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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가에 앉는 마음 Aug 10. 2022

736. 어느새 할아버지

제2의 인생을 사는 것에 걸맞게 처음 경험해 보는 것들이 많다.

 구약 창세기 5장을 보면 고대인들은 결혼이 늦었던가 보다 ‘아담은 백 삼십 세에 셋을 낳고 셋은 백 오세에 하노스를 낳고...’  고대인만큼은 아니지만 당시에는 조금 늦은 결혼을 했다. 서른에 결혼하고 서른하나에 큰아이를 낳았다. 큰아이는 스물여덟에 결혼해 서른둘에 첫째를 낳았다. 

 고교동창들은 술 먹고 놀러 다니느라 정신이 팔려 모두 입대도 늦고 결혼도 늦었다. 친구들 모두 대학과 대학원 졸업 후 군대를 갔고 한 친구가 결혼하자 연이어 결혼했기에 애들 나이도 비슷비슷하다. 조금 늦게 결혼했지만 큰아이가 적당한 나이에 결혼하고 늦지 않게 아이를 가져 적당한 시기에 할아버지가 되었다. 물론 손주를 여럿 둔 친구도 있지만 손주 없는 친구도 있기에 주관적 관점에서 보면 적당한 시기다.


 손녀가 태어났다. 손가락 발가락이 모두 달려 있고 산모도 건강하니 다행이다. 태어난 아이를 씻겨 강보에 싸서 찍은 사진을 보니 동글동글한 얼굴에 볼은 통통하니 장난감 인형 같다.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는 우렁차게 울었지만 제왕절개로 10일 일찍 태어난 아기는 모자란 잠을 보충하듯 잠자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자세히 보면 엄마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아빠를 닮은 듯하니 자연의 섭리는 과연 神妙(신묘)하다.

 친지들 만나면 손주자랑이 끊이질 않는 것을 보고 의아해 했다. 안아주고 놀아주기 힘들어도 돌아서면 다시 보고 싶다고 한다. 과연 나도 그럴까? 시도 때도 없이 우는 간난쟁이를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손녀를 보니 장난감인형 같이 예쁘다. ‘남의 자식 고운데 없고 내 자식 미운데 없다.’는 속담이 잘 들어맞는다.

 아이들을 어떻게 키웠는지는 가물가물하다. 시간 경과의 문제가 아닌 경험 부재의 문제였다. 술 먹고 다니느라 출산준비와 육아 기억이 없어 아이들이 저절로 자란 것 같지만 집사람 사랑이 많이 들어갔을 것이다. 다행스럽게 사위가 가정적이다. 부부가 같이 다니며 진찰하고 출산 용품준비와 산후조리원 예약 등 출산준비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서울 본사 근무할 때 처가인 부산에서 큰아이가 태어났다. 출산 즈음 사장님 외국출장을 추진하고 있던 시기와 겹쳤었다. 인터넷도 없고 텔렉스를 치던 시절이라 업무효율이 바닥인 시절이었다. 방문국과의 시차로 인해 아침부터 밤까지 바쁘고 사장님이 출국해야 내 역할이 끝난다. 큰아이 출산 후 3일 만에 부산에 내려갔었다. 

 그 일로 인해 30년 넘게 뜯기며 살고 있다. 손녀가 생기면서 30년 넘는 기억을 집사람이 새삼 소환해냈다. ‘무심하다.’ ‘술 먹는 것 밖에 모른다.’ ‘사위한테 배워라.’ 손녀가 생겼으니 좋은 일이 생긴 것은 분명한데 집사람 잔소리는 두 배, 세 배 늘었다. 하지만 지은 죄가 있어 목소리를 키우지 못한다. 그런데 새장가 갈 것도 아닌데 사위에게 무엇을 배워야 할까?


 후보 이름 다섯 개를 주면 친할아버지께서 周易(주역)보는 작명소에서 결정하겠다고 한다. 후보이름을 짓기 위해 가족 카톡방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다. ‘가을’, ‘다운’과 같은 한글이름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뜻밖의 다크호스가 나타났다. 작은아이가 별 생각 없이 올리는 것 같은 이름들이 꽤나 예쁘다. 할아버지가 해야 할 일을 이모가 대신하고 있는 중이다.

 반려견, 검은 푸들 이름을 'cola'로 지었던 작은아이가 하얀 푸들을 입양해 ‘cider’라고 이름을 짓자고 했을 때 작명 재능을 알아봤어야 했다. 젊은 아이답게 영어 이름까지 생각하는 후보이름들을 내놓는다. ‘율’은 자기이름과 비슷하고 7월에 태어난다고 July에서 따왔단다. 외자도 예쁘지만 파생되는 ‘지율’, ‘서율’등도 현대적이며 예쁜 이름이란다. 다음 후보는 ‘세린’ 영어로는 ‘celine’이다. 이름도 예쁘지만 ‘Luxury’'한 이름이란다. 왜 ‘Luxury’하지? 

 아기 이름이 정해진 날, 이름의 유래를 알고 있는 사위는 백화점에 가서 산모를 위한 선물을 사왔다. 그리고 나는 집사람에게 또 뜯겼다. 집사람이 사위한테 배우라고 한 것은 가정적인 면을 배우라는 것이 아니라 ‘핸드백’을 배우라는 것이 아닐까?

사위에게 배울 점

 퇴직 후 제2의 인생을 사는 것에 걸맞게 처음 경험해 보는 것들이 많다. 재취업도 했고 국민연금도 받는 인턴노인도 되었다. 게다가 초보 할아버지 까지 되었다. 매끄럽고 능숙할 것이라 생각했던 제2의 인생이 겪어보지 못했던 일들로 가득 차 울퉁불퉁, 좌충우돌 하고 있다. 그래도 다행이다. 너무 익숙하면 재미없는 일상이 진행되어 시간도 더디갈텐데 처음 겪는 일들이 연속으로 생기니 익사이팅한 삶을 살고 있으며 시간도 빠르게 흐르고 있다.

 

 손녀를 무척 귀여워하셨던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증손녀가 태어났다는 것을 알고 계실지 모르겠다.  

 손녀 얼굴을 보고 있자니 요즈음 개(犬)갑질을 하고 있는 부동의 1위 'cola' 자리가 위태로워 보인다. 조만간 1위 자리를 내줘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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