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4. 보리 개떡

어릴 적 추억의 음식으로 연상되는 것

by 물가에 앉는 마음

집사람과 시골길을 드라이브 할 때 노란 옥수수 빵을 파는 노점상이 있는 곳에 차를 멈춘다. 매번 집사람은 사카린을 넣었고 위생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반대하지만 사실은 나도 막걸리를 넣어 발효시킨 옥수수 빵이 맛나서 사자는 것은 아니다. 어렸을 적 어머님께서 밀가루를 막걸리에 반죽하여 쪄낸 구멍이 숭숭뚤린 막걸리 빵이 생각나서 한 덩이 사자는 것이니, 내가 맛보고자 하는 것은 옥수수 빵이 아닌 어릴 적 추억이고 어머님의 사랑이었을 것이다.

흔히 어릴 적 추억의 음식으로 연상되는 것은 ‘보리 개떡’인데 솔직히 보리개떡이 얼마나 험한 음식인지 알지 못한다. 어린 시절 가장 험한 음식은 막걸리 빵 아니면 쑥과 쌀가루를 섞어 시루떡처럼 만드는 쑥 개떡 정도였다. 아마도 보리 개떡을 먹고 자랐다면 노점상의 옥수수 빵이 추억의 음식이 아니라 보리개떡을 찾았을지 모른다. 마트 가서 과자를 사도 옥수수를 튀긴 강냉이나 새우깡 같이 어렸을 적 먹어봤던 것들에 손이 간다. 아이들은 아빠 입맛이 촌스럽다고 타박해도 어른들은 추억과 사랑을 먹는 것이지 과자를 먹는 것이 아니란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아이들은 어머니 입맛과 음식솜씨에 의해 길들여진다. 내가 개고기와 민물고기를 먹지 못하는 것은 어머님 영향이 크다. 개는 애완동물이자 같은 식구이지 먹을 것이 아니라는 집안 문화도 있지만 어머님께서 개고기를 요리해 주셨다면 지금도 입에 침이 돌만큼 잘 먹었을지 모른다. ‘매운탕은 칼칼한 맛의 민물고기매운탕’이 최고라는 분도 계시고 분당의 민물고기 매운탕 집은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나는 민물고기를 먹지 못한다. 예전 학창시절 낚시하러 갔던 천안 부근 신창낚시터의 사장님은 문맹이셨다. 낚시터 간판을 그려준 값으로 민물매운탕 중의 으뜸이라며 ‘빠가사리 매운탕’을 대접받았으나 한 숟갈도 뜨지 않는 깍쟁이 서울내기를 보고 섭섭해 하는 눈치였다.

낚시를 좋아하셨던 선친은 술 생각이 나면 가끔 민물매운탕을 드셨다. 하지만 도마와 냄비에 민물고기 비린내 배는 것을 어머님이 싫어 하셨기에 붕어를 잡아오시면 마당 한구석 우물가에서 버너와 코펠로 매운탕을 끓이셨다. 두 분 모두 북에서 월남하신 관계로 양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시지 않아 그랬는지 몰라도 옛날 분들이시지만 부모님들은 상당히 개방적이셨다. 아버님도 가끔 주방에서 요리를 하셨으나 주방 일에 관한한 전권을 쥐고 계신 어머님의 파워가 대단하셔서 주방으로의 민물고기 반입은 금지되었다. 민물고기를 아직도 먹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민물 매운탕에 대한 추억이 없기 때문인지 모른다.


간난쟁이는 모유와 우유를 떼면 이유식을 먹고 밥을 먹게 되나 큰아이는 이유식을 오랜 기간 먹었다. 밥을 먹어야 할 시기에 입에 밥알같이 씹어야 하는 것이 들어가면 토하는 일을 반복했기에 세 살 때까지 이유식을 먹인 것 같다. 술 취해 들어갈 때에도 6개월 미만 아이들이 먹는 ‘어린아이 머리표’ 신생아 이유식을 박스로 사서 날랐다. 이로 인해 입맛이 서구화되었는지 큰아이는 지금도 육식을 좋아한다. 다행스럽게도 작은아이는 모유를 떼자마자 밥을 먹어 김치찌개 하나면 밥 한 공기를 뚝딱한다. 소위 ‘집밥’을 먹지 못하고 자라 인스턴트 음식에 길들여지면 집밥은 맛이 없어지고 외식을 자주하게 된다는데 큰아이는 아직도 육식과 외식을 좋아 한다. 집사람 음식솜씨가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직장생활 하느라 살림을 배우지 못하고 시집온 집사람 음식솜씨는 형편없었다. 그때는 인터넷 레시피도 없을 때니 시집올 때 요리백과를 갖고 왔고 조그만 수첩하나에는 미역국, 콩나물국 끓이는 방법 등 음식 레시피를 깨알같이 적어왔다. 상당기간 시부모를 모시고 삼시 세끼를 준비하느라 고생 많이 했고 밥을 태우거나 음식 맛이 없을 때는 장모님께 울면서 전화를 하곤 했다.

30년 경력 주부가 된 집사람은 국적불문의 요리솜씨를 뽐내고 있다. 월남쌈, 몽고식 샤브샤브, 한국식 감자탕, 일본식 메밀국수, 지중해식 연어샐러드 등 집사람 손에서 다양한 음식이 탄생된다. 광장시장 마약김밥이나 인터넷에서 뜨는 음식도 뚝딱 만들어내니 음식솜씨가 장족의 발전을 한 것이다. 그중 압권은 일본식 메밀국수로 메밀국수전문점보다 맛있는데, 퇴직 후 생계가 곤란할 경우 집사람을 메밀국수집 사장을 시키려 하는 말은 아니다. 메밀국수 국물은 가쓰오부시라는 다랑어채로 국물을 내야하나 없는 경우에는 다시마, 멸치, 설탕, 간장, 맛술로 낸 육수와 질 좋은 메밀국수, 무순, 무즙, 와사비, 파, 김만 있으면 되니 밥 준비하는 것보다 어렵지 않다. 우리 집 여름철 주 메뉴로 손님 접대용으로도 제격이다. 집사람 자랑하면 팔불출 중의 하나라고 하지만 이것은 집사람 자랑이 아닌 내 자랑이다. 나하고 결혼하여 시집살이 하느라 음식솜씨가 늘었으니 내 덕분이지 다른 사람하고 결혼했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외식대신 ‘집밥’위주로 식사를 해결하는 우리 집은 매주 엄청난 양의 식재료를 마트에서 사와야 한다. 1~2인 가구의 경우 경제적인 이유와 장보고 음식 만드는 시간과 수고의 절약을 위해 ‘집밥’보다 ‘외식’을 선호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우리 집은 장보는 재미와 음식 만드는 재미 때문에 매주 장을 보니 상대적으로 엥겔지수가 높은 것 같다.

음식 못하는 주부에서 프로로 변신한 집사람이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집밥’을 부지런히 먹이고 있지만 우리 아이들이 나이 들어 어떤 음식을 먹으며 추억을 생각하고 사랑을 느끼게 되려는지 자못 궁금하다. 보리개떡이나 옥수수 빵은 먹어보지도 않았을 테니 빅맥과 코카콜라? 피자와 펩시? 치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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