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주지 않는 얼마나 정중한 부탁인가?
브런치 입성 후 몇 개의 제안을 받았다. 글쟁이들 세상이니 받은 제안 대부분 글 쓰는 것과 관련 있다. 합동 문집을 만들자는 이들의 제안은 거절했다. 원고마감일을 지켜야하는 스트레스를 받기 싫어서다. 물론 원고마감일과 무관하게 이미 써놓은 원고만으로 같이 작업하자는 분도 있었으나 비슷한 이유로 거절했다. 솔직히 그 시간에 낚시 다니는 것이 훨씬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이 내린 결정은 아니다. 낚시와 끄적거리는 것이 취미인데, 둘 중에 ‘재미 또는 행복’의 강도와 빈도를 고려해 결정했다.
제안하신 분은 오해 없으셨으면 한다. 치열하게 직장을 다니다가 퇴직 후 재미와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일은 하지 않기로 했다. 아직도 쓰기를 공부하고 있으며 일정수준에 도달하지 못하여 끄적거린다고 표현하고 있으므로 筆力의 高低를 생각한 적은 추호도 없다. 아마도 향상속도로 봐서는 죽을 때까지 일정수준을 넘지 못하고 끄적거리다가 끝날듯하지만, 아직 끄적거리는 작업에서 ‘취미=재미 또는 행복’이란 등식이 성립하고 있어 쉽게 멈추지는 못할 것 같다. 합동 문집이나 공동 작업에 재미를 느낄 때 거꾸로 연락 드릴지도 모른다.
예전 회사 사보에 일 년여 연재코너를 운영한 적이 있었다. 1년 해봐야 12편이니 마음먹으면 한 달 내에 쓸 수 있다. 하지만 그놈의 원고마감일은 왜 그리 자주 다가오고 스트레스를 주는지 모르겠다. 쥐꼬리만 한 원고료 1년 치는 이미 동료들과 막걸리로 바꿔먹은 지 오래되었지만 약속한 원고마감일을 지켜야 한다. 그때 결심했다.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않겠다고
이후 기한을 두고 끄적거린 일이 없다. 월급 받고 써야 하는 보고서는 직장인의 의무이므로 밤을 새워서라도 써야 하지만 취미로 끄적거리는 것이니 만큼 절대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 현재 Off Line에서 연재를 이어가고 있는 코너가 하나 있기는 하다. 편집자께서 스트레스 받지 않도록 배려해주신 결과다. 매주 보내드리는 편지 중 편집자께서 원고를 고르기로 했다. 책이 출간되기 전에는 내 자신도 어떤 글이 실리는 줄 모르고 있다.
브런치를 통해 도착한 편지다.
“저는 ooo에 근무하는 ooo입니다.
직장 생활에 있어 공감 가는 글을 찾아 읽다 보니 작가님의 글이 유독 많은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작가님의 좋은 글을 내부(업무)망 게시판에 올려 그 어느 공무원 조직보다 더 위계질서를 강요받는 조직원들에게 소개하고 싶어 이렇게 의견(요청)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내부(업무)망 게시판은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아 링크가 불가능하여 작가님의 성함과 출처, 링크 주소를 글 상단에 반드시 표기하여 올린다는 조건으로 작가님의 좋은 글을 올려도 될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가능할까요? 감사합니다.
허락해 주신다면 우선 아래 작가님의 글을 게시하고자 합니다...!“
바로 답장을 보냈다. ‘오케이’. 끄적거려 놓은 것을 이용하겠다는 요청은 언제든지 오케이다. 브런치를 하는 목적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별로 공감할 내용도 없지만 도움 될 만한 내용이 있어 독자들이 사용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또한, 공기업 근무 중에 끄적거린 이야기이니 국민 세금이 포함된 소재와 결과물이다. ‘내돈내산’ 노트북과 책이라 하지만 모두 월급으로 산 것이니 말이다. 게다가 국가 공무원이 좋은 일에 사용하겠다고 요청하니 얼마나 잘된 일인가? 또한, 내게 스트레스 주지 않는 얼마나 정중한 부탁인가? 정중함에 대한 보너스로 활자로 인쇄한 책도 한권 보내 드렸다.
매주 보내드리는 편지를 받아보시는 분 중에 대학 교수가 계시다. 업무로 만난 외부 분들과는 인연이 거의 끊겼으나 연이 질긴지 끈질기게 편지를 보내고 읽는 사이다. 전공은 나와 같은 공돌이다. 어느 날 편지가 왔고 공돌이들 편지는 주로 짧다. 기억으로는 세줄 정도 되는 것 같지만 생각나는 것은 한 줄이다.
‘매주 보내주시는 편지를 강의 자료로 사용해도 되는지요?’
‘오케이.’
브런치를 통해 요청하신 분에게 흔쾌히 오케이 한 것과 같은 이유다. 죽을 때 짊어지고 갈 것도 아닌 것을 공개하지 않을 이유가 없고 혹시 업무와 관련된 암묵지를 대한민국 국민이 이용하는 것이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
편한 세상이다. 어플리케이션으로 맺어지고 주고받는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