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자재산업(주) 김홍일 사장님께
오늘 편지는 제목에서부터 특정인의 이름과 회사명이 거론되었다. 지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실명이 거명되어도 거리낌이 없는 분이다. 740번 편지를 썼는데 김 선배 이야기가 여러 번 언급되었다. 같이 근무한 기간은 짧지만 존경할만한 선배이자, 산업재해로 인한 2급 지체장애인으로 사회적 기업을 경영하는 사업가다.
같이 근무한 기간은 길지 않다. 신입사원시절 고리원자력발전소에서 3년 반을 같이 근무했으며 같은 팀원으로 근무한 기간은 단 3일이다. 그는 첫 출근한 신입사원에게 복잡한 설비로 가득한 현장을 3일간 안내해 준 입사 후 최초의 멘토였다. 짧은 3일이었지만 그의 부지런함과 성실함이 인상 깊었는지 40년 가까이 흘렀어도 김 선배에게 각인된 인상이다.
당시 고리원자력발전소는 논산훈련소 같은 역할을 했다. 수많은 직원들이 고리에서 훈련받고 경험을 쌓아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나는 3년 반 만에 본사로, 김 선배는 울진으로 전근 갔다. 길지 않은 시간이 흐르고 김 선배가 開口部(개구부)에서 추락해 대구로 급히 이송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13미터 높이에서 떨어졌으나 불행 중 다행으로 신속한 구조와 병원이송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추락한 위치와 발전소 구조를 알기에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부상이 중해 수혈이 필요하다고 할 때 전국의 직원들이 헌혈에 동참했으며 수혈하고도 남을 혈액이 모아졌다.
대구에서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이송되었을 때 면회 했다. 하반신마비가 될 것이라 했지만 특유의 긍정을 잃지 않고 있었다. 하반신 전체를 깁스하고 누워있으면서도 근심스러워 하는 나를 오히려 웃으며 안심시켜줬다. ‘천만다행인 게 소변은 내 마음대로 볼 수 있다네.’
의사는 하반신마비를 선고했지만 미소를 잃지 않은 김 선배가 걸어 다닐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김 선배는 하반신 마비의 2급 지체장애인이나 재활 의지가 강해 목발을 의지해 짧은 거리를 보행할 수 있게 되었다. 보통사람 같았으면 포기하고 휠체어에 의지했을 것이나, 긍정은 가끔 기적같은 일도 만들어 낸다.
퇴원해서는 불편한 몸으로 전국을 돌며 안전강사로도 활동했다. 이후 퇴직하여 발전소에 필요한 면장갑, 일회용작업복 등 소모성자재를 납품하는 작은 회사를 운영했다. 워낙 성실하게 회사 생활을 했기에 주위 선, 후배들이 모두 나서서 도와줬다. 그리고 납품하는 물건의 품질도 김 선배를 닮았는지 옳고 좋았다. 많은 선배들이 퇴직 후 같은 업종의 회사를 운영했지만 모두 잘되는 것은 아니었다. 재직 시의 평판과 신뢰는 퇴직해도 꼬리표가 되어 따라다닌다.
나는 부서 특성상 도와주지 못하는데도 김 선배는 지나는 길에 얼굴 보러 왔다며 목발을 집고 사무실에 자주 찾아왔다. 영광원자력발전소에 근무할 때 ‘김형곤 개그테이프’ 2개를 놓고 가며 ‘서울 오갈 때 들어, 졸음운전 예방되게. 웃다보면 졸음예방에 도움이 되더라고’ 기러기 아빠가 된 후배의 안전운전까지 신경써주는 선배로 인해 가슴이 뭉클했다.
김 선배가 매스컴을 탄다며 문자를 보내왔다. “MBN 성공다큐 최고다. 한국자재산업(주) 554회 본방송 2022년 8월 13일 05시, 재방송 8월 17일 18시”
반갑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본방송을 봤다. 부제 ‘이동식 모듈주택의 신 시장을 개척하다.’에 맞게 FRP재질의 농막, 세컨하우스, 사무실로 손색없는 표준형주택과 용도에 따른 주문형주택을 생산한다. 작년에 200채를 생산, 판매했다하니 사업은 정상궤도에 오른 듯하다.
‘35살에 13미터에서 추락한 이후 33년이 흘렀습니다. 재활치료 중 더 아픈 사람을 보고 위로받았지요. 2급 지체장애인이 되었지만 조그만 사업을 하면서 고향사람들을 웃게 해보자, 뭔가 보람된 일을 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좌절에 빠지기 쉬웠을 재활시기에 남다른 생각을, 그것도 利他的(이타적) 생각을 했다는 것이 존경스럽다.
소모성자재 납품에서 농사용 비닐하우스 제작, 모듈주택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프로들이 제작한 방송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보람 있는 일로 고향사람들을 웃게 만들고 싶다는 김 선배 꿈은 영월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꿈대로 사회적기업인 한국자재산업(주)는 직원의 72%가 장애인, 고령자, 다문화가족 등 취약계층이다.
방송에서는 ESG(Environmental, Social, Governance)경영을 실천하는 기업으로 소개했다, 사실 작은 기업이 ESG경영을 실천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하지만 김 선배 특유의 정직과 신뢰를 바탕으로 적어도 Social분야에서는 최고기업으로 평가받아도 손색없게 기업을 키운 듯하다. 현재도 취약계층 비율이 72%로 높으나 향후 목표 역시 취약계층 일자리 지속창출이란다.
김 선배와 처음 만난 지 40년이 가까워 간다. 흘러간 세월에 걸맞게 얼굴 주름도 생겼지만 생각은 여전히 젊고 긍정적이다. 존경스럽다. 여러 차례 받기만 했으니 영월을 지나가는 길이 있다면 김 선배 손에 뭔가를 들려줘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