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지고 판다는 장사꾼과 같이 사기성이 농후한 수준인가?
명함에 새겨 놓은 “기술거래사”라는 자격증 명칭은 처음 만나는 사람과 대화의 단초를 제공해 준다. “기술거래사? 뭐지요?” “기술을 팔고 사는 자격으로 기술브로커입니다. 산업부장관 명의로 부여하는 국가 자격이며 부동산거래사와 같은 자격으로 보시면 됩니다.” 기술거래사법을 입법할 당시의 취지는 기술거래에 대해 기술거래사에게 독점적 권리를 부여하는 것으로 되어있으나 자격보유자가 적어 독점적 권리는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기술을 거래하고 있으니 아주 쓸모없는 자격증은 아니며 기술 거래 시 상대방에게 신뢰를 줄 수 있고 기술거래 협상 시, 보다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는 것은 자격증 덕분이기도 하다.
1993년 GE와 가스터빈분야 기술이전계약을 체결하여 GE는 기술사용료를 챙겼고 우리 회사는 매출과 이익을, 국가적으로는 국부유출을 방지했다. GE가 신기종가스터빈개발에 실패하고 운전되고 있는 GE Type 발전소가 머지않아 수명이 도래하므로 GE 가스터빈발전기 정비시장은 축소되고 효율 좋은 일본 미쓰비시Type 발전소가 국내시장을 장악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GT센터 입장에서는 미쓰비시와의 협력이 필요한 시기가 되었다.
2년 반 가까이 진행된 협상에 진척이 없었는데 GE기종에 대한 수리만으로 공장이 운영되었던 시기에 미쓰비시 관계자의 협력구애를 문전박대 했던 것도 하나의 이유일 수 있다. 하지만 미쓰비시가 국내시장을 확장하면서 미쓰비시는 고장을 신속하게 복구하는 AS망이 필요하게 되었고 우리는 새로운 매출원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맞아떨어졌다.
일본에서 건너온 미쓰비시 아키다본부장과 미팅, 만찬을 했다. 본 회의에 앞서 아키다본부장이 본인 소개를 하는데 나이 60, 36년간 미쓰비시에 근무하며 가스터빈을 설계했고 외국과의 협력 업무를 담당했으며 퇴직 즈음해서 임원으로 발탁된 실력자이다. 전기공학을 전공했고 원자력, 기술기획업무를 담당한 내가 가스터빈에 대해 어떠한 이야기를 해도 기술적으로 그를 압도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아키다본부장이 본인 소개를 하는 짧은 시간, 내가 이야기할 화두만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자동차와 발전소에서 AS망의 중요성 , 교세라 이나모리 가즈오회장의 열정..., 미리 정리해 놓은 소개 자료는 접고 정리된 화두를 중심으로 이야기했다.
나는 전기공학을 전공했고 원자력발전소에 근무, R&D기획을 했으므로 가스터빈에 대한 기술적 지식은 없다. 입사 후 33년 근무했고 나이도 아키다본부장보다 1살 어리다. 경력이나 연배로 보나 형님 같으신 선배님이 직접 방문해주셔서 감사하다. 나는 발전소와 자동차의 특성이 비슷하다고 본다. 소비자는 연비 좋고 운전하기 쉬우면서도 고장이 적으며 고장이 발생되어도 쉽고 빠르게 고칠 수 있는 제품을 선호한다. 미쓰비시가 만든 “랜서(준 경주용 자동차)”가 연비 좋고 운전하기 좋은지 몰라도 애프터서비스망 구축에 실패하여 국내시장에서 소비자의 외면을 받았다. 미쓰비시 가스터빈은 높은 효율, 운전편의성을 무기로 한국에 판매하는데 성공했고 점차 시장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고장이 발생되면 빠르게 수리할 수 있는 AS망 구축이 미쓰비시의 향후 사업 확장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우리 회사가 전국적 AS망을 구축하고 있으니 탁월한 선택을 한 것 같다.
우리 회사는 정비전문업체지만 R&D를 통해 많은 부품을 국산화했고 터빈블레이드를 개발하는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으나 공기업이기에 미쓰비시의 허락 없이 부품을 수리하고 싶지는 않다. 공식적관계하에서 정비시장이 형성되길 원한다.(가스터빈발전기 시장은 원자력과 화력시장과 다르다. 일정시간 운전 후 주요부품을 교체, 수리해야 하는 특성으로 인해 발전소 소유주와 제작사는 부품수리에 대해 장기 서비스계약을 맺는다. 제작사가 정비시장을 독점하고 있으므로 우리 회사가 정비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해도 정비시장이 형성되지 않기에 제작사가 “갑”인 시장이다.)
우리 회사는 GE, Westinghouse, Siemens, ABB 등 세계 각국의 발전기를 정비할 수 있는 기술 능력을 구비하고 있어 미쓰비시가 우리 기술 인력과 장비를 활용한다면 커다란 시너지 효과가 발생될 수 있을 것 같다. MOU에는 포괄적 사항을 적시해야 실무진에서 일하기 편하니 원한다면 공장시설까지도 미쓰비시와 공유하는 것으로 협력범위를 넓혔으면 한다.
하지만 내가 팔고자 하는 것은 기술이 아닌 우리직원들의 열정이다. 개인적으로 교세라의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을 존경하는데 우리공장을 시찰할 때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이 강조하신 “열정”을 눈여겨 봐주시기 바란다.
이쯤 되면 합법적인 기술거래사가 아니라 밑지고 판다는 장사꾼과 같이 사기성이 농후한 수준인가? 하지만 유, 무형 기술을 팔 수 있는 자격을 보유하고 있으니 “열정”도 내가 팔 수 있는 품목 중의 하나이며 위법은 아니다. 그리고 입에 달고 사는 단어가 “열정”이며 “열정” 있는 직원들을 사랑하기에 내가 팔고자 하는 것이 “열정”이라고 이야기 한 것은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저녁식사 하며 김영란법 때문에 3만원 미만의 식사를 준비했다고 하자 일본은 그렇지 않다며 술을 많이 먹어 3만원이 넘게 되면 어떻게 하냐고 불었다. 아키다상이 초과분을 내야한다 했더니 크게 웃었다. 3만원을 약간 초과했으나 초과분을 받지 않아서인지 “감사합니다.” 하는 인사와 함께 초콜릿 선물을 주고 갔다. “아리가토 고자이마스 For your gift.” 국적불명의 감사인사를 했는데 앞으로 미쓰비시와 사업하려면 일본어도 배워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