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는 누이의 네 번째 수필집
미국 사는 누이의 네 번째 수필집 제목이 ‘불량품’이다. 건강으로 따지면 불량품인 누이, 지병에도 불구하고 질기게 글을 생산해내는 부지런한 누이는 마음이 여려 눈물이 많다. 친구들 사이에서 ‘눈물의 여왕’이라 불리지만 가끔 筆禍(필화)에 휘말릴 때면 남자보다 씩씩하고 용감해 흔들림이 없다. 유명작가는 아니지만 끈질기고 용감하게 글을 쓰고 있는 누이의 글은 한국 고등학교 문학교과서에 실려 있으니 글을 쓰지 않으면서도 문단의 감투만 쓰고 있는 ‘불량품 작가’는 아니다. 표지화는 구원선화백이, 본문 삽화는 나태주시인께서 그려주셨다.
아버지의 유산인 나의 글쓰기
인생 前半(전반)은 아버지 덕에 살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아버지의 영향은 컸다. 현실적인 어머니와 감성적인 시인 아버지, 그 사이에서 절반씩 섞어 닮았음은 참 신기하고 감사한 일이다. 미국에 와서 시작한 글쓰기가 30년이 되어가는 지금, 글쓰기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은 물론 아버지 덕분이다.
신문사를 다니시던 아버지의 책보엔 늘 신간 서적과 신문 교정 용지가 들어있었고, 그걸 읽으며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보냈으니 말이다. 아버지 살아계실 때 등단을 해서 글 쓰는 이의 자세 등을 배울 수 있었음은 참 다행한 일이라 생각한다.
어머니가 반대한 가난한 신랑감을, 아버지의 응원으로 선택한 것도 지금 생각하면 천만다행한 일이다. 그 남편 덕에 인생의 後半(후반)을 사는 셈이다. 자신의 신장을 기꺼이 떼어주며 나를 살린 걸 생각하면 앞으로 남편을 섬기며 살 일만 남았다. 부디 마음먹은 대로 잘 지켜지길 바란다. 남편은 내 글의 첫 번째 독자로 독자 입장에서 단어의 선택과 글의 흐름 등을 조언해 준다. 큰 외조라고 생각한다.
두 명의 가족 말고도 내 문학에 틈틈이 영향을 준, 동창생 원순이 엄마 박완서 선생님(정식으로 뵌 적은 없으나 나 혼자 닮고자 했다). 소천하신 최인호 선생, 장영희 교수(두 분은 미국에 오셨을 때 만나 뵈었다)는 알게 모르게 내 글에 많은 모방이나 흉내로 살아 계실 것이다. 근래엔, 돌아가신 아버지 역할을 나태주 시인께서 대신해 주신다. 건강, 글쓰기 여러 조언을 해주시는 멘토이시다.
아버지의 유언 같기도 한 ‘매일 글쓰기를 연습하라.’ 대로 매일 쓰는 일기는 내 글쓰기의 큰 원천이다. 어려서부터의 습관인 독서도 글쓰기의 큰 밑천이라 생각한다. 앞으론 사물을 열심히 관찰하고 깊이 있게 생각하며 좀 더 진지하고 문학적인 글쓰기를 하고 싶다.
글도 안 쓰면서, 단체에 얼굴 알리고 감투 좋아하는 속물근성을 경계하라는 아버지의 문단에서의 처신에 대한 조언을 명심해야겠다. 더불어 아무 상이나 주는 대로 받는 탐욕도 경계하면서 품위 있는 문인이 되고 싶다.
차분한 설득과 조용한 파문이 들어 있어서 그 여운으로 인해 생의 위안을 줄 수 있는 감동의 경지가 수필이 아닐까. 나를 이야기하는 물 흐르는 듯한 자연스러운 문장 속에, 슬며시 웃게도 하고 찡한 여운을 줄 수도 있는 글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날까지 나를 지탱해준 문학에 감사한다.
Echo Park에서 2018 여름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