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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2. 생계의 기술, 생존의 기술

세상 사는데 필요한 두 가지 기술

by 물가에 앉는 마음

어른들께서 ‘공부는 끝이 없다.’하셨는데 어른들 말씀은 진리다. 10년 전 서울대에서 1년 동안 경영자과정 교육을 받으면서 남는 시간에 ‘이렇게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일까? 올바르지 않다면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공학을 전공한 머리로는 도저히 답을 구할 수 없어 인문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해 보기로 하고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기로 했다. 공부 성과가 나오지 않아 고민 끝에 ‘공부법’도 공부했지만 유일하게 터득한 이치는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도 소득이라면 커다란 소득이다. 공부에 지름길과 왕도가 있었다면 약삭빠르게 그쪽을 기웃거렸을 것이다. 10년 공부를 하면 어느 정도 세상의 이치가 보일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었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목표가 멀어지고 있다. 만으로 10년을 공부하고 남은 것이라곤 읽은 책을 서머리한 종이 몇 장과 조금 향상된 썰(說)뿐이다.


GT정비기술센터 식구들을 대상으로 사업장 경영현황과 인문학을 접목한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있다. 대부분의 식구는 나와 같이 공학을 전공했고 비슷한 일을 하고 있기에 내 말이 어눌하고 논리가 빈약해도 현실친화적인 면이 있어 이해를 잘 한다. 물론 전문 강사보다 강의를 잘 한다는 것은 아니고 같이 근무하는 식구들이니 실 사례를 들어가며 강의하니 현실감이 있다는 이야기다. 공기업에 근무하고 있지만 급변하는 상황으로 젊은 식구들은 불안해하는데, 내가 부임하자마자 구조조정을 단행했기에 모든 식구 불안감은 증폭되었다. 불안해하는 식구들을 대상으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고,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 이야기 하고 있다.


세상 사는데 필요한 두 가지 기술이 있다.

첫 번째는 퇴직할 때까지 필요로 하는 생계의 기술이다.

여러분 대부분은 기술직이니 전기, 기계관련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으며 기술도 갖고 있다. 기술 발전으로 낙후된 기술과 자격증으로는 생계의 질을 높이기 어려울 수 있으니 자기계발을 통해 기술을 업그레이드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나는 입사하면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는 줄 알았으나 회사는 나에게 공부를 엄청나게 시켰다. 전기공학을 전공했으나 입사 후 기계, 계측, 비파괴, 품질, 교육, 기획, 경영, 안전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했는데 이것은 주어진 보직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한 생계의 기술을 습득하고자 함이었다. 동, 식물이 살아남기 위해 진화하듯 인간도 굶지 않으려면 생계의 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

잘사는 나라 미국에도 홈리스가 많다. 기후 좋은 엘에이보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기후인 뉴욕에 홈리스들이 많다. 이유는 추운 날씨에 지하철 환기구 앞에 박스를 깔고 부들부들 떨면서 불쌍해 보여야 동냥을 많이 받기 때문인데 이것도 홈리스들의 생계를 위한 기술이며 노하우이다.

우리같이 공학을 전공한 이과출신만 그런 것이 아니라 문과도 마찬가지다. 졸업 후 취업 잘되는 학과를 선호하다보니 경영, 행정학과는 수능성적이 좋은 학생들이 몰리고 사학과, 국문과는 경쟁률이 낮다. ‘인구론(인문계 졸업생 9할은 논다.)’, ‘문송합니다.(문과를 졸업해서 죄송합니다.)’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질 정도이니 적성보다 생계를 위해 전공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두 번째는 죽을 때까지 필요로 하는 생존의 기술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직, 간접적 관계 속에서 살아가며, 누구나 행복하기를 희망하는데 인간관계가 좋은 사람이 권력과 재물이 많은 사람보다 행복하다는 설명과 연구결과는 지난번에 말한 바와 같다. 사람 욕심은 끝이 없어 권력과 돈맛을 알게 되면 더 높고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어 한다. 탐욕에 가득차면 시야가 좁아지고 멀리 보기보다는 눈앞의 이익을 취하기 위해 몰두한다. 이로 인해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주고 인간관계는 허물어지고 거래관계만 남게 된다.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전성시를 이뤄도 정작 정승이 죽으면 빈소가 썰렁하듯 예전부터 그래왔다.

좋은 인간관계가 어떻게 만들어지나? 배려, 양보, 역지사지에서 비롯된다. 내가 먼저 손을 내미는 양보와 배려가 좋은 인간관계를 만들고 결과적으로 나를 행복하게 한다. 생계를 위한 기술이 뛰어난 사람도 생존의 기술이 부족하다면 조직 내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러므로 불행하게 생계를 이어가는 것이 바람직한가, 아니면 조금 부족해도 행복하게 생계를 이어가는 것이 바람직한가는 물어볼 필요도 없다.


60세 정년퇴직 후 우수기술자들은 계약직으로 회사에 다닐 수 있는 제도가 만들어져 본인이 원한다면 계속 회사 마크를 가슴에 달 수 있다. 60넘어 회사 마크를 가슴에 달 수 있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고 훌륭한 생계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하지만 생계의 기술이 뛰어나도 생존의 기술이 부족한 사람은 탈락할 수밖에 없다. 후배들이 같이 일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사례를 많이 보고 있다. 군림하던 조합위원장도 거부당했고 간부들도 직원들이 같이 근무하기를 거부했다. 그들의 생계기술은 훌륭했을지 몰라도 생존 기술이 빵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겠지 하는 생각은 자만이다. 후배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을 뿐이지 퇴직 후 신분이 달라지면 대우도 달라진다. 생존의 기술이 생계의 기술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직원시절 같이 근무했던 J는 업무 실력이 형편없었다. 저렇게 해서 조직에 붙어 있을 수 있을까할 정도였으나 생존의 기술이 뛰어났다. 업무는 내가 전담하다시피하고 업무외 일은 J가 하는 것으로 했다. ‘J야, 업무는 내가 할 테니까 시들어가는 화분을 어떻게 해봐라.’ 다음날 새 화분으로 교체했는데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못하는 일을 했으니 J가 위대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는 술 한 잔 못해도 부서회식에 불참하는 적이 없었고 술 취한 동료들을 일일이 택시 태워 보내고 나서야 집에 들어갔다. 다른 사람들이 힘들어할 때 힘을 보탰고, 동료들이 귀찮아하는 일을 도맡아 했다. 정년퇴직 후에도 후배들이 대고객업무능력을 인정해서 아직까지 근무하고 있다. 뛰어난 생존기술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여러분들은 공기업에 입사하여 근무하고 있으니 ‘생계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이미 검증된 사람들이다. 다른 회사로 전직해도 굶어죽지 않을 기술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생존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퇴직해서도 좋은 일이나 궂은일이라도 불러주고 찾아갈 친구가 있다면 그나마 ‘생존의 기술’을 갖고 있는 것이나 ‘생계의 기술’ 못지않게 꾸준히 노력해야 발전하는 기술이다. 재차 강조하지만 ‘생존의 기술’을 발전시키는 밑바탕은 배려, 양보, 역지사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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