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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읽고 쓰기

734. 오버 페이스

끄적거린 시기와 편지 보내는 시기가 맞지 않는다. 오버페이스 탓에.

by 물가에 앉는 마음

지난 겨울은 인터넷쇼핑으로 책 사고, 읽고, 끄적거리는 시간이 많았다. 어머니 덕분이다. 어머님 돌아가신 후 마음은 휑하게 비었지만 시간은 넘쳐났다.

병원에 입원하시기 전에는 병간호하느라 일주일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몰랐다. 입원하신 후에는 면회가 안 되니 매일 아침 9시30분 의료진과 병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아마도 병원 의료진도 엄청나게 끈질긴 보호자로 인해 곤욕을 치렀을 듯하다. 매일아침 의료진으로부터 불씨가 사그라지는 듯한 상황을 듣는 것도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책을 펴놓고 있어도 집중하기 어려워 눈과 머리가 따로 놀았다. 눈의 실핏줄도 몇 번 터졌으며 정신적으로도 힘들었다. 체력적, 정신적 오버페이스지만 이 정도는 누구나 겪는 수준일 것이다.


儀式(의식)은 시간을 맺고 끊음으로 과거와 단절하고 미래로 향하는 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한다. 儀式으로 인해 새로운 시간이 시작된다. 결혼식은 시작이고 장례식은 끊음이지만 시작은 끊음으로 달려가고 끊음은 새로운 시작을 만든다. 돌아가시기 전에는 하루라도 오래 사시기를 바랐지만 하늘에서 주신 명대로 사는 것도 행복이란 것을 새삼 알았다. 어머님 중심으로 보면 장례식을 기점으로 병원에서의 외롭고 고통스러운 이승의 시간은 끊어졌고 천국에서 하나님과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장례를 치르고서는 매일 아침이 허전했다. 전화할 곳도 없어지고 무언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한편으로는 불경스러운 이야기지만 매일매일 가슴조리며 병원과 통화하던 스트레스는 없어졌다. 허전한 마음을 채우고 잡생각을 떨치기 위해 책 읽고 끄적거리기에 몰두했다. 답답함을 해소하기위해 헝클어진 머릿속을 정리하려면 낚시가 최고인데 때가 겨울철이라 집에서만 밀린 숙제하듯 읽고 끄적거렸다. 눈이 침침해지는 것 같아 안경도 새로 맞췄다.


꽤 오랫동안 일주일에 한편씩 편지를 쓰고 있다. 읽었던 책 소개와 살아가는 잡스런 이야기를 격주로 편지를 보내고 있으니 일 년치 해봐야 잡스런 일상속의 에피소드 25건과 책 읽고 요약한 내용 25건 이다. 지난겨울 낚시도 가지 않고 방에서 책과 노트북하고만 놀다 보니 일년치 분량을 끄적거려 놓았다.

오버페이스해서 1년 숙제를 미리 해놓아서인지 한주에 편지를 두 번 보내는 경우가 있었다. 집사람이 곶감을 미리 빼먹지 말라 했지만 쟁여놓은 곶감이 너무 많아 한편으로 걱정이다. 밥만 먹으면 방에 들어가 노트북 자판을 눌러대며 놀고 있는 남편이 곱게 보이지 않았을 텐데 解脫(해탈)의 경지에 오른 집사람은 잔소리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을 解脫이 아니고 포기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폭풍전야인가? 우매한 남편은 감각이 무디다.


취미가 낚시와 끄적거리는 것인데 둘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하면 낚시를 꼽을 것 같다. 두세 명이 이런저런 이야기하며 낚시하는 재미는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를 정도다. 따뜻한 남쪽에는 얼음만 얼지 않으면 사시사철 낚시가 가능하나 중부권은 얼음낚시를 하거나 실내낚시터를 이용해야 한다.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겨울 실내낚시는 쉬어야 했다. 이럴 때는 Y tube 낚시영상을 보고 대리만족하는 것이 최고지만 겨울은 Y tube시청까지 시들하게 만들 정도로 길다.

드디어 기다리던 봄이 왔다. 끄적거리는 것을 오버페이스 했으니 당분간은 ‘물가에 앉아 멍청하게 앉아 있는 것’에 집중하려 한다. ‘멍청하게 앉아 있는 것’과 ‘집중’, ‘오버페이스’와는 연관성이 없는 반대 개념의 단어지만 극과 극은 통한다. ‘물가에 앉아 멍청하게 앉아 있는 것’은 고도의 집중력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집중해서 머리를 비우지 않는다면 ‘멍청하게 앉아 있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불멍’과 ‘물멍’ 또는 ‘멍때리기 대회’를 아시는 분은 극과 극이 통한다는 것을 안다. 불이나 물을 멍청하게 쳐다보는 것에 집중하는 것은 시야에서 다른 사물을 삭제해야 가능해 진다. 또한,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상념들을 붙잡아 정지시키고 머리에서 삭제해야 하니 쉽지 않은 일이다.


낚싯대 던져놓고 시야에서 찌를 잃어버리고, 생각을 정지시키고 하얗게 비우는 일, 당분간은 바보가 되는 일에 집중할까 한다. 이것을 오버페이스하면... 바보 천치가 되려나? 이 풍진 세상에서는 그렇게 되어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도 행복하고 좋은 일이다.


* 끄적거린 시기와 편지 보내는 시기가 맞지 않는다. 오버페이스 탓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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