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구입하는 기준은 문학성과 무관하다. 작가의 문학성을 폄하하는 이야기가 아니며 문학성을 평할 위치도 능력도 갖고 있지 않다. ‘부커상’뿐 아니라 아무리 유명한 작가의 책이라도 관심 밖에 있다면 구입하지 않는다. 내 삶의 호기심을 푸는데 도움 되는, 살아가는 방식에 도움 되는 책을 주로 구입한다. 매우 世俗的(세속적)으로 보이더라도 할 수 없는 일이며 세속적이라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름휴가와 함께할 책을 검색하다 책 열권을 구입했으니 휴가를 넘어 여름이 끝날 때까지 더위를 잊고 지낼 것 같다. 신간 3권과 묵은 책7권, 좋아하는 작가 ‘이철수의 나뭇잎편지 세트’ 7권은 新刊(신간)이 아닌 舊刊(구간)이다.
그간 이철수 작가의 책을 여러 권 구입했으나 읽은 후 친지들에게 나눠줬기에 수중에 남아있는 책은 한권밖에 없다. 아마도 舊刊 7권중 절반은 이미 읽었겠지만 재탕, 삼탕 해도 마음이 차분해 지고 재미있는 책은 흔하지 않기에 이번에 구입한 책은 사골국물 우려내듯 두고두고 읽으려한다.
개인취향이겠지만 이철수 작가의 짧은 글과 판화를 보고 있노라면 오염되었던 마음이 정화되는 듯하며 논과 밭이 있고 참새와 제비가 나는 작가의 정겨운 동네에 와 있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헤리포터가 호그와트 마술학교로 순간 이동하듯 이철수 작가의 책을 여는 순간 복작거리는 도시에서의 삶이 순간적으로 평화로운 시골에서의 삶으로 변한다. 온갖 권모술수 판치는 사악한 도시에서 탈출해 두엄내음 구수하고 이웃집과 음식 나누는 따뜻한 시골로 온 것이다.
퇴직 후 바닷가보이는 낮은 언덕 허름한 집에서 사는 버킷리스트 한 줄은 아직 살아있다. 시골살기의 꿈은 작아져 餘生(여생)에서 일 년으로, 일 년에서 한 달로 줄어들었다. 한 달 정도는 현실로 이루어질 것 같다. 물론 시골살기 로망이 현실과는 다를 것이며 벌레들 때문에 걱정이기는 하다. 지인들 전원주택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온 동네 벌레들은 왜 내가 방문한 집으로 몰려올까? 전원주택에 사시는 분들은 이구동성으로 벌레들과 친하지 않은 사람들은 아파트에 살아야 한다고 하지만 벌레 위협을 무릅쓰고라도 한 달 정도는 살아 볼만하지 않을까 한다.
나는 시골에 살며 느끼고 싶었던 느릿한 시간의 흐름과 자연, 정겨운 시골장터, 이웃과의 소박한 삶을 이철수 작가의 책에서 대리만족 내지 대리체험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책을 사는 것은 책을 읽을 시간도 함께 사는 것이다.’ 라고 말한 분도 계시다. 책을 사는 것은 책 읽는 시간도 사고 작가의 생각을 사는 것이 아닐까? 서점에 꽂혀있는 수많은 경험과 통찰들을 고르고 골라 마음에 드는 것, 내 사고능력 중 부족하고 모자란 부분을 메우고 다지기 위한 재료를 사는 것이 아닌가 한다.
서구권 작가의 책은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등장인물의 이름이 어려워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으며, 서구문화와 역사에 대한 공감능력과 지식이 부족해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일본과 중국작가의 책 정도만 구입한다. 일본 經營三神(경영삼신) 중 한분인 이나모리 가즈오회장과 ‘미움 받을 용기’저자인 기시미 이치로의 저서를 여러 권 읽었다.
두 분 저서는 문학성과는 거리가 있다. 또한,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을 작가로서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일을 대하는 자세와 정신에 대해 존경하고 본받기 위해 저서를 여러 권 읽었다. 기시미 이치로의 경우에도 작가라기보다는 학자다. 아들러 심리학을 좋아하다 보니 작가가 아닌 학자로서의 기시미 이치로를 좋아하고 책을 구입하게 된다.
책 선물을 자주한다. 책을 사는 것은 책 읽는 시간도 사고 작가의 생각을 사는것과 같다고 했으므로 봤던 책을 선물하거나, 구입해서 선물하는 것은 내 생각과 마음을 주는 것과 같을 것이다. 책 내용과 어울릴 것 같은 분들께 선물로 드리는 것이나 상대방 마음에 들지 모르니 모험일 수 있다. 가끔 선택한 책이 재미없어 먼발치로 밀려나듯 선물한 책도 같은 처지에 놓일 때도 있을 것이나 이미 손을 떠난 일이니 괜한 걱정이다.
눈꺼풀을 짓누르는 졸린 책보다 케익의 달콤함이 탁월한 선택일수 있지만 내 마음에는 달달함이 부족해 케익보다 책에 눈이 먼저 간다.
주문한 책이 모두 도착했다. 부자 된 듯 뿌듯하다. ‘방은 치우지 않으면서 책을 열 권이나...’ 잔소리했던 집사람은 벌써 이철수 작가의 책을 한권 가져갔다. 집사람도 이 작가를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