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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2.죽어야 산다. 死卽生(사즉생)

상황 조율이 안 되는 것을 보면..., 자기 목 졸림이 과했나?

by 물가에 앉는 마음

독수리에게 하늘의 제왕이라는 칭호를 부치기 주저하는 이유는 동물의 사체를 먹는 쓰레기 청소부이기 때문인 듯하다. 사체를 처리하여 다른 동물들을 전염병으로부터 보호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만 자연계에서 수행하는 역할이 청소부라는 고정관념으로 인해 하늘의 제왕이라는 명칭을 빼앗겼는지 모른다. 하지만 사촌격인 송골매는 하늘의 제왕이라 불릴 만하다. 날카로운 눈, 강인한 발톱과 부리, 하강할 때 비행속도가 무려 389Km로 여우는 물론 늑대까지 사냥한다.

송골매의 수명은 사람과 비슷한 약 70년이지만 40살이 되면 털이 많아져 날아다니기 어렵게 되고 부리와 발톱도 뭉툭해져서 사냥이 곤란하게 된다.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이때 송골매는 부리로 털과 발톱을 뽑고 부리를 바위에 부딪쳐 부러뜨린다. 새로운 깃털과 발톱 그리고 부리가 나지 않으면 죽는 것이고 새로 나면 나머지 30년을 하늘의 제왕으로 다시 살게 된다. 이렇게 목숨을 담보로 과거의 나를 죽이고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난다.

송골매이야기는 ‘革新(혁신)’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강조할 때 자주 인용한다. 革新은 가죽을 벗겨 새로 태어난다는 뜻이므로 송골매가 죽을 것을 각오하고 깃털과 부리와 발톱을 새로이 하는 것도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송골매는 죽어야 사는 것이다.


상사가 정의롭지 않은 요구를 했을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불쾌하고도 불행한 고민이다. 살고 죽는 것에 비유하면 너무 살벌하지만 납작 엎드려 요구를 받아들여야 출세하는 것인가? 툴툴거리며 마지못해 받아들인다면 중간 정도 사는 것인가? 반기들고 험한 길을 택한다면 죽는 것인가? 반대로 정의롭지 못한 요구이니 요구를 들어주면 죽는 것이고 거부하면 사는 것인가?

CEO와 불화가 생기면 리더는 조직과 부서원들에게 피해가 돌아올까 염려하고 조직원들은 리더와 조직에 닥쳐올 험난한 파도를 직감한다. 경험해보니 CEO와 독대하여 할 말하고 좌천되는 모습으로 물러나는 것이 남은 조직원에 대한 후유증이 적다. 정의롭지 못한 요구를 할 정도의 인물이라면 좌천된 모습으로 자리를 피해주지 않을 경우 조직축소와 부서원 인사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보복한다. 눈에 띄지 않는 곳에 가 있는 것이 서로에게 좋다. 오늘은 죽어도 내일 살 수 있고 부서원도 살릴 수 있다.

물론 마음 깊은 속에서는 사표를 CEO얼굴에 집어 던지라고 하지만 평생직장인 직원이 회사의 주인인데 3년짜리 낙하산인 계약직CEO에게 사표 던지고 굴복하는 것도 우습다. 또 사표를 던질 정도라면 고발하여 사회적으로 매장하고 법무부 밥을 맛보게 해주는 것이 더욱 올바른 길일 것이다. 하지만 부정의 고수는 대놓고 부정행위를 요구하지 않는다. 지능적 행위로 인해 감사원 감사 등에서 지적사항이 발생되면 본인들이 빠져나갈 방법은 있고 애꿎게 피라미들만 다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운이 좋아 저절로 사는 경우도 있다. 기술개발 분야를 떠나 잠시 외도로 사업 부서를 담당하자마자 운 좋게도 규모 있는 공사를 수주했다. 경험 많은 담당팀장이 한마디 한다. ‘오늘은 기분 좋은날이니 마음껏 드시면 됩니다. 그런데 내일은 조금 머리 아픈 일이 벌어질 겁니다.’ 다음날 CEO(위에 언급한 CEO와 같은 者(놈 자)이다.)가 업자명함을 건네주며 성실한 사람이니 만나보라고 한다. 이처럼 부정의 고수는 직접 지시를 하지 않는다. 부당한 지시 등을 녹음하는 경우도 있기에 명함 하나 던져주고는 업자를 통해서 점점 조여 들어온다. 업자에게 수의계약을 주라는 요구이나 공기업에서 수의계약은 특별한 사유가 있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첫 삽을 뜨기도 전에 머리가 뜨뜻해지는 것 같다. 담당팀장의 예측이 賢者(현자)급이다.


걱정하는 나에게 賢者가 말했다.

‘걱정하지 마시고 다음에 CEO만나면 잘 진행되고 있다고 하시면 됩니다.’

‘왜? 하도급 진행을 하지 않을 건데’

‘철탑공사는 100퍼센트 소송이 걸립니다. 소송해야 토지보상금액이 올라가니 지주들이 소송을 걸게 되고 소송기간은 적어도 1년 이상 소요됩니다. 지금 CEO는 그때 되면 퇴직합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얼마 후 賢者는 해당업자를 불러 입막음 했다.

‘소송이 시작되었고 1년 반 정도 공사를 못할 것이니 기다리고 계시면 연락드리겠습니다.’

돌아가는 업자에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우리 처장님은 조용하신 분이라 시끄러운 것을 가장 싫어합니다.’

이거는 뭐 ‘죽어야 산다.’가 아니라 싸우지도 않고 이긴 것이다.


지는 것을 알면서도 싸워야 할 때는 잘 져야 한다. 져도 명분과 원칙 있게 져야 한다. 원칙 있는 패배는 정치판에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죽는 것도 마찬가지로 그냥 죽는 것이 아니라 잘 죽어야 사는 것이며 명분 있게 죽어야 한다. 죽음으로 인해 주위에 남기는 메시지도 있어야 하니 죽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원칙 있는 승리가 최선이지만 지는 것이 확실하다면 원칙 있게 져야 한다. 원칙 있는 패배가 훗날을 도모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 원칙 없는 패배는 제일 하수가 선택하는 길이며 눈앞의 달콤함과 양지만 지향하다가는 末路가 비참하고 쓸쓸해진다. 오히려 살려고 꼼수를 쓰거나 무리수를 사용하면 영원히 죽을 수 있다. 꼼수 부리며 위기를 벗어나려는 것은 한번이상 지속되기 어렵다. 주위 동료들도 한번은 속아주겠지만 두 번은 속아주지 않는다.


‘졌잘싸’라며 위기를 덮어버리려 했던 정당은 또 다시 심판을 받았다. 우매한 국민들은 모르고 지나가겠지? 하다가 역풍을 맞은 것이다. 송골매가 바위에 부딪쳐 다시 살아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생략하려다가 심판을 받았다. 꼼수와 반칙은 자주 통하지 않았다. 패배에 대한 반성이 없었으며, 원칙 없는 공천으로 눈앞의 달콤함만을 취하려다 더 깊은 수렁에 빠진 것이다.

바보 노무현은 지는 줄 알면서도 적진으로 들어가 명분 있게 죽었다. 명분과 원칙 있는 패배로 훗날 국민들은 ‘바보 노무현’을 소환해 살려낸다. 정치판이나 삶의 현장이나 관통하는 메세지는 동일하다. 죽어야 산다. 정치뿐 아니라 일상의 잡다한 삶도 마찬가지다.


PS, 지방선거 직후에 끄적거린 내용이나 어찌하다보니 순위가 밀리고 환경도 변했다. 정권잡고 지방선거에서도 승리해 잘 나갈 줄 알았던 정당은 대통령지지율이 30%이하가 되었고 정당지지율은 역전되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변화다. 죽을 노력을 해야 살아날 수 있는데 살림 조금 폈다고 기고만장하고 지탄받았던 정당과 똑같이 내로남불하다가 역풍을 맞은 것이다.

이대남도 돌아섰고 60대도 무조건적인 지지를 거둬들이며 정부와 여당에 반기를 들었다. 정치를 생물이라 누가 그랬던가? 국민들은 무섭도록 냉정하다. 요즈음 정치 뉴스를 보면 정계의 주인공은 용산과 여의도가 아닌 해고된 당대표와 0.5선 국회의원이다. 용산과 여의도에서 정권교체 후 벌어진 일이라고는 경제와 국민은 뒷전이고 알량한 당권을 잡겠다며 서로가 총질하고, 야당이 질책하면 ‘너희도 그랬잖아!’하며 ‘그놈이 그놈, 색깔만 다른 똑같은 놈’이라는 것을 자인한다. 받는 연봉만큼 차원 높고 품위 있게 대응했으면 한다.

동네 양아치들도 ‘적어도 쪽팔리지 않게(부끄럽지 않게)’, 서민들은 ‘적어도 추하지는 않게’ 나름의 품위를 지키려 노력한다. 용산이야 전 국민이 인정하는 절대지존이며, 여의도 문법으로는 상호 호칭이 ‘존경하는 ooo의원님’이다. 국민들이 볼 때 몇몇 의원들에게만 어울리는 호칭이다. 수식어가 어울리게 처신했으면 좋겠다. 적어도 국민들 낯빛이 붉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떤 경우에는 정말 어린이들 눈과 귀를 막고 싶을 정도다.


破釜沈舟(파부침주), 生卽死 死卽生(생즉사 사즉생), 登高去梯(등고거제)

죽어야 산다. 죽을 각오로 치열하게 노력해야 산다.

살려하면 죽는다.

서민들은 통닭집을 경영해도 죽기 살기로 한다.

국민들은 칼날을 시퍼렇게 벼리고 있는 중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지금하고 있는 행동들은 보면 죽으려하는 것 같다. 다만 서민들과 다른 것은 죽을 각오로 치열하게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 목을 조르며 자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 많던 정치 九단들은 어디에서 무엇하고 있는지?

상황 조율이 안 되는 것을 보면..., 자기 목 졸림이 과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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