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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3. 축적의 길(2) (이정동著, 지식노마드刊)

개념설계 역량을 얻으려면, 도전적 시행착오 경험을 꾸준히 축적해야 한다.

by 물가에 앉는 마음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다음 두 문장으로 요약된다.

* 한국 산업계는 실행능력은 강하지만, 개념설계 역량이 부족하다.

* 개념설계 역량을 얻으려면, 도전적 시행착오 경험을 꾸준히 축적해야 한다. 그래서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다.


한국은 제3자의 분석으로도 확인되는 놀랄만한 성취를 이뤘고 아시아의 4마리 용이라 칭송받던 말레이시아와도 3.3배나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식민지와 전쟁의 참화로 흙덩어리만 쥐고도 농업, 경공업, 중화학공업, 하이테크산업에 이르기까지 빠르게 포트폴리오를 바꿔왔는데, 이 또한 다른 나라들이 경이롭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성장엔진이 급속하게 식어가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지난 20년간 성장률이 하향추세를 보이고 있다. 갑작스레 독감에 걸리면 치료하기 쉽지만 우리 경제는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게 서서히 나빠지고 있는 것이다. 고도성장과정에서 형성된 관행이나 문제들이 익숙해져서 고유한 문제인지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 것이다. 어두운 터널이 언제 끝날까? 불행히도 우리는 터널입구에 들어온 것처럼 보인다.

선진국의 보호무역, 3차 산업혁명도 소화하지 못한 상태에서 불쑥 다가온 4차 산업혁명, 저출산 고령화, 늘어나는 복지부담은 우리의 산업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지만 더욱 심각한 문제는 도전정신, 기업가정신의 쇠퇴이다. 청년들은 안정된 공무원이 되길 원하고 기업은 창의적인 제품보다 제도적 장벽에 보호받는 독과점 비즈니스에 사운을 걸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내일을 기대하기 어려우므로 우리는 터널입구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좌절은 금물이다. 우리는 이제껏 잘해왔다.


한국 산업이 처한 위기의 본질은 ‘개념설계 역량이 부족하다.’로 표현할 수 있다. 국내 최대 높이인 잠실 롯데 월드타워는 미국, 일본, 영국, 캐나다 등 글로벌 선진기업이 개념설계를 했다. 건축이나 제조 등의 일련과정은 설계-구매-시행으로 이뤄지는데 가장 중요한 설계를 외국사가 담당하고 핵심자재는 설계사가 지정하는 자재를 비싼 값에 구매하고 값싼 일반자재 구매와 노동이 수반되는 업무를 우리가 수행하니 커다란 프로젝트를 속빈강정과 같은 것이다. 애플이 아이폰의 개념설계를 하면 대만의 폭스콘이 실행을 하고, 나이키가 개념설계를 하면 인도네시아가 실행을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예능에서는 개념설계를 포맷이라 하는데 한국의 유명 프로그램 포맷이 중국으로 수출되어 중국판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니 서비스분야도 ‘개념설계능력’이 중요하다. 이처럼 개념설계는 건축뿐 아니라 서비스, 조직설계, 비즈니스 모델설계 등 일하는 모든 것에 적용되는 것이다. 글로벌 챔피언 기업은 새로운 개념설계를 제시하면서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여 스스로 독점사업자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개념설계를 하지 못하는 기업은 열심히 뒤따라가야 하며 개념설계가 바뀌면 또다시 허둥대야 한다. 애플은 스마트폰 시장에서 2016년 기준 14.5%의 시장점유율로 79.2%영업이익을 가져갔다.


착각

한국산업의 위기를 걱정하면서 우리에게 부족한 창의적 역량을 갖추기 위한 처방을 내릴 때 주장하는 말에는 개념설계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해 착각하는 것들이 있다.

1. 부족한 개념설계 역량을 사오면 된다.

2. 창의적 아이디어가 없으므로 논문, 특허, 비즈니스아이디어를 구하면 된다.

3. 생산은 개도국에서, 개념설계는 국내에서

4. 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 같은 천재는 어디에서나 탄생한다.

5. 중국은 생산 공장이다. 일부 중국산 개념설계는 선진국 카피이다.

이런 착각에서 벋어나지 못하는 한 개념설계 역량을 키우기 위한 시행착오의 축적은 이루어질 수 없다. 개념설계 역량은 사오거나, 아이디어 하나 얻었다고 금방 생기지 않는다. 오래도록 직접 그려보고, 적용해보면서 시간을 들여 꾸준히 시행착오를 축적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축적의 전략

착각을 극복하고 전략으로 만들려면 착각을 뒤집으면 되고 이것이 축적의 길이다.

축적의 전략 1. 축적의 경험을 담는 궁극의 그릇, 고수를 키워라.

지난해 말 인천대교와 영종대교설계에 참여한 일본 ‘조다이’라는 회사에 가서 고부가가치 개념설계역량을 어떻게 갈고 닦았는지 알아볼 기회가 있었다. 두 명의 사원을 소개 받았는데, 입사년도가 75년, 76년인 할아버지였다. 창의적 개념설계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역량은 매뉴얼, 시스템이 아니라 40년간 특이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얻은 체험의 축적이 원천이었다. 매뉴얼, 교과서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을 형식지라 하고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암묵지라고 한다. 기술이 발전하며 많은 암묵지들이 형식지로 바꿔 알고리즘으로 표현되고 자동화되었지만 끝내 바뀌지 않는 것은 지금까지 없던 개념설계 역량일 것이다. 후진국의 산업구조는 노동집약적이나 경제가 발전하면 자동화, 대량생산의 구조로 변한다. 선진국이 되면 다시 노동집약적으로 변하게 되는데 조다이처럼 40년 경력의 엔지니어처럼 고도의 창의적 경험을 축적한 전문 인력들이 산업의 중심에서 돈을 벌어들이기 때문이다.


축적의 전략 2. 아이디어는 흔하다. 스케일업 역량을 키워라.

애플세 논쟁이 있다. GPS, 터치 스크린 등 애플에 탑재한 핵심기술 대부분이 미국 정부의 세금으로 대학이나 공공기관에서 만들어 진 것을 스티브 잡스가 무상 또는 적은 돈으로 기술을 가져와 차별적 제품을 만들어 큰돈을 벌었으니 세금을 걷어 미국사회로 다시 환원시켜야 한다는 것이 논쟁의 핵심이다. 이 논쟁은 아이디어가 이곳저곳에 널려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제록스 부설연구소 PARC는 마우스를 사용할 수 있게 해준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 이를 이용한 최조의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었고 유비쿼터스 컴퓨팅 등 4차 산업혁명의 기초적 아이디어를 탄생시켰다. 2010년 애플이 아이패드를 만들었지만 PARC는 1991년 파크패드를 만들어 냈다. 애플이 파크패드의 기술을 헐값에 사왔으니 배가 아플 일이지만 세상에는 아이디어가 널려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아이디어를 눈앞의 현실로 바꾸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눈앞의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투자도 뒤따라야 하며 현실화 과정에서 실패도 맛봐야 한다. 이러한 스케일업 과정을 거쳐야 경험, 기술, 역량이 축적되어 혁신적 개념설계를 내어 놓을 수 있는데, 스케일업 투자도 하지 않고 ‘우리 회사는 왜 신사업이 없는가? 아이디어가 없는가?’하며 연구나 기획 부서를 탓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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