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게 생각하면 책값 50만원을 번 것이다.
퇴직 후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낚시터와 도서관에서 보내게 될 줄 알았다. 코로나가 오기전까지만 해도 유료 낚시터 1년 회원권 구매하고, 낚시가 어려운 날에는 시립 도서관에 가서 하루 종일 책을 보려했다. 나주에 있을 때도 숙소 옆 도서관에 가끔 갔었지만 중고등학생이 많아 조금 부산스러웠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분당 시립도서관에 같이 다녔었는데 그런대로 좋았다. 식당도 있고 독서실처럼 칸막이가 있으며 환경도 쾌적했다. 도서관 문 여는 시간 맞춰가는 것 말고는 걱정할 일이 없었는데 코로나로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휴일에는 반려견 산책 말고 거의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낚시와 독서 그리고 끄적거리기가 취미이기에 인터넷 즐겨찾기 페이지에 낚시포털과 인터넷서점이 올라가 있다. 코로나 이전에도 쇼퍼홀릭(shopaholic)은 아니지만 소소한 낚시소품과 눈길이 가는 책을 인터넷쇼핑으로 구매했다.
낚시도 유행을 탄다. 요즘 트렌드는 붕어를 빨리 제압하기위해 뻣뻣한 硬質(경질)낚싯대를 사용하는 것이나, 나는 선친께 낚시 배운 대로 옛날스타일인 軟質(연질)낚싯대를 좋아한다. 제압하는 재미보다 작은 것을 잡아도 끌어내기 어려운 손맛을 중시하기에 軟質낚시대를 선호하지만 요즘 트렌드가 아니다보니 업체에서 만들지도 않는 것 같다. 낚시용품을 광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구하기 어려운 용품을 사기위해 인터넷을 뒤지고 있다. 쇼퍼홀릭(shopaholic)이 아니라고 변명하고 있지만 대형 승용차 트렁크에는 낚시용품이 가득하다. 한번쯤은 트렁크 가득한 낚시용품을 모두 꺼내 정리해야 할 것 같다.
낚싯대와 달리 책은 소모성에 가까워 서적구입을 많이 했다. 하지만 당분간 서적구입을 자제하기로 했다. 퇴직하면 책 읽는 속도나 분량이 늘어날 줄 알았지만 재취업했고 시력도 저하되어 속도나 양이 느려지고 적어졌다. 하지만 서적을 구입하는 속도는 같았었는지 구입 후 읽지 않은 책이 여러 권이다.
서열 1위인 반려견이 책장 아래에서 주무신다. 옆에 엎드려 반려견 등을 긁고 있자니 평소에 보이지 않던 책장下段(하단) 책들이 눈에 들어 왔다. 미처 읽지 못한 책들이 많이 꽂혀 있다. 책장 한 칸에 2~3권씩은 아직 읽지 못한 책이다.
언젠가 책장을 들러보니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이란 책이 세권이나 나왔다. 한 번에 여러 권을 구매하다보니 읽기도 전에 재미있을 것 같은 책을 또다시 구매하기를 반복한 것이다. 같은 책을 세권이나 살 정도면 쇼퍼홀릭(shopaholic)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그때는 무심코 넘겼지만 반려견 덕에 읽지 않은 책을 대충 세어보니 3~40권정도 되는듯하다. 물론 선투자를 한 것이지만 좋게 생각하면 책값 50만원을 번 것이다. 당분간은 서적구매를 자제하고 묵은 책들을 들춰보려 한다.
최근 소개한 책에서 ‘쇼퍼홀릭(shopaholic)’을 상쇄시킬 문구를 찾았다. 다른 물건들을 무리하게 사재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지만 책만은 예외일 듯하다.
단 한번뿐인 인생을 의미 있게 사는 방법에 관해 묻는 젊은 벗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첫째, 더 많이 사랑하라. 둘째,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라. 셋째, 책을 충분히 읽어라. 넷째, 평생을 함께해도 좋은 벗들을 사귀어라. 다섯째,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도록 힘쓰라. 이것들이 가치 있는 삶을 사는 데 필요한 것들입니다. 일본 메이지대학 사이토 다카시교수는 ‘인생은 책을 얼마나 읽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는데 특히 이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바빠서 책을 못 읽는다고 하는데 사실은 바빠서 읽지 못하는 게 아닙니다. 의욕이 없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책을 사는 것은 책을 읽을 시간도 함께 사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한 치의 틀림이 없는 말입니다. 나는 해마다 많은 책들을 삽니다. 책들을 사들일 때 책을 읽을 시간도 함께 사는 것입니다. 책을 읽고 싶다면 서점에 나가 책을 사십시오! 그래야 비로소 책을 읽을 시간도 얻습니다. - 내가 읽은 책이 곧 나의 우주다.(장석주著, 샘터刊)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