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8. 親疏(친소)관계 정리하기

친구와 손님은 달라야 한다.

by 물가에 앉는 마음


A는 대학동창이니 알고 지낸지 40년 넘었다. 지난 세월만 놓고 보면 둘도 없는 친구 같지만 親疏(친소)관계는 세월과 비례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A는 묘하게도 고교 동창그룹에 들어온 친구다. 고교동창의 중학교 여자동창과 A가 연애하고 결혼했기에 맺어진 관계로 고교동창들과 애틋한 정이 있는 관계는 아니다.

A는 대학졸업 후 이런저런 일을 하다 현재는 음식점 두 곳을 운영하고 있다. 물려받은 유산으로 인해 경제적 여력이 있는 친구다. 첫 번째 고기 집을 개업했을 때 친구들은 돈을 갹출해 축하 봉투를 만들고 매상 올려주려 방문했다. 동업이라지만 일산신도시 한복판에 100평 넘는 규모의 매장은 초보에게 너무 버거워보였다. 오랜 친구들이 찾아갔으나 일반 손님들과 같이 취급하는 것에 조금 불쾌했다. ‘그래, 동업이니까 A가 처신하기에 편하지 않았을 거야.’ 하며 자위했다.

1년도 되지 않아 A는 동업관계를 끝내고 독립점포를 오픈했다. 규모는 사오십 평 정도니 크지 않아도 작지 않은 규모였다. 이번에도 친구들이 먼 길 마다않고 축하차 찾아갔으나 지난번과 비슷한 대접을 받았다. 公(공)과 私(사)를 구분해야 하니 당연히 음식 값을 계산했다. 음식점을 나온 친구들은 서로 말이 없었다. 음식 맛에 대한 불만이 아닌 친구들끼리만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정이 부족한 것에 기인한 듯 했다. 친구들이 축하차 먼 길 찾아줬다면 버선발로 뛰어나와 반겨주는 그런 마음을 A의 언행에서 찾을 수 없었다.


A가 인근에 가게를 추가로 열었을 때 가서 축하해 주자고 나서는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 솔직히 나도 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고교동창들은 그렇게 건조하게 살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끈끈하게 살아서 집사람들 원성이 자자했다.

고교동창들과는 직업을 갖기 전까지 집에 갈 차비만 남기고 주머니를 털어 금액에 맞춰 술 먹고 음식을 나눠 먹었다. 누가 돈을 많이 내던 돈을 내지 않던 상관 않고, 따지지도 않았다. 멀리 떨어져 공부하거나 직장 다니면 제주, 부산도 마다않고 시간 내어 찾아가 쓴 소주 한잔하고 바쁘게 올라 왔다. 그래야 친구 도리를 한 것 같았고 안심했던 친구들이다.

목사, 교수, 직장인으로 직업도 다양하고 성격도 제각각이지만 한 가지 공통된 생각을 하고 있다. 불행한 일이 닥쳐도 친구와 가족들을 배곯게 하지 않겠다는 생각이나 공식적으로 입 밖에 꺼낸 적은 없다. 말하지 않아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서로가 믿고 있다.


얼마 전 관계심리학 전문가 박상미 한양대 교수의 인터뷰 기사를 봤다. ‘나이 들면 친구관계가 좁아진다. 오래된 친구니 어쩔 수 없이 만난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만나면 힘 빠지게 하는 친구, 시간이 아깝다고 느껴지는 친구는 정리해야 정신건강에 좋다.

논어와 명심보감에서 제시한 좋은 친구 판별기준 11가지다. 착한가? 배우는 것을 좋아하나? 좋은 사람들과 사귀고 있나? 상대방 마음을 공감해 주나? 타인을 돕나? 의리 있나? 상대를 존중(경청)하나? 선을 지키나? 정직한가? 절제를 잘하나? 칭찬을 잘하나?

11가지 이외 축하를 잘해주는 친구,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친구, 부탁을 잘 안하는 친구는 가까이 해야 한단다. 만나면 자식자랑 돈 자랑 마누라 자랑하는 친구 대신 축하를 잘해주는 친구, 부탁을 잘 하는 친구대신 용건 없이 목소리 듣고 싶어 전화하는 친구,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말하는 친구대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친구를 만나야 한단다. - 2022.01.28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최근 친구들의 본가, 처가 어르신들이 연달아 세상을 떠나셨다. A는 항상 바쁘다는 핑계로 친구모임에 불참했고 경조사 참석도 게을렀다. 먼저 안부 전화하는 적도 없는 A에게 연락 오는 것은 일면식 없는 처남喪(상) 등 애경사가 있을 때다. A가 모친상을 알려왔다. 고교동창들 상이라면 먼 길 마다않고 갔을 것이나 코로나 핑계로 온라인 조의만 표했다. 고교동창들도 의논 후 모두 조문하지 않기로 했단다.

코로나로 인한 장점 중 하나가 비대면 으로 일처리가 가능해 졌다는 것이다. 회비로 불입하는 적금이 만료되자 총무가 정산하여 송금했단다. A의 회비를 계산, 정리했다는 것은 회원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며 관계 格下(격하)를 의미한다. 대면으로 정리하기 어려웠던 親疏(친소)관계를 비대면으로 수월하게 정리한 듯하다. 총무 직업은 ‘목사님’이니 여러 친구들 의견을 종합해 양심에 어긋남 없이 판단했을 것이다.


以心傳心(이심전심) 고교동창들의 親疏관계 정리이유를 생각해 봤다.

첫 번째, A는 고교동창이 아니니 고교동창모임에서 정리해도 이상함이 없다. 중학동창과 결혼했고 내 대학동창이라는 이유로 그간 모임참석을 묵인했었다.

두 번째, 유유상종이라 하는데 가치관과 인생관이 다른 친구와 먼 길 가는 것은 서로에게 불편하다.

세 번째, 생각해보니 고교동창들 집에는 모두 몰려가서 밥도 먹고 잠도 자봤지만 청담동 산다는 A의 집에 가본 적이 없다. 짚어보니 그렇게 깊은 관계가 아닌 조금 먼 사이였다.


‘상대방 마음을 공감해 줬나?’

‘상대를 존중하나?’

관계심리학 전문가 박상미교수의 좋은 친구 판별법이나,

비전문가인 고교친구들의 좋은 친구내지 親疏관계 판별법은 단순하다.

‘친구와 손님은 달라야 한다.’

‘한 명으로 인해 여러 명이 불편해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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