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먼저 ‘한발 물러서기’를 해야 시작된다.
업무 관련해서 어떤 난관에 부딪칠 때는 ‘한발 물러서기’를 해서 현상에 대해 조망하여 ‘본질이 무엇일까?’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문제를 풀기위해 몰입하다보면 우습게도 본질을 잊는 경우가 많다. 한발 물러서지 않는다면 국부적 문제점에 얽매여 시야가 좁아지고, 주관적 판단 오류에 빠지기 쉬워 그로인해 전체를 그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발 물러서기’는 내가 갖고 있는 유일하다시피 한 업무 기술이나 습관화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이러한 현상을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바둑이나 장기판이다. 해설자나 훈수꾼이 다음 수를 잘 보는 이유는 ‘내 승부’가 아니니 몰입이 아닌 조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 9단들의 시합을 6단이 해설하는 경우도 있고 다음 수에 대해 예상하고 패착에 대해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 제목은 ‘한발 물러서기’가 아닌 ‘한발씩 물러서기’로 상대방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상대가 있는 경우에는 조금 복잡한 변수가 있다. 바로 사람의 ‘마음’이다. ‘내가 한발 물러서는 것을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까?’ ‘상대방이 한발 물러선 것은 선의일까? 의도된 덫일까?’ 신뢰관계가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당연한 의문사항이며 상대방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예전 남대문시장에는 정찰제가 시행되지 않아 주인이 부르는 값이 정가였다. 노련한 소비자는 가게 주인이 부른 값의 50%를 깎으라 하지만, 주인이 흔쾌히 깍아 줬을 때는 안 살 수도 없고 그 값에 산다고 해도 ‘과연 내가 반값에 산 것일까? 내가 어수룩하게 보이니 처음부터 높은 값을 부른 것이 아닐까?’ 싸게 사고도 마음이 개운치 않다.
반면 50%를 깍아달라 했는데 상인이 20%를 제시하고, 더 이상 깎아주지 않으면 가겠다고 하니 당신만 특별히 35%를 깍아 줄 테니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 하지 말라 해서 기쁜 마음으로 샀다면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으로 구매한 것이지만 만족도는 높다. 상대방의 양보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생각에 따라 다르지만 물품을 구매하는 경우는 매우 쉬운 경우다.
후배님들이 전화나 커피한잔 먹으러 와서 털어놓는 고민들은 업무처리방법에 대한 것도 있지만 인간관계에 관한 것도 많다. 직장 다니니 필연적으로 생기게 되는 상사, 후배와의 관계, 노사관계에서 발생되는 인간관계 문제는 업무관련 문제보다 고민스럽다. 내가 한발 물러선다고 해결되는 문제라면 편할 텐데 여기에는 남대문 시장에서 물건을 사기위해 가격을 흥정하는 것 보다 고차원적 변수가 개입된다.
정책의 방향성보다는 ‘상사의 지시는 항상 옳은 것인가? 회사를 위한 올바른 결정인가?’라는 양심의 방향성부터 ‘내가 일방적으로 상사나 조합에 무릎을 굽히는 것인가?’하는 자존심문제까지 개입되어 있어 ‘옳다, 그르다’하는 단순간결하고도 명쾌한 답을 주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인간관계이니 ‘한발씩 물러서기’가 가장 좋은 방법이고 상호간의 정신적 만족도를 높일 수 있지만 내가 물러선다고 상사에게 물러서라 요구할 수는 없다.
처장이 새로 부임하여 업무방향을 설정하는데 지난 과거를 모두 부정하면서, 독단적인 판단으로 새로운 업무계획을 수립하여 갈등을 일으키는 부서의 팀장이 커피한잔 하겠다며 찾아왔다. 이미 해당부서 내막을 알고 있었기에 ‘새로운 업무계획은 실패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의 장점은 상사를 기분 나쁘게 하지 않는 언변과 태도이니 좋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실패가 확실하지만 처장은 본인의 의견을 굽히지 않을 것이니 너무 강하게 당신의견을 피력하지마라. 설득하되 인간관계까지 깨지는 상태로 가지 말라는 이야기다.’
결국 해당부서의 새로운 업무계획은 보고단계에서 기각되었다. 내가 선견지명이 있어서 예단한 것은 아니다. 팀장들이 반대하고 관련부서 의견수렴을 하지 않은 독단적 계획이 채택되는 허술한 회사가 아니기에 명약관화한 일이었다. ‘한발씩 물러서기’로 처장도 의견을 굽히고 팀장들의 의견도 반영된 업무계획이 수립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일방적 물러서기’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노사관계는 조금 더 복잡하고 변수가 많다. 이를 이해하는 관리자가 있는 사업장은 노사가 하모니를 이루지만 반대인 경우는 불협화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조합은 조합원 투표에 의해 구성되며 조합위원장은 투표에 의한 선출직이며 탄핵되기 전까지는 모든 직원들의 대표다. 위원장은 선출직으로 회사 직급으로 따지면 말단직원이며 사업소장은 임명직이며 직급으로 따지면 고위직급이다. 이는 객관적 현실이라 누구도 부정할 수 없지만 소장이 노동조합 위원장을 말단직원으로 취급하는 마음이 저변에 깔려 있을 때 상대방은 기가 막히게 그것을 알아차린다.
지하철 입구에서 구걸하는 홈리스에게 동전하나 던지며 거만하게 걸어가는 사람과 같은 값이면 무릎 구부리고 ‘추우시죠?’하며 동전 한잎 놓고 가는 사람과의 차이가 아닐까 한다. 같은 돈이라도 마음과 자세에 따라 상대방이 느끼는 것은 천지차이이다. 같은 사안이라도 시기에 따라서 조합은 무리한 요구를 할 수 있다. 선거를 앞두었을 때나. 직원들 전출문제에 관해서는 정치적으로 물러설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선출직이기에 그렇다. 임명직은 선출직의 입장을 역지사지하여 양보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야 하며 서로 한발씩 물러서는 아름다운 모습을 만들어야 한다.
‘나는 양보하는 것인데 상대가 굴종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상사의 지시는 항상 옳은 것인가? 회사를 위한 올바른 결정인가?’ 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면 세 번까지 양보한다는 생각을 갖고 임하면 된다.
‘한발씩 물러서기’의 첫걸음은 내가 먼저 ‘한발 물러서기’를 해야 시작된다. ‘한발씩 물러서기’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만들어가는 것이며 내 것이 과하다 싶으면 남들 모르게 상대방에 덜어줘 균형을 맞춰야 아름다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