다해 완주하고 후회 없이 세상을 떠날 수 있는 삶, ‘나는 좋은 삶을 살다 간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삶, 어떻게 하면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제자 두 명이 스승을 찾아와 ‘선생님, 인생은 어떻게 사는 건가요?’묻자 대답대신 과수원으로 데려갔다. ‘이 과수원에는 맛있는 사과들이 많이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사과를 하나 따오거라. 단, 절대 길을 되돌아가서는 안 된다.’하며 과수원 후문에서 제자들을 기다렸다.
한 제자에게 스승이 물었다. ‘어떤 사과를 땄느냐?’ ‘입구의 맛있는 사과를 보고 따려다 더 좋은 사과가 있을 것 같아 지나치고 후문 가까이 있는 사과를 황급히 땄습니다. 한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다른 제자에게 물었다. ‘너는 어떤 사과를 탔느냐?’ ‘입구의 맛있어 보이는 사과를 땄는데 후문으로 오다보니 더 좋은 사과가 많았습니다. 한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두 제자의 이야기를 들은 스승이 말 했다. ‘그게 바로 인생이다. 인생은 되돌아갈 수도 다시 시작할 수도 없는 법, 한번 지나면 끝이니라.’
인생은 한 번뿐이고 시간은 되돌릴 수 없으니 지난날로 돌아가고 싶다면 그건 삶을 후회하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누구나 후회한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도 남모르는 허전한 가슴을 끌어안고 산다,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이고 삶은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우리는 사무치게 후회를 한 뒤에야 비로소 후회 없는 삶을 살아 갈 수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여기’가 아닌 ‘저기’를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건 아닐까. 직장인은 자유로운 프리랜서를 부러워하고, 프리랜서는 안정된 직장인을 부러워한다. 결혼한 사람은 얽매일 것 없는 싱글이 편해 보이고 싱글은 결혼하면 외롭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우리는 내가 걸어온 길에 안착하지 못하고 가지 못한 길을 돌아본다. 자기 선택에 대해 회의하고 만족스럽지 않다고 고개를 젓는다. 후회란 결국 자신에 대한 거부다.
니체는 인간정신 발달에 세 가지 단계가 있다고 했다. 첫 번째 낙타의 단계, 낙타는 참을성 많고 주인에게 절대 복종한다. 뜨거운 사막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도 앞선 낙타의 뒤를 따라가지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이 아니라 사막에서의 낙오는 죽음을 의미하니 마지못해 뒤따르는 것이다. 두 번째 사자의 단계, 사자는 혁명가로 낙타의 단계를 벋어나 비로소 No라고 외친다. 자신의 자유와 권리가 침해당하면 주인에게 달려들 정도로 용맹하지만 혼자라서 늘 불안하고 고독하다. 함께 어울려 목표를 추구하며 일하기 어렵다. 인간은 협업하는 윈-윈 시스템을 만들 줄 알았기에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었다. 더불어 일 할 줄 모르는 사람은 똑똑해 보여도 결국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마지막 세 번째 어린아이의 단계, 의외이나 니체는 어린아이의 상태를 인간성장의 최고점으로 봤다. 어린아이는 잘 잊어버리고 언제나 자신이 하는 일을 즐긴다. 조금 전에 싸우던 아이하고도 금방 화해하고 같이 뒹굴며 논다. 직선적이고 단순한 까닭에 감정을 쌓아놓고 곱씹지 않는다. 어린아이 같은 태도란 존재와 삶, 그리고 인생을 포함한 모든 것에 대하여 신성하게 Yes라고 말하는 것이다. 니체는 지혜로운 사람은 무슨 일이든 마음에 담아놓지 않는다는 사실을 비유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사자도 하지 못한 일을 어떻게 아이가 할 수 있단 말인가? 강탈하는 사자가 이제는 왜 아이가 되어야 하는가? 아이는 수진무구 함이며 망각이고, 새로운 놀이, 스스로 도는 수레바퀴, 최초의 움직임이며, 성스러운 긍정이 아닌가. 그렇다. 창조라는 유희를 위해서는, 형제들이여, 성스러운 긍정이 필요하다.’
내 손에 있는 사과를 바꿀 수 없다면 ‘이 사과를 최고의 사과로 만들면 돼’라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마음의 반전이 일어나 삶을 긍정적으로 보게 된다. 긍정의 힘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나는 사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사실이고 더 좋은 사과가 있다는 것도 안다. 헛됨을 받아들이는 순간 다른 삶을 상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지금 내 손에 있는 사과의 맛을 떠올리며 후회를 대신해야 한다. 니체의 처방전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어린아이처럼 살아라. 현재를 즐겨라. 카르페 디엠! 당신의 손안에는 빛깔 좋은 사과가 있다.’
7. 일에서 어떻게 만족을 얻을 것인가
인간은 교육을 통해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하고, 단순한 작업을 완수한 뒤엔 더 어려운 작업을 성취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 작업에 의미를 부여한다. 인간의 잠재력은 일을 통해서 계발된다. 자기계발을 위한 최선의 방법은 하고 있는 일을 잘해낼 수 있는 길을 찾아내는 것이다. 사람들은 새벽, 주말에 학원에서 스펙을 쌓으려 하지만 사실 성장은 현업을 통해 이루어진다. 자기계발의 75%정도는 현업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으니 일은 우리를 성장시킨다.
감옥에서 죄수가 받는 형벌 중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단순노동의 반복으로 벽돌 100장을 옮기고 다시 원위치하기를 반복하는 것으로 조금 빨리 옮겨 기록갱신 하는 것 등 의미를 부여할만한 모든 것을 금지하면 지루함과 모멸감을 호소한다. 시지프스가 받은 형벌인 끊임없이 바위를 올리고 굴러 떨어지면 다시 올리는 것은 어쩌면 가장 큰 고통인지 모른다.
우리는 왜 일하는가? 돈 때문에 라는 대답은 틀린 답은 아니지만 업무의 의미와 성취감이 없다면 실망스럽게 된다. 산악인이 산 정상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은 엄청난 희열과 성취감을 준다. 돈 때문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 순간에서만 발견되는 의미로 인해 산악인은 거친 산을 오른다. 일도 마찬가지다.
노동과 소비는 쾌락과 고통을 느끼는 시점이 각기 다르다. 소비하는 동안에는 쾌감이 정점에 이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쾌락은 줄어든다. 신상 명품가방을 샀을 때의 기쁨은 1년, 5년 후의 기쁨과 다르다. 반면 노동은 고통이 먼저 따르지만 끝낸 후에 돈과 성취감이 찾아오기에 쾌락은 나중에 찾아온다. 시간이 흐르며 숙련되므로 고통은 줄고 쾌락은 증가한다. 일을 하면 쾌락이 오므로 인간은 만족감과 즐거움을 위해 일한다고도 할 수 있다.
삶의 의미를 질문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자기 삶에서 노예가 아닌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 일할 때도 그 의미의 중요성을 알아야 한다. 그것을 모르고서는 일을 통해 성장할 수도 없고 즐거움을 얻을 수도 없다. 어떻게 일을 통해 만족을 얻을 것인가? 이 질문에 답을 얻기 위해서는 일을 하는 이유를 자문해야 한다. 니체는 말했다. ‘자신이 왜 사는지,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어려움과 고통도 극복할 수 있다.’
自由(스스로自, 말미암을由), 자유의 뜻은 원인이 자기한테 있다는 의미이다. 외부에 의해서가 아니라 나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자유이며, 이로 인한 책임은 스스로에게 있다. 그래서 자유의 문제와 책임의 문제는 항상 궤를 같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