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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8. 말이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는다면

리더십은 ‘입’에서 나오지 않는다.

by 물가에 앉는 마음

남도땅에서 나는, ‘선생님’으로 추앙받고 있는 김대중 대통령을 제대로 존경하지 않는다. 김 대통령의 업적에 대해 제대로 공부해보지 않은 탓이다. 하지만 김대통령이 말씀하신 ‘행동하는 양심’에 대해서는 격하게 공감한다. 계획만 있고 실행이 없는 것, 말만 있고 행동이 없는 것을 경멸해 왔기 때문이다.


회사 생활의 반을 기술기획 업무를 하면서 많은 계획과 보고서를 만들어냈다. 보고서에 담기는 기술적 내용도 중요하지만 ‘문장 만들기와 편집기술’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비기술이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듯 ‘문장 만들기와 편집기술’도 경험이 쌓일수록 세련되고 유려해진다.

가끔 후배들에게 보고서를 읽는 대상에 따라 보고서를 만드는 방법, 눈에 띄게 제목을 뽑는 방법 등을 이야기 하곤 하는데 긍정적으로 표현하면 똑같은 결과물을 놓고 예쁘게 포장하는 기술이라 할 수 있으나, 나쁘게 표현하면 눈속임이며 뻥튀기, 과대포장이나 외부 평가를 받는 경우에는 특히 신경써야할 부분이다. 하지만 모든 계획을 수립하면서 신경 쓴 것은 어떻게 하면 ‘살아 움직이는 계획(Living Plan)’을 만들 것인가 였다. ‘살아 움직이는 계획’이란 문구가 생소하신 분들에게 간단히 설명하자면 실행력이 있는 계획을 말한다. 실행력이 있어야 결과가 나오고 피드백이 된다. 결과가 나오려면 관계부서가 실행하도록 계획이 수립되고 실행을 강제할 수 있는 조치도 취해져야 한다.


안전사고가 발생되었다. 천만다행으로 사망에 이르지 않았지만 재해자는 뇌수술을 할 정도로 중상을 입었다. 안전팀에서 안전관리 대책을 수립했으나 현장에서 실행하기 어려운 수준의 방안들을 제시했다. 물론 산업안전보건법에 명시된 기준이라면 따라야 하나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현장직원에게 갑옷입고 작업하라 할 수는 없는 일이라 실행 가능한 대책을 수립하라며 재작성을 지시했다. 조금은 미흡해도 현장에서 준수할 수 있는 대책이 ‘살아 움직이는 계획(Living Plan)’이다. 입으로/글로 표현하는 것에는 불가능이 없다. 하지만 내뱉은 말과 공표된 문자에는 책임이 뒤따르며 이행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GT정비기술센터에 부임 했다. 적자 원인이 전 세계적 불황-전력예비율증가-비싼 가격의 가스터빈 발전소 정지-정비물량축소란다. 사실 적자 원인이 ‘전 세계적 불황’ 하나밖에 없다면 일개 사업장 단위에서는 속수무책이나 그래도 살아갈 방도를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적자 발생 원인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내재되어 있다. 정비물량축소가 가장 큰 원인이기는 하나, 주 고객인 GE Type 발전소가 효율저하로 가동률이 특히 낮고, OEM사도 살아야 하니 정비시장 참여폭을 늘렸고, 가동률 높은 신형 발전소는 OEM사가 정비까지 장기계약을 하고 있으며, 정비 경쟁사는 낮은 인건비를 바탕으로 영업을 하고 있어 정비단가는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발주처에서는 최저가 낙찰제를 도입했다.

내부적으로는 정비효율을 높이는 연구와 신 시장개척, 신제품 개발도 등한시한 요인이 있었다. 외부환경이 하루아침에 급변한 것이 아니라 서서히 조성된 것인데 말로만 ‘원가절감, 경쟁력강화’를 외쳤지 걸맞는 대책을 수립하고 실행에 옮기지 않은 책임이 가장 크다. 좋지 않은 현상이 발생되면 남 탓을 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하지만 역으로 내 잘못은 없는가? 생각하면 여러 가지 탈출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경영자가 사업다각화, 시장다변화를 앵무새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경영 매뉴얼에도 있지만 사고의 폭을 넓혀보자는 의도가 포함되어 있다.

o 수주가 있어야 매출이 수반되므로 구조조정의 와중에도 영업기능을 보강한다면?

o 저가경쟁에서 오래 버틸 수 있는 기업은 우리 회사이며 아직 블루오션도 있다. 경쟁하는 레드오션에서는 저가경쟁을 하고, 경쟁 없는 블루오션에서는 높은 가격을 받아 적자를 메운다면?

o 선진국 OEM은 가격이 Fix되어 있고 시급성과 해당발전소 여건에 따라 할증이 붙고 임기응변에 능하지 못하다. 개발도상국 등 아직까지 쳐다보지 않던 해외 시장여건을 검토해보면 현지 업체보다는 비싸지만 선진국보다는 저렴한 가격을 제시할 수 있는 정비 아이템은?

o 기술연구원 등 우리 배후조직은 막강하므로 우리 기술과 타 조직 기술을 접목한 신상품을 출시한다면?

o 저가 경쟁에서 승리할 유일한 방안인 공정 개선과 자동화로 생산성을 두 배로 올린다면?

적자경영 원인의 주체를 ‘남’이 아닌 ‘나’로 바꾼다면 여러 가지 탈출 방안이 나올 수 있다. 주체가 남인 것으로 치부한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이야기와 같다. 나는 아직도 말이 앞서고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사람을 경멸하지만, 남 탓으로만 치부하는 사람은 비오는 날 먼지 나도록 패주고 싶다.


리더십은 ‘입’에서 나오지 않는다. 부지런한 ‘손 과 발’에서 리더십이 나온다. 행동하지 않는 리더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허구이며 직원들의 원성을 야기하게 되므로 ‘행동하는 리더십’이 없는 경우에는 차라리 말이 없는 리더가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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