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람은 바쁘게, 나는 편하게 준비한 큰아이 결혼식이 끝났다.
시부모 모시고, 분가해서 전세 얻고 집 사는 것, 아이 낳고 기르는 것 등 집안일을 알아서 척척해주는 집사람 덕에 편하게 살았다. 명색이 전기공학을 전공했고 원자력 발전소를 정비했던 경력이 있으니 형광등교체 정도는 내손으로 했지만 집안일에 관해서는 무심한 편이다. 아니 집사람 덕에 신경 끄고 살았다는 것이 솔직한 표현일 듯하다. 하지만 큰 아이가 시집가는 일은 아무래도 신경이 쓰였으나 결혼과 관련된 일도 집사람 혼자 처리했다. 아부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살아야할 집 문제, 결혼식장, 혼수 등을 사돈댁과 마찰 없이 처리하는 실력을 보니 직장생활을 계속했다면 나보다 출세했을 것 같다.
내가 신경 써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집사람이 보채지 않았기에 큰아이 결혼식은 적어도 나에게는 인륜지대사가 아니었다. 단지 ‘신부 아빠가 있다.’ 정도 역할만 한 것이 아닌가 한다. 식장에서 하객들과 인사 나누고 웨딩마치에 맞춰 큰아이 손잡고 걸어 들어가 신랑과 바톤터치 하고 혼주자리에 앉아 졸지 않았던 것, 가족사진 찍는 것 정도가 내 역할이었다. 이런 정도의 역할이라면 아이들이 10명이라도 걱정하지 않았을 것 같다.
사실 큰아이 손잡고 사회자 안내에 따라 식장에 입장하는 것을 내켜하지 않았다. 남녀가 동등한 입장에서 만나 좋아하는 감정이 생겨 눈꺼풀에 콩깍지가 씌어 결혼하는 것이니 둘이 손잡고 들어가길 바랐으나 집사람은 내가 나이에 맞지 않게 청바지를 즐겨 입는 것만큼 평범하지 않고 파격적인 것을 싫어한다. 내가 결혼 하는 것이 아니라 딸아이 결혼이니 내 주장을 고집할 필요는 없었다.
주례선생님 모시는 것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유일한 경험에 의하면 목사님께서 주례사를 하셨는데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전혀 기억에 없다. 작고하신 목사님께서 지루하게 주례사를 하셨지만 ‘주님의 품안에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라.’ 하셨을 것이 뻔하다. 결혼식을 여러 번 했다면 기억에 남을 텐데 30년 전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단 한번 결혼했기에 아직까지 주례사를 또렷하게 기억하는 사람이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주례 없이 양가 부모가 아이들에게 잘살라고 당부하고 본인들이 행복하게 살겠다는 말로 주례사를 갈음하려 했으나 이것은 큰아이가 반대했다. 주례가 있어야 시키는 대로 하면 되니 마음이 편하단다. 당사자가 편하다는데 이것 또한 고집할 이유가 없으나 집사람과 큰 아이는 결혼식에 관심이 별로 없는 내 생각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윗감을 처음 만나는 날 풍경도 비슷했다. 사윗감은 결혼을 허락받는 자리니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으나 결혼 승낙이 너무 쉽고 빨리 끝나 허무하게 느껴졌을 수 있다. ‘결혼 허락...’ 사윗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 입에서 ‘오케이’소리가 튀어나왔다.
식사 후 집에 돌아오니 집사람이 불평했다. ‘뭐가 그래, 신랑감이 무척 마음에 들었는가 보네?’ 집사람은 전문직 사위를 원해 맞선을 주선했던 적이 있었으나 큰아이가 선보는 것을 반대했다. 분명 좋아하는 남자가 있다는 이야기이며 나는 신중한 큰아이가 겉만 번지르르한 남자를 선택하지 않았으리라는 믿음도 있었다.
‘둘이 좋아 결혼한다는데 왜 반대해?’ ‘사지 멀쩡하고, 둘 다 대학 졸업해 같은 직장 다니니 굶지는 않을 것이고, 시부모 마음 좋으시다하면 된 것이지 당신은 무엇을 바래?’ ‘나하고 당신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결혼 안 시킬 것인가?’ ‘당신 결혼 할 때도 똑같았어. 아버님은 아무 말씀 없으셨고 어머님이 딱 하나 물어 보시더라. 여자친구가 교회 다니니?’
청첩장 보낼 곳을 정리하다보니 혹시 내가 경조사를 챙기지 못한 사람에게 청첩을 보내는 것이 아닌가하는 걱정이 앞섰다. 사외에는 청첩을 보내지 않았다. 가급적이면 거래업체와 만나지 않으려 했고 만나도 일정거리를 유지했으며, 사실 거래업체 경조사를 적극 챙기지 않았기에 연락하지 않았다. 김영란 법이 무서워 그런 것이 아니라 따지고 보니 인간관계가 그리 깊고 넓지 않은 것이다. 하객은 고교동창 몇에 교분이 있는 사외 친구들 몇 분을 제외하면 모두 직장 선, 후배님들이다. 최고급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지만 식장입구에 놓인 화환이 단출하니 보기에 나쁘지 않았다. 원했던 그림이다.
弔事(조사)가 아니면 먼 거리 慶事(경사)에 참석한 적이 많지 않다. 집과 떨어져 객지에서 생활하고 있으니 휴일이면 집에 가야한다는 핑계였지만 이는 변명에 가깝다. 멀리서 축하차 참석해주신 선, 후배님들께 감사드린다.
집사람은 바쁘게, 나는 편하게 준비한 큰아이 결혼식이 끝났다. 큰아이는 신혼여행 갔고 네덜란드에서 유학중인 작은아이는 급하게 들어와 바쁘게 돌아갔다. 나는 나주로 내려올 테니 이바지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집사람이 해야 할 몫이다. 집사람과 강아지만 덩그라니 남겨놓고 내려오려니 미안하지만 어쩌면 집사람도 이제 느지막한 휴가를 즐길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마음 편하다. 사랑하는 큰아이의 결혼식은 신경 쓰지 않았는데도 물 흐르듯 잘 끝났다. 선, 후배님들 덕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