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껏해야 저수지관리원으로 임명된 것인데
윤흥길씨의 오래된 소설 ‘완장’은 TV드라마로도 방영 되었다. 저수지관리원으로 임명되어 완장을 차게 된 동네건달이 아무것도 아닌 완장에 집착하고 권력을 남용하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완장(권력)이 사람에게 어떠한 심리를 갖게 하고, 어떻게 어리석게 만드는가를 풍자한 소설이다.
인간의 속성은 쉽게 변하지 않기에 표현하는 단어가 바뀌었을 뿐 ‘완장’은 과거에도 존재했으며 현재도 존재하며 미래에도 존재할 것이다. 요즘 유행어인 ‘갑질’도 완장과 마찬가지고 ‘계급장 떼고 합시다.’라는 말의 ‘계급장’도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나는 특이한 곳에서 군복무 하느라 일찍이 ‘완장’에 대한 경험을 했다. 훈련소 교육 후 자대배치 받은 곳은 서울한복판 보안사령부, 식당에서 두 달 사역 후 보일러실/변전실 근무병으로 내정되었다고 들었으나 어느 날 누군가에게 포니승용차에 태워져 넓다란 저택 비슷한 곳에 도착했다. 신병신고식을 한다며 끌고 간 곳은 물 고문실. 사방 벽이 선지색깔 핏빛 타일로 습기로 인한 퀴퀴한 냄새가 피비린내로 느껴져 방에 들어서자마자 말 한마디 못할 위압감이 느껴졌다. 그곳 은어인 ‘칠성판’에 묶여 물고문을 당한 것이 아니라 엉덩이를 몽둥이로 맞는 구타를 당했는데 아프다는 소리도 내지 못했다. 물 고문실 벽에는 전기고문기가 부착되어 있었는데 물고문후에는 통전효율이 좋으므로 나름 과학적 배치를 한 것 같았지만 보기만 해도 온몸에 전기가 흐르는 듯 했다.
앉으면 조명으로 인해 조사자 얼굴이 보이지 않는 피조사자 의자에도 앉아봤고 거짓말탐지기인 ‘허탐기’ 성능도 시험해 봤다. 80년대 초 기억을 그림 그리듯 자세하게 묘사할 수 있는 것은 당시 충격이 트라우마처럼 큰 탓이다.
보안사령부 대공처 수사과 분실, 민주화운동 후 문민정부가 들어서자 비밀이 조금씩 누출되어 거론되기 시작했는데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이른바 ‘서빙고 호텔’이다. 물론 일부지만 멀쩡한 사람이 잡혀 들어와 간첩이 되어 나간다는 것을 한참 후에야 알았다. 복무 당시에는 간첩이 잡혀 왔고 증거물품도 있으니 당연히 간첩이라 생각했으며, 조사가 끝난 후에는 당시 고급호텔에서도 맛보기 어려웠던 연어가 간첩검거 포상품으로 지급되어 맛나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근 30년이 지나 방송매체를 통해 회유와 협박, 고문에 의해 자백을 하게 만들었으며 조작에 의한 ‘간첩 만들기’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내가 근무했던 시절의 사건은 아니었지만 나는 회개했다. 나도 분명 그때 ‘갑질’을 했다. 위장가옥인 ‘안가’에 근무하고 있었으므로 장발머리에 사복입고 시장 보러 다녀야 했다. 오토바이 타고 경찰에 과속으로 적발되었을 때도 보안사 위장차량 이라며 경찰을 윽박질렀다.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 대통령 시절이니 ‘보안사’란 ‘완장’은 ‘갑중의 갑’이었다.
항상 ‘완장’을 차고 있는 줄 알았던 경찰과 검찰 내에서도 ‘갑’과 ‘을’이 분명 존재한다. 얼마 전 충주의 여자경찰이 내부감찰과정에서 회유와 압박이 있었다며 여경은 극단적 방법을 선택했다. 감찰과정에서 잘못이 없다 했으나 추후 충북도경청장은 사과했다. 또한, 구 정권 적폐청산 관련 검찰 수사과정에서 당시 파견검사였던 변호사와 현직 검찰이 자살했다. 감찰반이 소위 ‘완장질’을 했는가는 모르겠으나 나는 감찰 받고 수사 받는 피조사자의 심리상태를 충분히 이해한다.
피조사자는 죄를 짓지 않았더라도 조사자 앞에 서면 위축되기 마련이며 고문 받았던 피조사자는 조사자의 조그만 움직임에도 겁을 먹는다. 의학용어로 ‘白衣 高血壓(백의 고혈압)’ 이란 것이 있다. 혈압이 정상인데도 의사나 간호사의 흰색 가운을 보면 혈압이 상승하는 증상으로 치과에서 고통스러웠던 트라우마가 있었던 사람은 내과의사, 간호사를 봐도 비정상적으로 혈압이 상승한다.
사내에서도 ‘본사와 사업소간, 부서간의 완장질’ 적폐가 남아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오랜만에 사업소 근무를 하면서 본사와 사업소가 대등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본사 근무자는 완장을 차고 있는 것이 아닌데 착각하고 있는 직원들이 있다. 감사실 등의 감찰부서도 완장이 없다고 생각하고 일해야 많은 정보를 수집하는데 유리하고 정보를 바탕으로 불미스러운 일을 사전 예방할 수 있다. 기껏해야 저수지관리원으로 임명된 것인데 완장 차게 되었다고 폼 잡고 권력을 남용하게 되면 스스로 동네건달로 전락하게 된다. 위법을 저지른 범법자를 잡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기본적인 감찰원칙이며 진실을 이기는 힘은 없듯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지기 때문이다. 혼자만의 느낌이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