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9. 인문학은 삶의 기술이다.

인문학은 상상력을 키워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게 하고

by 물가에 앉는 마음

개인의 인생관이 다르므로 인문학을 왜 공부해야 하는가에 대해 명확하게 정의를 내리기 어렵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한 것 같다. 공학이 생계를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학문이라면 인문학은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기술이며 지혜이다. 회사 내에서도 업무하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전공서적을 펼쳐 해답을 찾는데 인생을 살다가 먹히는 부분이 있다면 당연히 해답을 구해야 한다. 고민이 많을 때 목사님과 또는 스님과 상의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분들은 철학과 종교학 등 인문학에 능통하시기 때문이다.


예전 장모님께서 돌아가신 후 통도사 인근 암자에서 천도제를 지냈다. 잘생긴 얼굴에 광채 나는 눈빛의 주지스님은 이름난 全國區(전국구) 큰스님은 아니었으나 하셨던 말씀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인간들은 어려움이 있을 때 어려움을 없애 달라고 부처님께 기원을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어려움을 없애 주시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 방법을 제시하시는 것이다. 나는 부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論理整然(논리정연)한 哲學(철학)으로서의 불교를 믿는 것이다. 부처님을 믿지 않으면 地獄(지옥)에 떨어지고, 믿으면 極樂 (극락)간다고 부처께서 이야기를 하셨다면 중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부처님을 믿고 잘 보여야 극락에 간다고 하면 극락에 간 다음에 부처님께 잘못 보일경우 지옥에 갈 수 있다는 이야기이며 극락 가서도 부처님께 잘 보이기 위해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니 부처님을 믿는 것 자체가 마음이 편치 않은 일일 것이다.

‘부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논리 정연한 철학으로서의 불교...’ 땡중이 아닌가 했는데 이제야 스님 말씀의 의미를 알 것 같다. 인문학이 문, 사, 철을 아우르고 있기에 철학으로서의 불교를 공부하신 땡중 아닌 스님은 인간사 고민거리를 상담해줄만한 경지에 이르게 된 것은 아닐까 한다,


인간적인 삶의 방식을 공부해서 깨닫고 실천하기는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격몽요결과 명심보감, 사서삼경이 교과서 였으며 ‘예’와 ‘도’가 사회를 지탱하는 정신이었고 양반들은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생각했고, 평민도 인간답게 사는 것을 추구했다. 평민들도 부끄러움과 수치심 즉 인간답게 사는 법을 먼저 깨우쳤다. 하지만 최근의 교육은 거꾸로 되었다. 고등학교까지는 대학가는 기술을 가르치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인문학은 뒷전으로 밀려나 대학 1학년 때 교양과목으로만 가르치며 학생들은 학점을 따기 위한 과목중의 하나로 치부하는 것이 현실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법에 대해 맹자는 이야기했다. ‘부끄러움, 수치심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진실로 중대한 것이다. 쥐는 쥐답고 고양이는 고양이답고, 호랑이는 호랑이답듯이, 인간을 인간답다고 하는 것은 부끄러움, 수치심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남을 배려하고 위하는 마음인 측은지심’과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느끼는 마음인 수오지심’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마음은 욕심을 줄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욕심에 가득차 있으면 남을 배려하고 위하거나,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것을 바로 잡으려는 용기 또한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유교식 학문의 정의는 ‘인간(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으로 살면서 익혀야할 최초이자 최후의 기술’이며 현대식 용어로는 인문학이라 부른다. 하버드대학에서 75년간 724명을 대상으로 행복에 대한 연구를 한 결과 돈, 힘이 아닌 인간관계가 좋은 사람이 더욱 행복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많은 돈을 벌기 원하고. 더욱 행복해지기 위해 권력을 탐한다. 하지만 돈과 권력이 없어졌을 때 진정한 친구는 곁을 지키지만 대부분은 떠난다. 역설적으로 역지사지의 정신 하나만 알고 실천해도 행복하다는 이야기이며 측은지심과 수오지심과도 일맥상통한다.


인문학은 상상력을 키워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게 하고, 고난한 삶을 견디는 기술을 습득시켜주며 더불어 살아가는 기술을 가르쳐준다. 공부하고 있는 하수의 주장 말고 고수의 말을 빌어보자.


단순히 학문적인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고 교양을 함양하는 데에 그쳐서는 안 된다. 인문학을 통해 배운 것들을 자신의 삶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하고 일상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데 인문학으로 유연해진 사고방식의 덕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인문학은 궁극적으로 삶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며, 인간에 대한 보편적 가치의 회복이다. 이를 깨우쳐 인격의 도야로 나아가는 것이 바로 인문학이다. 인문학을 통해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인문학은 밥이다. (김경집著, 알에이치코리아刊)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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