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잘하는 정치, 즉 無爲而治(무위이치)
주관적 판단이지만 ‘정치하는 것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이 가장 잘하는 정치, 즉 無爲而治(무위이치)’라 생각하는데 소란스러운 정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정치의 시대에 살고 있는 듯하다. 協治(협치)라는 단어를 실종시킨 여와 야는 말할 것도 없고, 이제는 검찰 내부, 사법부까지 소란스럽다. 혹자는 ‘소란’을 ‘적폐청산’, ‘역동’이라 표현하지만 ‘불협화음’, ‘불신’으로만 보인다.
서양철학을 좋아하지 않지만 논리적인 면에서는 동양철학을 능가하고 체계적이기에 국가와 국가론 등을 검색해보면 서양철학 관점의 자료들이 많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개인은 국가 지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자유와 권리를 조금 양보하는 것이 본인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 본성은 이익을 추구하기에 다툼을 방지하기위해 법을 만든다. 그러나 권력者가 법을 만들 때 본인에게 이익이 되게끔 할 수도 있고, 법을 안 지키고도 처벌 받지 않게끔 손을 쓸 것이다. 그래서 플라톤은 절대적 선과 진리를 추구하는 철인정치를 주장했으며 민주주의를 증오했다. 그러나 철인정치는 이상적이며 독재에 가까우니 혼란이 있더라도 민주주의로 가야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물론 ‘짐이 곧 국가다.’라는 절대왕정 시기도 거쳤으며 현재도 강력한 대통령제를 채택한 일부국가에서는 절대왕정의 잔재도 남아 있는 듯하다.”
물론 다양한 의견표출이 가능한 민주주의이니 소란스러운 것이 당연하다할지 모르겠으나 과연 그들이 국민을 위해 소리치며 멱살을 잡고 있는 것인지 확신하기 어렵다. 혹시 국민들은 뒷전이고 자신이 속해있는 정파를 위해, 차기 선거와 본인 당선을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드는 것은 아래 문장이 자꾸 눈에 밟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본성은 이익을 추구하기에 다툼을 방지하기위해 법을 만든다. 그러나 권력 있는 者가 법을 만들 때 본인에게 이익이 되게끔 할 수도 있고, 법을 안 지키고도 처벌 받지 않게끔 손을 쓸 것이다.’
단편적인 예로 공복과 머슴을 자처했던 이들이 당선 후에는 태도가 돌변해 주인과 상전행세를 하며 ‘게리맨더링과 같은 의미인 선거구획정과 의석수 증가논란’을 벌이는데, 국민 이익은 뒷전이고 본인 이익이 우선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행태다. 정치가 국민을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정치를 위로하고 국가의 앞날을 걱정한다면 주객이 전도된 것이며, 이러한 현상이 심화된다면 정치 무용론이 대두되어 청와대로 1번지와 의사당대로 1번지에서 301명의 신규실업자가 발생될까 우려스럽다.
독재자로 불리지만 경제발전을 이루는데 기여한 박정희대통령에 대한 功過(공과)평가는 현재진행형이다. 물론 보수정권하에서의 평가는 ‘한국을 선진국반열에 올려놓은 존경받는 대통령이나 시대여건상 약간의 독재도 필요했다.’이며 진보정권하의 평가는 ‘독재자’란 단어가 앞선다. 어릴 적 대한뉴스를 보면 박대통령이 모내기 하다 진흙 묻은 장화에 런닝셔츠를 입고 소박한 안주에 막걸리를 마시는 장면이 자주 나왔고, 청와대 만찬에 초대받은 선친이 ‘우리 집 반찬과 비슷하더라.’하셨기에 개인적으로는 소탈하고 검소한 대통령으로 기억한다. 1969년 3선 개헌과 1972년 유신헌법을 제정해 영구집권을 꿈꾸던 박대통령은 1979년 서거했다. 궁정동 안가에서의 마지막 모습은 대한뉴스의 소탈과 검소와는 거리가 있었다.
배곯던 국민들은 기아를 면하고 잘 살 수 있게 되었고 전쟁의 폐허에서 쇠를 만들고 배를 건조하는 산업국가로 변모했다. 하지만 측근들과 재벌들은 축재를 했고 산업화, 근대화 부작용으로 빈부격차는 커졌다. 박정희대통령이 꿈꾸던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는지, 소탈과 검소는 연출된 결과인지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박정희대통령이 독재와 가식의 탈을 썼더라도 그를 중심으로 국민들을 뭉치게 하는 카리스마의 화신이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강력한 리더십과 국민들의 믿음이 없었다면 한강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물론 정직과 신용의 대명사인 미국에도 거짓말쟁이와 사기꾼이 있다. 닉슨대통령은 거짓말로 인해 탄핵과정 중 사퇴했다. 닉슨대통령 시절 비서실에서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조지 맥거번 사무실에 도청장치를 설치, 불법 사찰하려 했다. 그러나 도청장치가 고장 나 재설치하는 과정에서 경비원에 발각되어 미수에 그친 일이 있었다. 조지 맥거번이 워낙 약한 상대였기에 사과만 했어도 끝날 일을 닉슨은 지속적으로 사건을 은폐, 축소하려 했으며 도청은 자신과 무관하다고 거짓말 했다. 국민들은 대통령의 거짓말에 분노했고, 결국 닉슨은 상원 탄핵 의결 직전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세계는 사소한(?) 거짓말로 인해 닉슨에 대한 탄핵절차가 진행되는 것을 보고 미국의 위대함에 놀랐다.
그로부터 거의 반세기가 지났다. 미국은 변함없이 부동의 세계 1위 국가이나 ‘정직과 신용의 대명사인 미국’이란 수식어가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미국이 변했는지 입만 열면 거짓말 하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다. 전임 오바마대통령과 대비 편차가 너무 컸기에 약간의 시각적 오류도 있었지만 세계인들은 닉슨대통령 이후 다시 한 번 크게 놀랐다. ‘미국 수준이 저 정도밖에 되지 않나? 미국의 위대함은 어디에 갔을까? 어떻게 저렇게 허술하고 부도덕한 나라가 세계 최강국이 될 수 있었을까?’ 결국 트럼프는 하원에서 두 번이나 탄핵안이 가결된 최초의 대통령이 되었으며 비웃음을 받으며 초라하게 퇴임했다. 한 번의 거짓말로 대통령직을 사임했던 닉슨에 비해 트럼프는 눈뜨면 거짓말을 하는 달인 실력인데 임기를 마쳤다는 것이 신기하다. 트럼프 功過에 대한 평가와 사법절차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나 파산, 구속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2021.02.04 부동산대책은 문재인정부 25번째 대책이며 진심으로 성공하길 바란다. 신임 담당 장관은 25번째가 아닌 ‘새로운 시작’으로 봐 달라 했지만 ‘새로운 시작’이란 단어가 26, 27번째 대책을 예고하는 것 같아 걱정스럽기만 하다. 25번째 대책이 ‘진정한 마지막’대책이 되었으면 한다.
25번째 대책 발표 후 방송매체가 전문가 의견을 인용 보도햇다. ‘이 대책의 장점은 우선 정비사업 속도가 빨라지며 기존의 법적상한도 120%까지 높여, 주택 조합원에게 기존대비 10~30%포인트 추가 수익을 보장한다고 한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적용이 면제되고, 재건축 조합원 2년 거주 의무도 생기지 않는다.’ 반면 문제점은 ‘LH·SH공사에 자산 소유권과 사업권을 모두 넘겨야 한다는 점이다. 결국 소유권을 공공이 모두 가져가 개발하겠다는 것인데, 도대체 정부 말을 어떻게 믿고 소유권을 모두 맡기겠느냐.’
정부 부동산정책의 성공, 실패여부를 떠나 국민이 정부를 믿지 못하겠다는 대목에서 눈을 의심해 다시 읽어봤다. 이런 상황이면 위정자들은 책임을 느끼고 사퇴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판단되지만 그럴 리 없으므로 적어도 곤혹스러워 했으면 좋겠다. 이전까지 24번의 대책에도 불구하고 정책 효과가 없었다는 것에 곤혹스러워야 하고, 시장과 국민 신뢰를 잃었다는 점에서는 심각성을 느껴야 한다.
LH직원들이 내부정보를 이용해 투기 했다고 시끄러운 와중에 5%이상 임대료를 인상 못하는 임대차3법 시행직전 임대료를 인상한 김상조(14.1%) 청와대 정책실장은 경질되었고, 임대차3법에 찬성표를 던진 국회의원 김홍걸(61.0%), 박주민(9.2%) 송기헌(26.0%)의원도 과도한 인상을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도대체 정부 말을 어떻게 믿고 소유권을 모두 맡기겠느냐.’는 불신이 현실화 되었으니 국민들은 누구를 믿어야 하는지? ‘과연 국가를 믿어야 하나? 아니 믿을 수 있을까?’
* 문재인 대통령은 그동안 "부동산 문제는 우리 정부가 자신 있다."했지만 최근 들어 "부동산 문제만큼은 할 말이 없다"고 자인할 만큼 부동산 정책은 '실패'로 귀결됐다. 속이는 것보다 솔직하게 잘못을 털어 놓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대책을 강구한다면 국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여지가 남았다.
결국 정치, 국가, 조직, 리더의 존립기반은 ‘民無信不立(민무신불립)’으로 귀결된다. 국민들은 자신의 이익을 대변해줄 사람과 정당을 선거를 통해 지지하고 선출하는데 투표권을 행사한다. 선출된 이들은 법을 만들고 집행하며 국민 권익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국민들은 이들의 잘잘못을 가리고 실적을 평가해 차기 선거에 반영한다. 이러한 순환 굴레가 삐걱거림이 없고 소란스러움 없이 잘 굴러가야 서로 믿는 정직과 신용, 民無信不立 이라는 보편타당한 진리가 바로 선다고 생각하는데 작금의 소란스러운 상황을 보면 국가, 정치인에 대해 완전한 믿음을 줄 수 없을 듯하다. 이 대목을 읽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상하게도 자꾸만 눈에 밟힌다.
'혹시 국민들은 뒷전이고 자신이 속해있는 정파를 위해, 차기 선거를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드는 것은 아래 문장이 자꾸 눈에 밟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본성은 이익을 추구하기에 다툼을 방지하기위해 법을 만든다. 그러나 권력 있는 者가 법을 만들 때 본인에게 이익이 되게끔 할 수도 있고, 법을 안 지키고도 처벌 받지 않게끔 손을 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