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1.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짓말(1)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짓말(1) (손화철외著, 북바이북刊)

by 물가에 앉는 마음

오늘부터 한 달반 정도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한다. 재미있는 주제는 아니지만 산업계의 화두이기도 하고 우리 모두 직간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는 사항이다. 먼저 4차 산업혁명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의 책을 소개한다.


본 책의 제목인 ‘거짓말’은 과하다고 느껴졌지만 副題(부제) ‘과도한 열풍을 바라보는 여러 가지 시선’은 내 생각과 같았다. 어쩌면 건강한 사회는 ‘여러 가지 시선’에 의해 만들어 지는 것이나 우리는 획일적 교육을 받고, 중고등학교와 군대에서 똑같은 유니폼에 ‘10문7’이란 같은 치수 신발에 발을 맞추는 삶을 살았기에 ‘4차 산업혁명(이하 필요시 4차로 표기)’이라는 광풍에 아무 생각 없이 편승했다. 물론 ‘획일’은 후진국에서 개도국, 중진국으로 이끄는 강력한 원동력이었으나 한계에 부딪쳤고 선진국 문턱에서 수년간 맴돌고 있다. (**2006년 국민소득 2만 불, 주요선진국이 3만 불 진입에 5~6년이 소요되었으나 우리나라는 12년째 3만 불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내 자신도 ‘10문7’을 벗어버린 후, 검은 양복에 하얀 와이셔츠를 입어야하는 공기업에 입사했다. 넥타이 매지 않는다고 감사실 지적을 받을 때마다 복사해 놓은 시말서를 제출했으나 이제는 세상이, 의식이 천지개벽하듯 바뀌었다.

4차는 이미 우리 곁에 와있는데 아직 호들갑으로만 여겨지는 것은 변화에 대한 거부감이 인간 본성이기에 그럴 수도 있다. 또한, 4차의 달콤함을 맛보고 있으면서도 내 생활 기반이 아직 2차나 3차에 머무르고 있기에 많은 직업이 사라진다는 이야기를 애써 무시하고 싶은 심정에서 표출된 감정일수도 있다.

4차에 대한 책 두 권을 구입했다. 보다 냉철한 시각을 갖기 위해 4차를 비꼬는 듯한 책과 4차 혁명 10년 후 미래를 예견한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프롤로그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1차 산업혁명, 전력화와 더불어 진행된 2차 산업혁명은 불가능해 보이던 꿈을 실현했다. 1차는 대량생산으로 생존물질을 공급했다면 2차 혁명으로 세탁기가 대중화되면서 가정부라는 직업이 사라졌고 가사노동에서 벗어난 여성들이 직업을 갖게 되며 남아선호사상이 사라지는 등의 여성의 삶의 질을 높였다. 3차인 인터넷혁명이 혁명인지도 모르게 지나갔는데 어느새 4차가 등장했다. 3차와 4차는 본질적으로 같다는 지적마저 있다.


모두가 잠든 이른 새벽의 점령군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한국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한 4차, 2016.01.20일부터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의 이해’라는 주제가 논의되기는 했지만 한국이외에서는 용어 자체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는데 유독 한국에서만 혁신의 수사로 등장했다. 박근혜정부 시절 2013년부터 3년간, 4대강사업과 같은 규모인 21.5조원이 창조경제예산으로 투입되었다. 2017년 5월 대통령선거의 이슈중의 하나도 4차였으나 대다수 국민들은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을 느꼈다.

4차는 실체 없는 유령 같지만 아이를 돌보는 로봇, 자율주행자동차 등이 우리 삶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많은 논란에도 ‘2011년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의 65%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 직업을 가지게 될 것(뉴욕주립대대학원센터 캐시 데이비슨 교수)’, ‘앞으로 10년 20년 정도면 미국 고용자의 절반 가까이가 하고 있는 일이 자동화될 가능성이 높다(옥스퍼드대학 마이클 오스본 준교수)’의 예측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은 2020년부터 4지선다형 시험을 폐지하기로 했는데 ‘학력’과 ‘생각하는 힘’이라는 두 개의 가치관 중에서 ‘생각하는 힘’을 선택한 것이다. 또한 문부과학성은 ‘학교가 길러줘야 할 3가지 힘’으로 ‘과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협력하여 일하는 힘,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힘, 창의적인 사고력’을 제시 했다. 이제 학교에서는 티칭이 사라지고 학생 스스로 학습하는 러닝이 대세가 될 것이고 교사는 학생을 도와주는 코치로 역할이 바뀔 것이다. 평생 학습하는 방법을 알려줘 급변하는 세계에 적응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하며 문제인 정부가 교육부터 완전 혁신해야 하는 이유이다.


4차 산업혁명과 노동의 자리: 러다이트 운동의 교훈(손화철 한동대 기술철학교수)

역사는 기록하고 이를 이용하는 이들에게만 유리한 것이어서 나름 치열하게 살았던 옛날사람들의 삶은 평가와 비판이 되고 만다. 1차 산업혁명 당시 영국에서 새로 생긴 직조기계를 부수고 불태웠던 러다이트운동의 숙련기술자들, 그들의 저항은 역사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한 시대착오적 사고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들은 실직 후 다른 직업을 가졌겠지만 이전보다 나은 삶을 살았다고 보기 어렵다. 4차를 구성하는 기술들은 단순 반복적인 일만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모라백의 역설인 ‘인간에게 쉬운 일은 기계가 하기 힘들고, 기계에게 쉬운 일은 인간에게 어렵다.’는 논리를 허물게 되어 ‘보통 인간에게도 힘든 몇 가지만 빼고는 기계가 더 잘한다.’는 현실이 가까워 질것이다. 러다이트 운동이 시대변화에 대한 과민반응이었다는 생각은 여러 이유로 4차가 허구적인 개념일 뿐이라는 주장과 묘하게 연결되나 인공지능이 보여준 가능성은 인류에게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이란 점은 분명해 보인다.


전기가 중심이 되었던 2차, 컴퓨터가 중심이 되었던 3차는 더 많은 사람이 동력과 정보를 사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권력이 과거보다 더 고루 분산되게 하는 효과를 낳았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4차는 정보와 권력의 극단적인 양극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고 속도 또한 빨라 어떻게 통제하고 겨인, 선도할것인지에 대한 합의도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으로 ‘우리에게 어떤 변화가 닥칠 것인가? 우리는 어떤 미래를 원하는지? 우리는 어떤 세상에서 살기를 원하는가? 어떤 세상이 우리에게 그리고 우리 자손들의 자유와 존엄을 지속가능하게 하는가? 그 세상에서 인간 노동의 자리는 어디며, 오늘 개발되는 이 기술은 그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어떻게 기여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이 질문은 4차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설계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그 발전의 방향과 목표를 기획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과 시민 테크놀로지적 전망(이광석 서울과기대교수)

유독 한국 언론이 강조하고 있지만 4차는 아직도 실체가 불분명하나 대중의 의식을 빠르게 장악하고 있으며 정권교체와 더불어 ‘창조경제’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대선주자도 4차를 공약하고 냉철해야할 학계도 난리다. 4차의 기술들이 대한민국의 적폐와 현실을 돌파하는 혁신의 수사로 등극했는데 지난 십여 년간 지속되어온 정치의 붕괴 때문이리라.

1990년 초중반 미국 클린턴행정부주관 ‘정보 초고속도로’구상은 자본주의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떠올랐다. 김영삼정부는 이를 벤치마킹하고 성장 동력을 구체화하여 디지털 강국으로 부상했다. 일부 경제 성장론자들은 4차가 그 당시와 매우 흡사하다고 이야기 한다. 이들은 독일의 인더스트리 4.0(2011), 일본의 로봇 신전략(2015), 중국의 중국 제조 2025, 미국 백악관의 ‘인공지능과 자동화가 미치는 경제적 영향’보고서에 주목한다. 경제적 성공신화의 반복을 믿는 성장론자들은 이들 정황이 국내 IT저성장의 불명예를 탈출할 타이밍으로 보고 있다. 엘리트 계층이 4차를 통해 경제적 성공신화를 기대하는 반면 대다수 국민들은 실직과 빈부격차의 심화를 우려하고 있다. 이로 인해 다가올 과학기술 혁신의 실체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4차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것이 일반시민들의 삶에 어떤 의미인지, 어떤 의미를 만들어 낼 것인지 어느 누구도 이해시키려 하지 않고 그저 대세의 논리요, 고용과 국부의 문제일 뿐이다. 4차가 신기루에 멈춰있지 않으려면 새로운 기술패러다임이 시민사회에 어떤 의미를 줄 것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빅데이터가 데이터 비즈니스의 활성화, 플랫폼 경제는 자원의 효율성을, 사물인터넷은 유통의 혁신을, 증강현실은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인공지능은 의 자유화를, 메이커 운동은 유연한 일자리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대중의 삶에 긍정적 효과를 미치지 못한다. 이들 기술을 매개한 사회적 공생의 미덕은 어디에도 없다.

4차의 기술요소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주인-노예가 아닌 인간과 기계의 공생을 통해 인권을 진작하는 기술의 성찰적 가치를 감안했으면 한다. 시민들이 거역할 수 없는 첨단기술을 통한 발전주의로만 접근한다면 인권과 삶의 질은 저하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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