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읽고 쓰기

486. 광고, 연재를 시작합니다.

主流, 非主流, 酒流

by 물가에 앉는 마음

새해부터 수필전문지 ‘그린에세이’의 ‘ooo의 서재에서’라는 코너에 인문학 책이야기,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계획은 2년이고 격월간지이니 12회 입니다. 학교 전공이 전기공학이고 주 업무였던 기술기획, 원자로 폐로, R&D와는 사돈의 팔촌도 아닌 내용을 연재한다고 하니 주제넘고 생뚱맞게 들리시겠지만 청탁받은 저도 어리둥절해 하고 있습니다.

청탁 받고 원고 다섯 편을 보낸 후 편집자와 솔직하게 이야기 했습니다. ‘제가 출판사 편집의도도 잘 모르며 본업도 있고 시간 있을 때 책 읽고 생각나는 대로 써 내려 가므로 원고마감일 지키는 것도 부담입니다.’

편집자로부터 아주 긍정적인 답이 왔습니다.

‘인문학 관련 서적의 독후감이나 재해석한 내용을 게재할 예정으로 보내주신 다섯 편의 원고와 매주 받는 편지에서 적당한 내용을 골라 게재할 테니 걱정 하지 마시라.’


학계에는 해당분야에서 저명한 ‘주류 지식인’이 있습니다. 이 분들은 매스컴에도 자주 등장하고 한마디 한마디에 권위가 실리는 그러한 분들인데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짧은 기간 주목받는 폴리페서와는 다른 분들입니다. 반면에 주류 지식인과 마찬가지로 전공에는 강하나 그리 유명하지 않은 ‘주변부 지식인’이 있습니다. 주류 지식인이 있기에 이 분들의 한마디는 뒷전으로 밀리는 것이 다반사이나 연구와 후학양성에만 몰두 하시는 분들이겠지요.

문단에도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들인 ‘主流 文人’과 유명하지 않으나 쉼 없이 글을 써내려가는 ‘非主流 文人’이 있습니다. 건방진 말씀인지 몰라도 저는 ‘비주류’가 아닌 ‘주류’에 속합니다. 하지만 베스트셀러를 발간한 ‘主流’도 아니고 ‘非主流’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도저도 아닌 ‘酒流’에 속합니다. 筆力도 없고 막걸리 한잔에 흥이 돋우면 세상이 즐거워 주절거린 이야기를 끄적거려 대는 ‘主流’아닌 ‘酒流’입니다.

편집자 선처로 원고마감일을 지키지 않아도 되어 큰 짐을 덜긴 덜었는데 어떤 내용의 글이 실릴까 제 자신이 궁금해지는 웃기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생사가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니 눈물 나는 인생보다는 웃기는 인생이 행복한 것 아니겠습니까?


돌이켜보니 저는 조금 웃기는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남들이 골프 치러 다닐 때 책을 읽었고, 골프치지 않으면 승진하기 어렵다며 골프클럽을 선물해 주신 선배님이 계셨는데도 ‘안 시켜주면 말라지.’ 하는 배짱으로 낚싯대 하나 둘러매고 붕어잡고 농부들과 어울려 막걸리를 나눴습니다. 제가 선천적으로 줄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시끄럽게 어울려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도 있지만 그 당시의 골프문화는 차량, 그린피, 캐디피, 점심 등 철저하게 하급자가 상급자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朝貢골프문화’였기에 더더욱 골프가 싫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이 들어 부부가 같이 하기 좋은 운동이 골프라고 하지만 저는 노부부가 같이 낚시하는 모습도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청와대 대변인을 하셨던 소설가 서기원 선생님은 선친의 文友이자 釣友셨는데 지금은 두 분 모두 고인이 되셔서 하늘나라에서 같이 낚시를 하고 계실 겁니다. 한 번은 제가 낚시를 모시고 갔는데 서기원 선생님부부의 낚시하시는 모습이 얼마나 부럽던지요. 노부부가 석양을 등지고 낚시 하시면서 손주 이야기며 음식이야기를 조곤조곤하시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저도 은퇴하면 집사람 꼬드겨 같이 낚시 다녀야겠다고 생각 했습니다.


전문적으로 글쓰기를 배워본 적이 없고 은퇴 전 회사이름을 제목으로 책 한권 남기고 떠나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글쓰기라 문체나 내용이 찌질 합니다. 누구나 알고 있는 회사이야기, 아이들 이야기, 술과 낚시와 친구 이야기 등으로 잡다한 내용입니다. 그러기에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잡스런 글을 쓰는 사람이라 하여 서양에서는 수필가를 miscellaneous writer라 하나봅니다.

아무튼 은퇴 후에 꿈꾸는 생활은 바닷가 보이는 곳에 집을 마련하여 사랑채에서 파란하늘 멍청하게 바라보기도 하고 책 읽고 낮잠 자고 끄적거리며 멀리서 찾아오는 친구와 막걸리 한잔하는 것입니다.

봄이면 해풍에 잔잔하게 흔들리는 노란 냉이 꽃과 유채꽃이 커가는 모습을 질리도록 쳐다보고, 비오는 날에는 세로토닌이 부족하니 집사람이 부쳐준 바삭한 김치 부침개에 막걸리 한잔하며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와 섞이는 장사익씨 타령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가을에는 청명한 하늘을 쳐다보며 속절없이 가는 세월 아쉬워 눈물도 흘려보고, 추운겨울 연탄난로 위, 보리차 보글보글 끓는 소리와 더불어 군고구마 타는 내음 맡아가며 늙는 것이 제가 바라는 은퇴 후 이상향입니다. 그때 정도 되면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글로 담아낼 정도가 될듯한데 지금은 찌질한 채로 연재를 시작합니다.


여우같은 집사람이 내 마음을 알고 퇴직 때 바닷가 허름한 집 한 채를 선물로 줬으면 하는데 이럴 때는 곰탱이로 돌변하여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으니 오늘은 꼬리 아홉 달린 여우가 아닌지 치마를 들춰봐야할까 봅니다.


PS, 5년전 편지입니다. 연재 계획은 2년이었으나 어찌하다보니 해를 넘기고 5년간 연재하고 있습니다. 살다보면 계획대로 진행되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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