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도 담백하고 단순함으로 돌아오면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하겠는가.
쇼펜하우어는 문장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읽기 쉽고 정확하게 이해되는 문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주장하고 싶은 사상을 소유해야 한다. 문맥이 난해하고 불분명하며 모호하다는 것은 그 문장을 조립한 작가 자신이 현재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응석에 불과하다. 학식이 풍부한 사람일수록 쉽게 말하고 학식이 부족할수록 더욱 어렵게 말한다. 따라서 위대한 작가들은 다량의 사상을 표현하기 위해 소량의 언어를 사용했다.
회사 내에서 각종보고서를 쓰다보면 쇼펜하우어 말에 공감이 간다. 신입사원시절 보고서는 장황하기 이를 데 없고 경력이 쌓여감에 따라 간결하게 요점정리가 잘 되어있다. 보고서는 내가 보기위한 것이 아니라 남을 설득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기에 쉬운 내용으로 짧으면 짧을수록 잘 썼다는 평가를 받을 텐데 짧은 한 문장, 한 페이지 만드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며, 어떤 날은 한 문장 갖고 한나절을 씨름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날은 쓰던 보고서를 접고 글 쓰는 재능이 없음을 탓하며 막걸리 한잔하는 것이 생산적이다.
회사 보고서를 포함해 어떤 글이든 읽는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이 잘 쓴 글이며, 작가의 생각과 의도가 정확히 전달되었다면 더욱 잘 쓴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관적 판단이지만 잘 쓴 글을 보면 한 폭의 그림이 연상된다.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가 그렇고 ‘김 약국의 딸들’을 보면 등장인물들 옷차림, 표정, 심리상태, 배경까지 활동사진을 보는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장편소설이지만 묘사는 단순하고 간결하다. 길고 장황하게 설명 하지 않았는데도 시대상과 등장인물에 몰입하게 되니 대단한 표현력이다.
한편, 잘 그린 그림을 보면 많은 이야기가 연상된다. 드루크루와 작품인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미술도록에서만 보던 명화를 직접 봤다. 그림 한 장에 1830년 07월 28일, 샤를 10세 절대주의 체제에 반대하는 파리 시민들의 7월 혁명 중 가장 치열했던 7월 28일을 그리고 있다. 풍만한 가슴을 드러낸 여인이 삼색기를 들고 혁명을 이끌고 있다. 불에 타는 파리와 매캐한 연기로 뒤덮인 하늘, 노동자, 농민이 무기를 들고 시체와 바리케이드를 넘는 모습을 묘사한 명화다. 여인이 들고 있는 삼색기는 자유, 평등, 박애를 나타내고 있고 총을 든 어린소년은 프랑스의 미래이다. 그림 한 폭으로 당시대의 치열했던 사회상과 혁명의 목적과 가치, 프랑스의 미래를 그려냈으니 얼마나 위대한 작품인가.
폴란드 학자 샤르비에브스키는 세상의 모든 것은 모방이고 詩만이 창작이자 창조이며 詩만이 시인의 상상력으로 無에서 有를 창조한다고 주장했고, 쇼펜하우어가 ‘위대한 작가들은 다량의 사상을 표현하기 위해 소량의 언어를 사용했다.’하니 소량의 언어만을 사용하는 詩를 보면 단순하고 간결함의 아름다움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는 프랑스작가 쥘 르나르의 ‘뱀’이란 제목의 시로 내용은 ‘너무 길다.’이다.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르나르에게는 미안하지만 샤르비에브스키가 주장한 ‘시는 창작이자 창조’라는 말에 동의하기 어렵고 단순함의 미학도 발견하지 못하겠다.
널리 알려진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을 보면 시를 모르고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단순함의 미학’을 느낄 수 있다. 어떻게 짧은 세 줄짜리 시가 크고 긴 여운을 줄 수 있을까? 군더더기로 치장 하고 예쁘게 보이려 미사여구를 덧붙였다면 拙作(졸작)으로 평가되었을 것이나 작가가 지극히 精製(정제)된 言語(언어)로 魔術(마술)을 부린 탓이다. 예쁘고 사랑스러운 대상이 풀꽃일수도 있고, 초등학생일수도 있으며, 주변에 널려있는 작은 행복일수 있으니 읽는 사람이 사고를 무한정 확장할 수 있는 예쁜 시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나태주 풀꽃 -
유일한 야외 취미활동은 민물낚시이다. 초보시절, 많이 잡으려 또는 커다란 물고기를 잡으려 노력 했지만 이제는 어떻게 하면 멋진 찌 올림을 구현할까 고민하고 연구한다. 큰 것과 많이 잡으려는 욕심에 낚시프로와도 같이 다녀보고, 책 보고 공부하여 물려받은 선친의 낚시채비를 신식으로 바꾸는 등 복잡한 과정을 거쳤지만 결국에는 ‘단순함’으로 돌아왔다. 바늘도 2개에서 한 개로, 낚싯줄은 가늘게, 봉돌은 여러 개를 다는 분납채비에서 한 개로, 찌는 저 부력으로, 낚싯대는 긴 것보다 2칸짜리로 하니 채비가 간단해졌다. 단순화 하다 보니 ‘釣仙’급이셨던 선친의 낚시채비와 유사해졌다. 유행도 돌고 돌아 제자리로 오듯 내 낚시도 50년 세월을 굽이굽이 돌아 ‘단순함’으로 돌아왔다.
우리 삶도 담백하고 단순함으로 돌아오면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