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처음 연재편지를 시작할 때가 2008. 1월이었으니 10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사보에 연재코너를 운영한 것은 2003년으로 한 달에 한번 끄적거렸으나 1년여 기간이 더 힘들었습니다. 온라인으로 편지 보내는 것과 사보처럼 종이에 활자화 되는 것이 비슷할 것 같으나, 활자 특성상 마음대로 회사 허물을 꼬집고, 다른 사람 흉보는 것이 어려워 약속한 기간이 끝나길 기다렸습니다. 현재도 사보를 통해 제 생각을 전달하는 것 보다 온라인이지만 편지를 주고 받는 것이 정겹고, 불특정다수가 제 생각을 들춰보고 반론이나 찬성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는 것이 마음 편합니다.
10년이란 짧지 않은 세월, 저하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은 커다란 소득이라 판단됩니다. 시작할 때는 같은 방향을 바라 봤기에 결혼한 집사람, 한사람 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저와 같은 생각으로 책 보고 토론하는 후배님들이 생긴 것에 만족합니다. 많게는 1년에 70권 정도, 저보다 다독하는 후배님들도 많이 생겼고 본사를 방문하면 직원들 책상위에 책이 놓여 있는 것에서 회사의 밝은 앞날을 봅니다.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태어나 앞만 보고 달렸고 무엇을 하던 국내 최초였던 베이비부머, 기성세대는 이제 은퇴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성세대 눈에는 예의도 없고 부족한 것 없이 곱게 자란 후배님들에게 회사와 대한민국의 앞날을 맡기는 것이 위태롭게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기성세대가 만들었던 패스트 팔로워 시대는 마감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고 후배님들이 퍼스트 무버로서 앞으로 회사, 사회, 국가의 방향은 정하게 될 것입니다.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여 일본은 2020년부터 4지선다형 시험을 폐지하기로 했는데 ‘학력’과 ‘생각하는 힘’이라는 두 개의 가치관 중에서 ‘생각하는 힘’을 선택했습니다. 또한 문부과학성은 ‘학교가 길러줘야 할 3가지 힘’을 제시 했는데 ‘과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협력하여 일하는 힘,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힘, 창의적인 사고력을 배양’하라는 지침을 제시했다. -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짓말(손화철著, 북바이북刊) -
사고대처 매뉴얼만 따르고 임기응변능력부족으로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촉발되었다는 의견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일본의 힘은 ‘규범과 실천’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은 정부차원에서 일본교육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설정했으므로 ‘창의적 사고력 개발’을 국가차원에서 추진하고 실천할 것입니다. 아마도 밑바탕에는 독서가 있으리라 예견됩니다.
우리나라가 국민소득 3만 불 문턱에서 약간 지체했고, 퍼스트 무버로서의 역할정립에 다소 혼선이 있었는데, 우리 회사가 매출 1조원 달성이후 주춤하는 현상과 비슷하다고 판단됩니다. 하지만 저는 책 속에 해결방안과 길이 있다는 믿음과, 또 후배님들이 더 잘할 것이란 믿음도 갖고 있습니다. 5백번의 편지를 보내면서 세태를 비난한 적은 많으나 후배님들에 대한 비난 보다 선배님들에 대한 비난 횟수가 많았다는 것에서 후배님들에 대한 신뢰와 믿음에는 변함 없습니다.
어느 회사나 매일 매일을 걱정하며, 조금 더 레벨이 높은 회사는 내일과 미래를 걱정 합니다. 내일과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은 회사는 책상 위에 무엇인가를 꺼내놓고 읽습니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하니 지나간 역사 속에서 앞길을 찾기 위한 古典일수 있고, 역사를 감안한 미래 예측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선배들은 책을 읽지 않아도 열심히만 하면 살아갈 수 있었지만 현대와 미래사회는 무작정 열심히 한다고 생존할 수 없는 사회입니다. 후배님들께는 책 읽으라는 당부 말씀을 다시 한 번 드립니다.
500번의 편지를 쓰면서 가급적 객관적 시각을 유지하려 했지만 이야기가 길어지면 결국에는 주관이 객관을 넘어서며 글 쓰는 사람의 본색이 들어 납니다. 일을 통해 수양하며 모범이 되는 삶과 행복을 추구하자고 이야기 하는 것은 제 자신을 미화하고자 함이 아니고 고전에 등장하는 군자와 같이, 존경하는 교세라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의 삶을 따라가려 하는 것이지 결코 그 반열에 들은 양 잔소리 하는 것이 아님을 감안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내 자신의 허물을 들어 내지 못하고 남의 허물을 들춰낸 것은 저의 몹쓸 호기심으로 치부해 주시기 바랍니다. 뉴욕 월스트리트 메릴린치가 입주한 세계금융센터 건물 앞 청동 황소 조형물의 코는 유난히 밝은 색을 띠는데 코를 문지르면 행운이 따른다는 말에 관광객들 모두 만져서 밝은 색으로 변한 것입니다. 혹시 황소 꼬랑지 쪽을 보셨습니까? 저는 뒤가 궁금해 황소 낭심을 보니 코와 같이 밝은 색으로 변해있었고 저도 만져봤습니다. 이것은 관음증이 아니라 호기심으로 아직도 호기심이 많아 궁금한 것을 많이 물어보고, 남의 치부도 곧잘 들춰보니 넓은 이해를 바라며 혹시 제 편지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받으신 분들에게도 용서를 구합니다.
앞으로 1000번째 편지를 쓸 때쯤이면 조금 더 성숙된 정신세계와 세련된 문체로 다가갈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하며 오늘은 D+500번째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10년 넘게 지겹도록 편지를 읽어주신 ooo차장님과 제 꼬임에 넘어가 아직도 다독, 열독하시는 ooo, ooo차장님, ooo팀장님 등 후배님들께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이제는 읽었던 내용들을 업무와 실생활에 접목시켜 볼 것을 당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