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근담(2)(쑨하오가 쓰고 이성희가 옮김, 시그마북스刊)
처세술은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기술로 ‘어울려 살아가는’에 방점을 찍어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가? 물어보면 거의 모든 인문서적들이 해당되나 그중 채근담에는 특별한 내용이 있다. 현실타협과 부정에 대한 이해인데 ‘너무 맑은 물에는 고기가 살지 못한다.’는 구절이 대표적이다. 1644년경 쓰인 책으로 기원전 쓰인 고전과는 세상을 보는 관점이 현대적이다.
제2장 인격과 마음을 성장시키는 깨달음
잠잠함은 인격을 수련하고 마음을 성장시켜주는 중요한 원칙이다. 마음이 호수와 같이 잠잠할 때에만 사심과 잡념을 떨쳐내 욕망을 없앨 수 있으며 평온한 마음과 온화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 물에 비친달 꿈속의 꽃은 환상에 있는 물건으로 의지할 수 없으며 욕심을 부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정욕과 물욕 역시 한바탕 꿈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마음은 잠잠한 것이 좋고 뜻과 생각은 다듬는 것이 옳다. 마음 밭은 항상 비어 있어야 하며 욕심을 내는 것은 옳지 않다. 욕심이 없고 마음이 깨끗해야 뜻을 밝게 가질 수 있고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해야 포부를 이룰 수 있다. 이런 마음이야 말로 한 점의 티도 묻지 않은 맑은 거울과 같이 헛된 생각의 습격에 혼란해지지 않고 힘 있게 사람의 본성을 비춰줄 수 있다.
도덕을 지키고 부귀와 권세에 아첨하지 마라.
도덕준칙을 굳게 지키는 사람은 잠시 적막할 수도 있다. 그러나 권세와 부귀에 의지하려는 사람은 영원히 고독하다. 마음이 넓은 사람은 세상을 떠난 후 천고에 남을 명예를 생각한다. 그렇기에 도덕준칙을 지켜 잠시의 적막을 견뎌내고, 권세와 부귀에 의지해 처량한 대우를 받지 않으려 노력한다.
진정한 맛은 담백한 맛이고 진정한 인격자는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다.
독한 술맛, 기름진 고기 맛, 매콤한 맛, 달콤한 맛은 결코 진정한 맛이 아니다. 진정한 맛이란 깨끗하고 담백하며 부드러운 맛이다. 언행이 출중하며 신기한 매력을 지닌 사람은 진정 완전한 인격자가 아니다. 완전한 인격자는 보통사람과 같이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다.
비록 숲과 물에 거할지라도 마음에는 나라를 다스리는 뜻을 품어라.
요직에 거하며 두둑한 봉록을 받는 고관일수록 숲 속에 은거하며 명예와 이익에 관심이 없는 사람과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숲 속과 맑은 물가에 은거하는 사람일수록 국가를 다스리는 큰 뜻과 재능을 가슴에 품고 있어야 한다.
군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옳은 일을 한다.
간에 병이 있으면 눈이 안 보이는 증상이, 신장에 문제가 있으면 귀가 안 들리는 증상이 나타난다. 병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발생하지만 그 증상은 분명히 눈에 보이는 곳에 나타난다. 그러므로 밝은 곳에서 잘못을 드러내지 않으려면, 잘 드러나지 않는 작은 일부터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부유해도 사치하면 부족하고 가난해도 절약하면 넉넉하다.
탐욕스러우면 부유할 수 없고, 족한 줄 알면 가난하지 않는다.
사치하는 사람은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만족할 줄 모른다. 이런 사람은 가난하지만 절약해서 여유로운 사람과 비교할 수 있을까? 능력 있는 사람은 열심히 일하고도 타인의 원망을 살 수 있으니, 이는 어리석은 사람이 편히 지내며 자신의 순수한 본성을 지켜내는 것만 못하다.
진리의 길은 넓고 욕망의 길은 좁다.
자연의 진리를 추구하는 바른 길은 매우 넓어 조금만 마음을 써서 추구해도 도량이 넓어지고 눈앞이 맑아진다. 개인의 욕망을 추구하는 올바르지 않은 길은 매우 비좁아 간신히 이곳에 들어선 후에는 눈앞에 가시와 진흙이 가득해 한발을 내딛기도 어렵다.
작은 탐욕이 돌이킬 수 없는 실패를 부른다.
사람은 작은 이익을 탐하는 마음만 있어도 강직했던 마음이 유약해지고 총명함이 무능함으로 변하며, 사랑하는 마음이 잔인해지고, 고결함이 더럽혀지며, 자기 일상의 품격이 파괴된다. 옛사람은 절대 탐심을 자신을 갈고 닦는 고귀한 품격으로 보지 않았다.
사욕의 길, 진리의 길, 모든 것은 한순간에 달려있다.
어떤 생각이 막 일어났을 때 그것이 자신의 사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계속 커지는 것을 발견한다면, 얼른 이성을 통해 생각을 바른길로 이끌어야 한다. 사욕이 생겼을 때 즉시 발견할 수 있고 발견 즉시 방향을 바꿔준다면 화가 복이 되고 죽음의 위기가 구원의 기회로 변하게 되니 이 기회를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자신을 희생하는 데 주저하지 말며, 은혜를 베풀고 대가를 바라지 마라.
희생하려고 결정했다면 과도하게 득실을 따지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과도하게 득실을 따지면 희생하기로 한 결단이 부끄럽다. 타인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기로 했다면 대가를 바라지 말아야 한다. 대가를 바란다면 선행을 즐기고 은혜를 베푸는 착한 마음이 가치를 잃게 된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작고 사소한 일에도 조금도 소홀히 하지 않고 허술한 부분을 남겨 두지 않는 사람,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곳에서도 바른 마음으로 공정하게 일처리를 하는 사람, 매우 곤궁한 생활에서도 자신의 목표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라고 할 수 있다.
끓어오르던 분노의 불길도 생각만 바꾸면 식힐 수 있다.
분노 또는 탐욕이 끓는 물처럼 솟구쳐 오를 때 대부분의 사람은 스스로 제어하지 못한다. 이런 행동이 옳지 못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하고야 만다. 이때 냉정을 되찾고 문제의 핵심을 똑바로 알 수 있으며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 안다면 사악한 마귀 역시 자상한 진리의 왕으로 변할 수 있다.
자신의 장점으로 타인의 단점을 평가하지 마라.
한 사람의 말을 일방적으로 맹신해 간사한 소인배들에게 속지 말며, 절대로 자신이 맞는다는 독단에 지배당하지 마라. 자신의 장점으로 타인의 단점을 비교하지 말며, 자신의 우둔한 면으로 타인의 재능을 질투하지도 마라.
관리는 공정하고 청렴해야 하며, 가장은 용서하고 절약해야 한다.
관리는 오직 공정하고 사리사욕을 채우지 않을 때에만 옳고 그름을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으며, 오직 청렴하고 결백할 때에만 진정한 권위가 생기게 된다. 가장은 오직 용서할 때에만 온화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으며 근검절약할 때에만 집안 살림에 쓸 충분한 여유가 생긴다.
도량이 넓으면 복이 풍성하고 그릇이 작으면 복이 박하다.
마음씨가 인자하여 사랑이 많은 사람은 도량이 크므로 돈독한 복을 오래 누릴 수 있다. 마음이 좁은 사람은 안목이 짧고 생각의 폭이 좁아 잠시 이익을 만들뿐, 눈앞의 이익만을 고려하다 긴박한 국면을 만나기 십상이다.
뒤로 한 걸음 물러서고 담담함을 조금 더하라.
사람들이 小路(소로) 선두를 다투는 길은 가장 좁다. 뒤로 한걸음 물러난다면 길은 자연히 넓어지게 된다. 진함과 화려함을 추구하면 아주 짧은 순간 밖에 그 맛을 누릴 수 없다. 조금 담담한 맛을 추구한다면 즐거움은 더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다.
내 손으로 조종할 수 있다면, 타인의 조종을 받지 않는다.
인생은 본래 한 바탕 꼭두각시놀음과 같아서 꼭두각시를 움직이는 선을 잘 다룰 수 있다면 나가고 물러섬이 자유자재로 움직이게 할 수 있다. 타인이나 외부 사물에 의해 조종 받지 않고 세상을 초월한 초연한 삶을 살 수 있다.
망망한 세상에 모순이 생기는 비밀
정조를 지키지 않는 음탕한 여인이 세상사에 지쳤다는 이유로 삭발하여 비구니가 되기도 하고, 명리에 열중하는 사람이 의기를 목적으로 출가하기도 한다. 그래서 본래 청정하기만 해야 할 불가의 도관은 항상 더러움을 숩겨 주고 용납하는 곳으로 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