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6. 손흥민과 ‘수탉문장’

자아실현이라는 부분을 도외시해서는 발전할 수 없는 시대

by 물가에 앉는 마음



남자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스포츠는 단연 축구다. 오늘은 한국인 비전문가의 시각에서 선수 평가를 해 보겠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핫스퍼는 상위권 팀에는 분명하지만 우승하기에는 전력이 조금 부족해 보인다. 주 공격수 해리 케인은 손흥민 보다 높은 연봉을 받는 리그 최고의 공격수다. 손흥민으로 인해 더욱 유명해진(?) 해리 케인의 이적을 놓고 구단은 많은 이적료를 요구하고 있다. 구단은 2400억 원이란 막대한 이적료를 요구해 선수의 이적을 막고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적자에 빠진 구단의 채무를 단번에 해결하고 싶은듯하다. 반면 선수입장에서는 고액의 이적료는 영광이기도 하지만 족쇄역할을 한다.

모 축구전문기자가 토트넘에 관한 발칙한 기사를 썼다. ‘팀 내 최고선수인 케인의 꿈은 우승컵을 들어보는 것으로 우승 가능한 팀으로 이적하는 것인데 반해, 주급 2억 원에서 3억 원으로 계약한 손흥민은 우승컵보다는 ‘돈’을 택했다.’ 물론 축구기자가 이방인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은 면도 있을 테지만 분명 도를 지나친 부분이 있어 보인다.

자신의 주관적 잣대로 남을 재단하는 것은 무례한 일이며 언어폭력에 가깝다. 이성적이며 예의범절을 중시하는 한국인들은 화가 난다고 해도 ‘세계 제1의 언론지인 washington post나 Time誌 기자도 아닌 일개 축구기자가...’ 하는 식의 비난은 하지 않는다. 논리적으로 판단하면 스포츠신문사는 축구에 관한한 washington post보다 전문적이며 축구전문기자가 Time誌기자보다 축구계를 많이 알고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발칙한 축구전문기자가 놓친 부분이 있다. 모든 사람은 고유의 가치관이 있기에 사안의 단편을 보고 전부라고 말할 수 없으며, 손흥민이 조직에 대한 로열티 강한 한국인이란 점을 간과한 것이다. 해리 케인이 토트넘 핫스퍼와 계약한 연봉은 팀 내 최고 대우를 보장하는 주급 3억 원이다. 손흥민이 재계약하며 주급이 3억 원을 넘었다면 케인의 주급은 당연히 인상되었을 것이다. 케인에게 중요한 것은 팀 내 최고연봉을 받는 최고선수로서의 대우이며, 선수시절 프리미어리그 우승컵을 들어보는 것일 것이다. 최고선수라는 자아가 실현되었으니 다음 목표인 ‘우승컵’을 들기 위해서는 토트넘 핫스퍼의 ‘수탉문장’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팀에 대한 로열티가 떨어진다고 해리 케인을 비난하지 않는다.

모 축구기자가 손흥민을 폄하했지만 축구선수에게는 프리미어리거가 된 것만 해도 커다란 영광이다. 한국야구 최고투수라던 양현종은 꿈의 무대인 메이저리그 입성을 위해 한국야구에 깔려져 있는 편한 꽃길을 포기했다. 양현종의 요구조건은 돈보다는 메이저리거가 되는 것이었기에 리그 하위 팀과 불리한 계약 끝에 겨우 마운드에 설 수 있었다. 손흥민에게도 고액의 연봉과 우승컵은 부차적인 목표였는지 모른다. 우선 프리미어리거가 되는 것, 다음은 주전이 되어 매년 20골 이상 넣는 것 이었을 수 있다. 손흥민의 재능은 토트넘 핫스퍼에서 빛을 발했고 손흥민에게 ‘수탉문장’은 해리 케인이 가졌던 의미와는 판이하게 달랐을 것이다. 실제 손흥민은 다른 팀에 가고 싶지 않아 토트넘과 재계약 했다고 말해 토트넘 팬들을 열광시켰다. (손흥민 광팬들은 동상을 세우겠다고 난리다.)


본사에 첫발을 디딘 것이 1988년 8월1일 이었다. 88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있어 삼성동 본사에서 보면 잠실운동장에 커다랗게 붙어있는 오륜마크 색상이 선명했었다. 기술기획처에 첫발을 내딛었고 이후 몇 번의 전근에도 불구하고 사업소에서 본사로 돌아 올 때는 연어가 회귀하는 것처럼 기술기획처로 돌아왔다.

1988년에는 고향이 서울이고 집에서 다닐 수 있으니 본사를 지원했지 기술기획처에 첫발을 디딜 때는 아무런 각오나 생각이 없었다. 첫발을 디딘 후 시간이 흐르는 동안 모든 조직이 그렇듯 기술기획처도 부침을 거듭했으며 20년이 지난 후 내가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기술기획처를 떠나 사업소에 근무하는 동안 본사에서 가장 컸던 조직은 와해되어 처에서 실로 강등되었고 급기야 팀으로 전락했다. 조직의 위상을 감안하면 실장직급인 내가 가면 안 되는 조직이었으나 기술회사에서 기술기획처가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주관적 생각이 작동했다. 또한, 내가 기술기획처의 최고 선임이니 조직 복원의 책임감도 있지만, 버킷리스트에서 원했던 ‘존경받는 처장’이란 ‘기술기획처장’이 아니었던가? 하는 自我實現(자아실현) 욕구도 작동했다. 내가 조직을 살려야 한다는 自意(자의)도 있었고, 당신이 책임지고 조직을 되돌려 놓아야 한다며 등 떠미는 동료들의 他意(타의)도 있었으나 결국 중요한 것은 ‘自我實現’이었다. 생각을 정리하고 목표를 설정하니 직무급이 적게 나오는 금전문제와도 무관했고 실장이 팀장으로 불리는 직급 디스카운트도 상관없었다. 신임CEO에게 내가 걸어온 길을 설명드리고 조직발전 구상을 밝힌 뒤 조직을 맡겨달라고 부탁드렸다.


회사도 종업원의 자아실현이라는 부분을 도외시해서는 발전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자아실현은 각 개인이 보유한 잠재능력을 최대한 개발/발전시키려는 욕구이기에 능동성과 창의성과도 관련되어 있다. 피동적이며 수직적인 조직문화를 가진 기업은 경쟁이 치열한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는 것이 불가능하다. 공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공기업의 존재의미는 공적기능을 하는 것이며, 공적기능을 민간 기업이 대체하는 순간 공기업의 수명은 다한 것이다. 공기업도 민간기업을 능가하겠다는 의지와 변화가 없다면 이미 도태의 길에 접어든 것이다.

가끔 후배들에게 곤란한 질문을 받는다. ‘선배님 보실 때 회사가 언제까지 버틸 것 같습니까?’ ‘10년?, 공기업이지만 당신은 정년퇴직 못할 수도 있다.’ 사실 10년은 매우 오랜 기간이자 준비 없는 조직에게는 너무 짧은 기간이기도 하다.

해리 케인과 손흥민에게 토트넘 핫스퍼 ‘수탉문장’의 의미는 매우 다른 것처럼, 자아실현의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조직에 대한 로열티는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대부분은 손흥민에게 다가온 ‘수탉문장’의 의미로 인식될 것이기에 죽 쒀서 개주는 일은 드물 것이다.


구시대적으로 조직에 충성하라는 잔소리는 더 이상 씨도 먹히지 않고 오히려 반발심만 키우게 된다. 조직원들이 스스로 일하며 업무와 조직에 대한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 진다면? 일에서 보람을 찾고 성취감을 느낀다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아도 스스로 강해지는 조직이 된다. 회사와 종사자들 모두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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