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4. 좋은 음식, 순댓국

순댓국만은 무제한으로 허용한다고 명시했으면 좋겠다.

by 물가에 앉는 마음

순댓국은 예나 지금이나 서민들 음식이다. 적은 돈으로 배불리 먹을 수 있고 후덕한 외모의 주인아주머니들 인심은 아직도 후해 음식이 모자란 듯하면 리필도 해주는 것이 순댓국이다. 분당 본사에 근무할 때 즐겨 찾았던 순댓국집은 강남에 체인점을 냈을 정도로 맛이 뛰어났다. 사장님을 모시고도 몇 차례 갔었고 거래하던 업체 사장님이나 대표 변리사들과도 자주 찾았다.

순댓국집 사장님은 내가 순댓국을 무척 좋아하는 줄 알고 있고 내가 가면 인원만 확인하고 주문도 건성으로 받는다. 하긴 어른들이 순댓국집에 가서 아이들 먹는 돈가스를 시키지 않을 것이니 물어보지 않고 순댓국을 내놓는다 해도 실수는 없다. 순댓국은 주문이 빨라 시간을 절약해 주는 음식이다.


거래업체 사장님들이 식사를 사겠다고 해도 순댓국 먹으러 가자고 하고, 답례로 내가 살 때도 순댓국이다. 하루는 고위 공직자로 근무하시다 퇴직하신 변리사 사무소 대표께서 점심을 사기로 했는데 예약은 우리가 했다. 대표가 내게 물었다.

‘처장님은 순댓국을 아주 좋아하시나 봅니다?’

그분은 이미 순댓국을 한 그릇 했던 사이이나 순댓국을 좋아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으며. 또 새로운 계약을 앞둔 시기에 한턱낸다고 왔는데 순댓국집으로 예약했으니 계약 건이 잘 안될 것 같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네 좋아합니다.’

복작거리는 순댓국집에서 소곤거리는 밀담을 할 수도 없고 덕담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반찬삼아 순댓국을 먹어야 했기에 그 분이 드신 순댓국은 맛이 없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갑질을 하지 않았고 변리사 대표님도 부탁하지 않은 상태로 새로운 계약이 무리 없이 체결되었으니 서로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고 마음의 부담도 없는 셈이다. 속칭 김영란 법에 식사는 3만 원 이하로 명시되어 있으나 백번을 먹는다면 300만원이다. 하지만 순댓국 100그릇은 60만원이다. 김영란 법에 거래관계자 간의 식사에서 순댓국만은 무제한으로 허용한다고 명시했으면 좋겠다. 돼지 부속으로 만드는 음식 이지만 순댓국은 참으로 깨끗한 음식이다.


나주 본사에 근무할 때도 순댓국집을 자주 찾았었다. 상호인 ‘할매순대국’과는 달리 현대적 외모의 예쁘장한 주인아주머니는 음식 솜씨가 좋아 단체손님이 간다고 예약하면 순댓국집에 어울리지 않는 연어샐러드, 베이컨 떡말이 등 여러 가지 반찬을 내오셨다.

예약 없이 서너 명이 몰려가면

‘주문...?’

‘같은 것으로 주세요.’

술친구인 J국장이 개발한 안주인 ‘순대, 머리고기 혼합 모듬’과 술국이 나온다.

누가 계산해도 부담 없는 가격대인 2만원이고, 좋아하는 막걸리 안주로도 제격이며 홀아비들 저녁식사 대용으로도 안성맞춤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주머니 얇은 직장인들이 계산할 때 누가 낼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누가 계산해도 부담 되지 않는 좋은 가격의 음식이다. 순댓국은 계산할 때 눈치 안 봐도 되는 마음 편한 음식이다.


이곳 인천에 와서도 눈치 빠른 팀장님들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미리 파악해 놓았다. 팀장이 오늘 저녁에 순댓국집에서 막걸리 한잔하잔다.

‘처장님이 순댓국을 좋아하신다 해서...’

누추한 집으로 모신 것을 양해해 달라는 이야기며, 내 뜻이 아닌 당신 입맛에 맞춘 것이니 속으로 욕하지 말라는 뜻도 담겨져 있다.

‘순댓국 좋아합니다. 막걸리 안주로 최고지요. 개고기와 민물고기 빼놓고는 음식을 가리지 않습니다.’

한편으로 이러다가 전국의 순댓국만 먹고 퇴직 할 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직 단위마다 사업규모에 맞게 1년 예산이 배정된다. 물론 사업을 하다보면 특근식비나 회의비 등 소위 먹는 예산이 부족할 수 있어 추가예산을 신청해야 한다. 예산을 담당했던 본사 Y부장은 추가예산을 신청하면 꼼꼼하게 따지기로 소문났지만 우리 처에 예산이 부족하다고 이야기하면 별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순댓국만 먹고 다니는 임처장님이 오죽했으면 예산 증액요청을 했을까.’ 순댓국은 부서간 마찰과 오해도 없애주는 화합의 음식이기도 하다.


순댓국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다른 음식도 먹을 줄 안다. 하지만 회사 경비를 사용할 경우에는 가격이 저렴한 곳을 찾는다. 물론 고객 등 외부손님을 모시는 경우에는 순댓국을 좋아하지 않는 분도 계시니 미리 확인을 해야 하며, 초면에는 격에 맞는 음식을 대접해야 한다.

보통 사람들이 꺼리는 음식인 개고기, 감탕내가 나는 민물고기, 어류 같지 않고 파충류같이 생긴 꼼장어와 왠지 먹을 것 없어 보이고 혀를 할퀼 것 같은 닭발 빼고는 못 먹는 것이 별로 없다. 나도 소고기, 민물장어, 참치회를 먹을 줄 알지만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내 돈으로 가족들과 먹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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