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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7. 4차 산업혁명, 두 권의 책을 읽고

후배님들이 선배들을 밀어낼 시기가 되었고

by 물가에 앉는 마음

후배님들 질문에 답하기 위해 ‘4차 산업혁명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4차 산업혁명과 정비 산업’ 두 번의 편지를 보낸 후 두 권의 책을 구입했다. 사실 ‘정비 산업에서의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내 자신의 기본 생각은 두 번째 편지에서 김정운교수의 ‘창조는 편집’이라는 말로 간단하게 정의했고 대변했다. 또한, 후배님들이 더욱 유연한 사고를 갖고 있기에 더 잘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입에 발린 칭찬이 아니다. 기성세대가 4차 산업혁명(이하 편의에 따라 4차로 칭함)을 이해하기에는 한계성이 있기 때문인데 4차는 후배님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長江後浪推前浪(장강후랑추전랑), 장강의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내듯 이제는 후배님들이 선배들을 밀어낼 시기가 되었고 충분한 역량이 있다고 판단된다.


‘창조는 편집’과 같은 의미인 ‘중간진입전략’을 회사의 기본 R&D전략으로 제시하며 20년간 이어오던 연구 패러다임을 한 번에 바꿨기에 주관이 고착화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우리 회사와 같은 업종의 R&D전략으로는 여전히 파워풀하고 시간이 흘러도 최선의 방향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사고의 프레임이 ‘발전소 정비 산업’에 갇혀 있다고 판단되어 프레임 확장과 호두껍질처럼 견고한 사고의 껍질을 깨기 위해, 또한 4차의 실체에 대해 정확히 하기위해 관련 책을 읽고는 더 이상 후배님들에게 4차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기로 했다. 이야기하면 할수록 아직도 명확히 규정되지 않은 4차에 대한 견해와 시각을 좁아지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후배님들의 무한한 상상력과 정보화에 대한 지식으로 4차를 바라보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기에 더 이상의 언급은 자제하고 추후 논의의 장이 마련된다면 후배님들 생각도 듣고, 토론하는 것이 바람직 할듯하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짓말(손화철著, 북바이북刊)’ 집필진은 정통 과학기술자라기 보다 기술철학, 국문학, 디지털융합을 전공한 인문 학자에 가까운 분들로 4차를 비판적으로 다뤘던 집필진의 공통된 견해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 아직까지 실체를 명확히 규정할 수 없지만 흔히 이야기하고 있는 4차 시대는 이미 열렸거나 분명히 열린다.

- 4차가 상업주의로 흘러 양극화가 심화되는 것을 경계해야 하며 인간과 기계가 평등하고 인류에 도움이 되는 기술이 개발되어야 한다.

물론 저자들 견해에는 동의하지만 현실은 다르게 전개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기업은 이익창출을 위해, 국가는 자국 이익을 대변하고 국부를 쌓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貧益貧 富益富’, 즉 현재의 양극화보다 더욱 심화되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기업과 국가가 지향하는 목표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기술패권주의’, 지나간 역사에서 경쟁기업이 무너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의도적으로 이익을 감소시키고 기술개발을 늦추거나 시장점유율을 낮추는 기업을 보지 못했고 자국민과 자국기업을 보호하지 않는 나라도 존재하지 않았다.


저자들의 비판과 우려에도 책 본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으며 어쩌면 우리 회사가 나아갈 방향도 언급되어 있는지 모른다. ‘세계 강국들은 자국 산업 중 국제적 비교우위를 갖춘 분야에 논의를 집중하고 있는데 미국은 인공지능과 금융정보, 독일은 자동화 공장, 일본은 차세대 로봇과 스마트 부품, 중국은 소비재 산업 쪽에 초연결성을 실현하여 빅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 분야 전체를 지배하는 플랫폼을 구축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우리나라가 인공지능 자체에 주목해봐야 한국기업들이 우위를 확보하는 것은 이미 늦었다고 생각한다. 네이버가 구글이 되고 카카오가 페이스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난센스다. 최근 네이버가 검색이 아니라 컨텐츠에 집중하는 것도 그 때문으로 보인다.’


우리 회사가 수행하는 정비 산업은 속성상 손으로 하는 수작업이 기본이다. 현재도 발전소 현장에서 로봇, 드론, ICT, 증강현실기술이 활용되고 있으나 Big Data, 인공지능, ICT, VR 등의 기반기술 자체에 주목하고 투자해봐야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기반기술을 연구할 인력, 자본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아예 없다고 보는 것이 맞는 이야기다. 네이버가 4차기술과 연계할 콘텐츠개발에 치중하듯(네이버가 플랫폼시장에서 강자가 될 가능성이 희박해 콘텐츠에 치중한다는 이야기도 있다.)‘창조는 편집’ 즉 ‘중간진입전략’에 의한 Big Data, 인공지능, ICT, VR과 우리 회사 고유의 정비기술을 결합한 정비신기술 개발, 정비효율화 방안을 찾아 이를 비즈니스와 연계해야 훨씬 효율적일 것이다.

물론 세계강국들이 치중하는 플랫폼을 개발하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며 현장에서 손에 기름 묻히는 것보다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다. 플랫폼은 정비 산업에도 도입할 수 있으며 초보적이지만 이미 유사한 모델도 존재한다. EPRI는 멤버십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 회사뿐 아니라 한전과 계열사는 거액의 연회비를 지불하면서 자료를 검색, 활용하고 있다. 정비시장 독점이 종식되고 민간 정비사가 시장의 50%를 점하고 있는 상황이니 우리 회사도 비슷한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었다. 정비사례와 정비보고서를 민간 정비사에 오픈해주고 우리는 회비나 이용료를 받고, 고객의 의문점에 대한 자문과 필요시에는 필드서비스를 해주는 플랫폼 비즈니스를 한다면 또 다른 사업거리가 될 것이다. 현재 이러한 서비스가 가능한 회사는 우리 회사가 유일한데 시간이 흐르면 이마저도 주도권을 잃게 된다. 플랫폼 사업은 내용의 충실성도 중요하지만 런칭시기도 중요하다.


상기 플랫폼은 물론 허점을 갖고 있다. 발전회사와 D중공업, GE는 운전 중인 설비의 센서를 부착해 실시간 운전상황을 파악하는 시스템을 구축중이거나, 운영 중에 있다. 우리보다 많은, 그야말로 Big-Data를 손에 쥐고 있는 반면 우리는 정비 결과물만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각사 시스템이 완벽하지 않으며, EPRI도 결과물을 운용하는 플랫폼이므로 많은 토론과 고민을 한다면 실현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아직까지 듣도 보도 못했고 상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와 Biz Model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후배님들께 공을 넘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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