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2. 감옥으로부터의 사색(1)

감옥으로부터의 사색(1) (신영복 옥중서간, 돌베개刊)

by 물가에 앉는 마음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 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여름징역은 자기와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삼십칠 도의 열 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인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중의 형벌입니다. - 1985.08.28 계수님께 -


저는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결코 많은 책을 읽으려 하지 않습니다. 일체의 실천이 배제된 조건하에서 책을 읽는 시간보다 차라리 책을 덮고 읽은 바를 되새기듯 생각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질 필요가 있다 싶습니다. 지식을 넓히기보다 생각을 높이려 함은 思沈(사침)하여야 思無邪(사무사)할 수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1974.04.03 아버님께-


美자는 羊, 大의 會意(회의: 합쳐져 만들어진 뜻)로서 양이 크다는 뜻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큼직한 양을 보고 느낀 감정을 그렇게 나타낸 것이다. 그 고기를 먹고 그 털을 입는 양은 당시의 물질적 생활의 기본이었으며, 양이 커서 생활이 풍족해질 때의 그 푼푼한 마음이 곧 미였고 아름다움이었다. 이처럼 모든 미는 생활의 표현이며 구체적 현실의 정서적 정돈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활 밖에서 미를 찾을 수 없다. 더욱이 생활의 임자인 인간에게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미는 또한 지속성을 본질로 한다. 부단히 자기를 갱신하지 않는 한 미는 지속되지 않는다.

착한 아내, 고운 며느리, 친절한 엄마, 인자한 시어머니, 자비로운 할머니등 긍정적 미래로 열려있는 여자인가 현재 속에 닫혀있는 여자인가를 살펴야 한다. 현재를 고정불변한 것으로 완결하지 않고 과거와 미래의 연관 속에서 변화발전의 부단한 과정으로 인식하는 철학적 태도이며, 현실성보다는 그 가능성에 눈을 모으는 열려 있는 시각이다. 너는 아직도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 하겠지만 요즘 세상에는 같은 가격이면 그 염색료 만큼 천이 나쁜 치마이기 십상이다. 어쨌든 금년에는 네가 결혼하기 바란다. -1975.01.13 동생에게-


우리는 거개가 타인의 실수에 관해서는 냉정한 반면 자신의 실수에 대하여는 무척 관대한 것이 사실입니다. 자기 자신의 실수에 있어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처지, 우여곡절, 불가피했던 여러 사정을 잘 알고 있음에 반하여, 타인의 그것에 대하여는 그 처지나 실수가 있기까지의 과정 전부에 대해 무지하거나 설령 알더라도 극히 일부밖에 이해하지 못하므로 자연 너그럽지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징역 속의 동거는 타인을 이해하게 해줍니다. -1977.09.07 아버님께 -


해마다 7월이 되면 지나온 날을 돌아보는 마음이 됩니다. 금년 7월은 징역을 시작한지 12년이 되는 달입니다. 궁벽한 곳에 오래 살면 관점에서 자연히 좁아지고 치우쳐 흡사 동굴에 사는 사람이 동굴의 아궁이를 동쪽으로 착각하듯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이러저러한 견해가 주관 쪽으로 많이 기운 것이 되어 있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잇습니다. 대다수의 사람은 주관의 양을 조금이나마 더 줄이고 객관적인 견해를 더 많이 수입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의 바닥에는 주관은 궁벽하고 객관은 평정한 것이며 주관은 객관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객관은 주관을 기초로 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전제가 깔려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각자가 저마다의 삶의 터전에 깊숙이 발목 박고 서서 그곳에 고유한 주관을 더욱 강화해 가는 노력이야 말로 객관의 지평을 열어주는 것임을 의심치 않습니다. -1980.07.28 부모님께-


문자를 구하는 지혜가 올바른 것이 못됨은, 學止於行(학지어행), 모든 배움은 행위 속에서 자기를 실현함으로써 비로소 산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항시 당면의 과제에 맥락을 잇되, 오늘의 일감 속에다 온 생각을 거두어가두지 않고 아울러 내일의 소임을 향하여 부단히 생각을 열어나가야 함이 또한 쉽지 않음을 알겠습니다. - 1981.10.21 아버님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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