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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1. 조직에 던져야 하는 화두

조직 상황에 맞는 화두

by 물가에 앉는 마음

조장과 주임이라는 직위도 있지만 팀장이 된 후부터 비로소 독립된 자기 조직을 갖게 된다. 이때부터는 조직 관리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있어야 한다. 철학이 있는 조직과 없는 조직은 조직원의 의식과 행동거지가 다르다. ‘철학’이라고 하니 골치 아파지려 하는 분들이 있어 여기에서 말하는 ‘철학’이란 ‘조직을 이끄는 관리자의 생각’이라고 하는 것이 좋겠고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하여 이야기하는 주제라는 의미이니 편하게 줄여서 話頭(화두)라고 표현하겠다.


울진과 영광에서 전기팀장을 할 때 팀에 던진 화두는 ‘단합’과 ‘출근이 기다려지는 전기팀’이었다. 시운전사업소 신설조직으로 전국 각지에서 모인 직원들이니 요즈음 젊은 친구들 용어인 속칭 ‘케미’가 중요한 시기였다. 또한, 원자력발전소 업무 특성상 단독작업이 아니라 복수의 직원들이 업무를 해야 하므로 ‘단합’을 강조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직장이 지옥 아닌 천국이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근이 기다려지는 전기팀’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 했다. 전기팀 식구들은 이를 충실히 실행해 항상 웃음이 끊이지 않는 분위기를 만들어 나갔다. 즐겁게 일하고, 열심히 노는 것을 보고 고객들은 우리 식구들과 어울려 운동하기를 희망했고 심지어는 점심식사도 우리 사무실에 와서 우리 식구들과 같이 했다. 출근이 기다려지는 직장에 다니는 직원들의 일하는 자세가 타 발전소, 타 팀과는 근본적으로 달랐으며 고객의 자재를 아껴 쓰고 작업장은 청결했고 휴식시간에도 질서 있게 휴식을 했으니 고객들까지도 좋아할만한 조직이었다.


본사 기술처에 던진 화두는 ‘사업화를 전제로 한 기술개발’, ‘출근이 기다려지는 기술처’였다. 본사에서 제일 잘 나가던 기술처가 몰락한 원인은 기술개발 전략의 부재였다. 기술개발의 방향성을 명확히 하는 것이 급선무였기에 ‘사업화를 전제로 한 기술개발’을 화두로 던졌고 또한, 기술처 전체 직원을 교체했기에 업무는 밀리고 고되지만 분위기만은 행복하자는 의미에서 ‘출근이 기다려지는 기술처’라는 화두를 내놓았다. 나는 아무리 심오한 뜻이 담겨져 있다 해도 와 닿지 않는 추상적이거나 모호한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가슴에 와 닿는다면 더욱 좋겠지만 읽으면 쉽게 이해되는 직관적 표현과 바로 행동으로 이어지는 화두를 좋아 한다, 표현이 유치해도 가고자 하는 방향이 명확한 것이라면 훌륭한 화두라고 생각한다.

고맙게도 교체된 기술처 식구들은 내가 던진 화두를 이해했다. 전 직원의 출근시간을 앞당기고 2년간 무던히 노력한 끝에 기술개발 체계와 방향성을 재정립하고 조직을 복원시켰다. 조직이 복원된다는 소문이 돌자마자 노동조합 위원장님이 찾아 오셨다. ‘조직재건을 축하드립니다. 지난 2년간 처장님께서는 변함없이 새벽에 출근하셨고 모든 직원들이 일찍 출근해서 불평 없이 일해 조직이 재건되었으니 직원들 출근시간을 정상화 시켜 주셨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아직 할 일이 많지만 급한 불은 껐으니까 오랜 기간 고생한 직원들을 정상출근을 시키려 합니다. 불평 없이 일 해준 직원들도 고맙고 지켜봐주신 위원장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전력사업처에서의 화두는 ‘청렴, 신상필벌, 열정’ ‘신사업개발 및 매출 1000억 달성’이었다. 500여명이 전국에 산재되어 업무를 하는 송변전조직은 특수직군이며 발전소와 인력교류가 없어 오랜 기간 다른 세상을 겪어보지 않은 별똥부대 같은 조직이었다. 부임 전 파악한 전력사업분야의 문제는 ’청렴하지 않은 조직문화, 패배의식에 사로잡힌 본사 조직, 매너리즘에 빠진 사업소 조직문화, 정체된 매출‘이었다. 몇몇 문제 있는 인사들로 인해 조직전체가 매도되는 부분도 없지 않았으나 노사가 협력하여 조직 문화를 바꾸려 노력했다. 열정적으로 일한 식구들 덕분에 매출 신장률은 회사 내 1등을 차지했고, ’만년꼴등의 패배감‘을 떨쳐내고 ’하면 된다.‘라는 긍정 마인드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력사업처를 떠나고 난후 불거진 ’청렴‘문제로 인해 전력사업분야 전 직원들이 매도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되었다.


GT정비기술센터에 와서 던진 화두는 ‘매출 증대’, ‘양보, 배려, 역지사지’이다.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해 부임하자마자 구조조정을 시작했으니 ‘매출 증대’는 가장 중요한 화두였다. 구조조정과정에서 당연히 발생되는 갈등은 ‘시기와 반목’이며 지속 시에는 조직문화가 망가지며 매출도 저하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모든 식구들이 한발씩 물러나는 ‘양보, 배려, 역지사지’가 필요했다.

모든 식구들이 ‘매출=보직 유지’라는 간단한 공식을 이해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커다란 홍역 없이 구조조정이 마무리 되었고 시장상황은 더욱 악화되었으나 매출을 올리고자 하는 마음이 모아지니 조직 분위기는 좋아졌고 경영상황도 조금이나마 개선되었다.


조직 상황에 맞는 화두를 던진 후 충실히 이행한 조직은 흥했고, 따라오지 못한 조직은 곤란을 겪었다는 말씀을 드리려는 것이 아니다. ‘단합’, ‘청렴’, ‘열정’, ‘신상필벌’, ‘배려와 양보’, ‘출근이 기다려지는 조직’ 등의 화두는 아주 간단한 것들이었으며 어느 조직이나 지켜야 할 기본적인 덕목과 지향하는 목표였다. 각 조직의 문화와 위크포인트에 따라 강조한 것이 조금씩 달랐을 뿐이다.

서두에서 말씀드렸듯 조직을 이끄는 리더의 ‘철학’은 매우 중요하다. 대처수상의 아버지는 마거릿이 어렸을 때부터 ‘생각은 말이 되고, 말은 행동이 되며, 습관, 인격, 미래가 된다.’고 강조했다. 이는 아버지의 철학이었고 마거릿 대처의 철학이 되었다. 철학은 본인 미래도 결정하지만 리더의 철학은 구성원들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중요 요소이며, 리더의 철학을 조직 식구들이 이해해야 다함께 성공의 길로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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