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周邊老人(주변노인) 또는 境界老人(경계노인)에 지나지 않는다.
分業(분업)으로 고도화된 시스템 속에서 근무했던 사람들 단점은 시스템에서 빠져나오면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은 것이다. 쉽게 말하면 공기업 퇴직자는 따지는 것은 잘 하지만 세상물정 모르고 혼자 할 줄 아는 일이 없다는 이야기다. 국민연금을 급여에서 자동 공제했기에 시기가 되면 자동 지급 받는 줄 알았다. 예상과 달리 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안내문이 왔고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은 사람이 정말 용하게도 혼자 힘으로 인터넷 접수에 성공했다.
그런데 우편으로 보내온 書面(서면) 신청서 작성설명서와 인터넷 신청서 작성설명서의 근로소득공제 방법이 서로 달라 혼란스러웠다. 인터넷 검색으로도 명확하지 않았다. 첨부서류이외 편지를 별도로 작성하여 인터넷으로 접수시켰다. 답을 얻지 못해도 이런 부분을 짚고 넘어가야 직성이 풀린다. ‘서로 다른 이유가 뭔가? 書面(서면) 안내된 소득 계산방법에 따른 결과/인터넷으로 안내된 소득 계산방법에 따른 결과 첨부’ * 하지만 공단에서는 이미 신청자의 과세자료를 알고 있기에 서면/인터넷 제출 자료가 커다란 의미는 없다.
발전소 근무하며 느낀 점이지만 이상하게도 영문설명서보다 한글설명서가 더욱 어렵다. 직업 특성상 자료실에 가득했던 외국산 설비에 대한 사용설명서와 국산설비 사용설명서를 많이 접해봤지만 간결하고 명확하게 설명된 것은 영문설명서였다. 영어를 잘 해서가 아니라 영문설명서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은 그림을 곁들였고 순서와 절차의 맺고 끊음이 명확하다. 반면 한글설명서는 장황하게 길며 주어, 술어, 목적어가 혼란스러워 이렇게? 아니면 저렇게 하라는 것인가? 혼란스러운 경우가 발생한다.
일상생활에서도 유사 사례가 많다. 전자제품이나 자동차 사용설명서는 장편소설 두께를 뛰어넘고 여전히 난해하다. 그래도 글로벌 기업들은 간략한 사용설명서도 만들고 그림을 곁들이기도 하며 설명서 내용이 명확해졌다. 선진국으로 가는 징조다. 얼마 전 강아지 당뇨검사스틱을 구매했다. 첨부된 한글설명서를 아무리 읽어봐도 도저히 해석할 방법이 없었다. 자동번역기보다 못한 수준이라 분명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이 번역했을 것이라는 心證(심증)만 있다. 혹시 나만 그런가? 집사람도 포기하고 영문을 번역해가며 당뇨검사를 했다.
다행스럽게도 ‘노령연금 지급결정통지서’를 보니 영문설명서같이 간단하고 단순명료했다. (지급내역과 공제내역 등 모두 숫자이기에 해석 오류 여지가 없다.^^j) 무려 32년간, 국민연금 1억 원 납부했으니 회사 납부분 포함 2억 원을 납부한 셈이다. 지급받는 금액은 183만7천원에서 세금과 현재 소득 있는 사업에 종사하기에 일정액을 공제한다. 그런데 ‘노령연금’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국민연금 가입자가 노령연령에 도달하면 지급받는 연금이 노령연금이지만 갑자기 나이를 더 먹은 기분이 들어서다. ‘국민연금’을 내고 왜 ‘노령연금’을 받는지 의문인데 아마도 ‘노령연금’이외 여러 명칭의 연금 혜택이 있을 것으로 추론된다. 이번에는 따지지 않는 것이 현명할 것 같다.
연금 받는 친구들도 있고 미룬 친구들도 있다. 미룬 친구들 대부분은 경제활동을 하고 있으며 연금감액 폭이 커다란 친구들이다. 나도 직업을 갖고 있지만 1년 정도 남은 근무기간동안 감액된 노령연금을 지급받기로 했다. 감액이 크지 않을뿐더러 추후 공단에 변경 신청하는 일도 번거로울 것 같았다.
드디어 연금이 입금되었다. 내 돈 내고 받는 연금이지만 길 가다 돈을 주운 느낌이다. 유리지갑 샐러리맨들은 조세, 준조세에 대한 피해의식이 심하다. 조세에 대해서는 자영업자와 비교한 상대적 박탈감으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금 더 내고 유쾌한 사람은 없다. 코로나 재난지원금 말고는 국가로부터 금전적인 혜택을 받은 기억이 없기에 공돈이 생긴 기분이며 세금을 돌려받는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아무튼 ‘노령연금’이 입금됨과 동시에 국가가 인정하는 공식적인 노인이 되었다. 그렇다고 주류 노인층에 편입된 것은 아니며 아직은 周邊老人(주변노인) 또는 境界老人(경계노인)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실질적인 경로우대혜택을 받는 나이는 65세이니 ‘노인’도 아니고 ‘애’도 아닌 어정쩡한 신분을 3년간 유지하며 서툴게 ‘인턴노인’의 길을 걸어야 한다. 선배들도 65세에 받는 경로우대교통카드를 받고서야 비로소 나이든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애매한 ‘인턴노인’이어서 그런지 아직 경제활동에서 은퇴하지 못했다. 福(복)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백만장자만큼 蓄財(축재)하지 못했다는 이야기하고도 상통되지만 전자든 후자든 개의치 않는다.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않는 것이 나이 들어 좋은 점 중의 하나이며 씀씀이가 적어지니 적게 벌어도 되는 것은 나이 들면 접하게 되는 현실이다.
연봉 1억이면 1억만큼 신경 쓰이고 곤란한 일이 생기며 1천만 원이면 해당금액에 대한 책임과 의무만 주어지는 것이 합당한 이치인데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는 당연한 것이 눈에 보이지 않기에 많이 받기위해 발버둥 친다. 한발 멀어져야만 비로소 보이는 진리다. 또한 적게 벌면 적게 쓰고 많이 벌면 많이 쓰는 것으로 수지 밸런스가 자연스럽게 맞아진다. 혹독한 경제현실의 뜨거운 맛을 보지 못했기에 헛소리 한다고 할 수 있으나 뜨거운 맛을 보게 되면 그때 상황에 맞게 고민하려 한다.
여러 가지 일을 하지 못하는 뇌 구조상 한눈팔거나 부정한 곳을 기웃거리는 재주도 없었으며 개인 사업에 대한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한눈팔다 교도소에서 추운 겨울을 보내는 동료도 있고 재주 있는 이들은 연관 사업을 해서 성공한 이도 있다. 나는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퇴직해 평범하게 국가공인 노인 인증을 받은 삶에 만족하고 기뻐하고 있다. 크게 망할 걱정도 없고 동료들과 가족들이 私食(사식)을 넣어줘야 하는 폐를 끼치지 않았으니 얼마나 복된 삶인가. 행복한 인턴노인의 삶을 어떻게 즐겨야 할 것인가만 고민하면 된다. 이런 인턴노인 되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