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478. 君子는 누구인가?

중세시대 기사(Knight), 현대사회 신사(Gentleman)나 文化人

by 물가에 앉는 마음

GT정비기술센터 식구들 대상으로 매월 한 번씩 ‘조회?, Talk Concert?’를 하는데 ‘君子’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중국영화 마니아라면 조금 익숙한 단어이며 ‘梁上君子(양상군자: 대들보 위의 군자, 도둑놈)’라는 단어도 있으나 요즈음은 자주 사용치 않는 단어라 젊은 층에서는 뜻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오늘은 그간 소개드렸거나 읽었던 책에 기술된 내용들을 바탕으로 ‘군자’에 대한 개인적 견해를 말씀드리려 한다.


‘우주제일’, ‘가장 위대한 고전’ 등 화려한 수식어가 붙는 책이 ‘논어’다. 명성에 걸맞게 2500년간 읽어 왔고, 오늘날에도 꾸준히 읽고 있으며 앞으로도 읽힐 것이다. 총 20편으로 이루어진 논어 1편 ‘學而’편의 첫 문장은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온다.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배우고 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첫 문장뿐 아니라 논어에서 ‘군자’는 수도 없이 등장한다. 子曰 君子有於義 小人有於利(공자께서 말씀하시길, 군자는 정의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으니라.) 그러면 논어의 주인공 같은 ‘군자’는 누구인가? 또한 ‘군자’와 대비되어 자주 등장하는 ‘소인’은 누구인가? 실존하는 특정인물인가?

논어에서 ‘君子란 학식이 높고 행실이 어진 된 사람’을 말하며 ‘小人은 도량이 좁고 간사한 사람’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런 소인배 같으니라고’ 하면 매우 치욕적인 욕이 되며 ‘소인배’ 반대 의미로 ‘대인배’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논어뿐 아니라 동양철학에서 추구하는 ‘완성된 인간의 모습이 군자’이며, ‘바람직하지 못한 인간의 모습은 소인’ 이다.


동양철학의 목적은 ‘완성된 인간’을 만들어 평안한 국가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공자는 仁과 禮를 강조하여, 권력층과 부자는 솔선수범하여 베풀고 감싸주는 자세를 가져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 했다. 조선 통치철학은 유학이 모태인 朱子學(주자학)이었으며, 끝없는 공부와 인격수양으로 무엇이 진정으로 옳고 그른지를 명확히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여 조선 왕들은 공부에 지쳐 단명했다고 할 정도였다.

인간이란 ‘본인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인다고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한비자도 군주가 솔선수범해야 통치력이 생긴다고 했으며, 사기에서도 통치자가 갖춰야할 첫 번째로 덕목으로 ‘덕’을 꼽고 있다. 요임금에 대해 ‘부유했으나 교만하지 않았고 존귀했으나 거드름을 피우거나 오만하지 않았다.’고 기술하여 후대 왕들이 본받게 했다.


왕들은 스스로를 孤人(고인: 부모가 없는 사람), 寡人(과인: 남편이 없는 사람), 不穀(불곡: 곡식을 번창 하게 하지 못할 사람), 朕(짐: 조그맣게 갈라진 틈과 같은 사소한 사람)으로 낮게 칭했는데 이는 의식/무의식중에 발현될 수 있는 권력남용, 교만함을 멀리하고자 하는 의미였다. 도가사상의 ‘光而不耀 和光同塵 (광이불요 화광동진)’이라는 말은 빛을 발하지만 눈부시지는 않고 자기 빛을 다른 흙먼지들과 함께 펼쳐 같은 수준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뜻으로 절제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성왕뿐 아니라 칭송 받았던 인물은 분에 넘치게 좋은 옷, 좋은 음식, 좋은 집을 취하는 것을 멀리했고 노비에게 따뜻하게 베풀었으니 ‘군자’가 되는 교육을 받고 그렇게 되기 위해 절제하고 본인에게는 엄격하게 생활했다. 우리 선조들은 소위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해야 ‘양반’이 되었고 ‘군자’가 되는 세상을 살았다.


논어, 맹자뿐 아니라 채근담, 사기, 소서를 봐도 절제하고 꾸준히 자기수양을 하며 남들에게는 자상하고 자신에게는 엄격하라고 강조한다. 이는 서양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아테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스파르타를 부러워했다. 스파르타는 신분 고하를 따지지 않고 어릴 때부터 집단생활을 해 훈련하고 쾌락을 멀리하게 했다. 공동생활을 하니 부자도 좋은 음식을 먹지 못했고 화려한 식기 사용도 못했다. 이로 인해 스파르타인들은 재물에 대한 욕심이 없어졌고 조국을 위해 목숨을 던지는 것을 가장 아름답고, 중요하게 여겼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완성된 인간의 모습이 군자’이며, ‘바람직하지 못한 인간의 모습은 소인’이라 했는데 군자는 왕이나 양반이었고 소인은 천민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배우고 실천하는 사람이 ‘군자’이며, 배우고도 실천하지 못하면 ‘소인’이었다. 학문을 배우지 않았어도 의롭게, 자상하게 행동하여 덕망을 높이면 ‘군자’였다.

그러면 현대사회의 ‘군자’는 누구인가? 마이바흐를 타고 산해진미를 먹어도 義롭게 부를 축적하고, 운전기사에게 욕하고 갑질 하는 행동을 삼가며 仁으로 감싸주고, 아파트 경비아저씨를 대할 때도 깍듯한 禮를 갖추고, 사업 확장도 좋지만 골목상권을 보호하고 순리에 따르는 사업의 道를 알며, 이로 말미암아 德을 쌓는다면 마땅히 존경받을만하며, 우리는 그들을 ‘졸부’라 부르지 않는다. 오히려 존경받는 기업인이라 부르니 ‘군자’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회사에서도 직급이 높아질수록 겸손하고, 주어진 업무에 열정을 다하며, 가방끈이 길다 해도 계속 열공하고 정신을 수련하며, 부당한 지시에는 의롭게 대처하여 순리적 방안을 이야기하고, 상대방 처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여 말을 조심하고, 동료와 더불어 같이 살아가려 노력하면 소위 ‘존경받는 선, 후배’란 칭호가 자연스레 붙을 텐데, 바로 이런 사람이 회사 내 ‘군자’가 아닐까 한다. 그러므로 양심에 비춰 부끄럽지 않고 公利를 생각하며 주변과 더불어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문화인’이라 하는데, 이들 모두를 ‘군자’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알면서도 행하지 않으며, 세치 혀로 사람들을 현혹시켜 자신만의 名利를 챙기려는 사람은 ‘소인’이라 불려도 마땅하다.


길게 써내려갔지만 동양철학에서 ‘君子’는, 요즘도 기사작위가 주어지는 중세시대 기사(Knight), 현대사회 신사(Gentleman)나 文化人과 뜻이 일맥상통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746. App으로 맺어지는 편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