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0. 飮酒(음주)의 추억

술 먹지 않는다고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고 단점도 있기는 하다.

by 물가에 앉는 마음

선친의 고향은 평안남도 진남포(평양옆)로 고향소주인 진로소주를 좋아하셨다. 어릴 적에는 술심부름을 다녔고 직장인이 되어서는 진로소주를 박스로 사드린 적도 있었다. 선친은 정말로 하루도 빠짐없이 진로를 드셨고 술과 관련된 詩도 많이 남기셨다. 아래 詩에는 ‘진로’가 등장한다.


故鄕이야기 (林眞樹, 1973.11.28)


학교 길에 만나던 그 여학생

그녀를 만나 얘기했지.

옛날이야기, 고향 이야기


松井학교 加德학교 碑石里

그리고 뭐더라

옳아 옳아

玉泉台 峰台山 朏發島

지금은

記憶속에 가물거리는

이름이여 山河여 나의 사랑.


학교길에 만나던 그 여학생

그 녀를 만나 얘기했지.

韓晶東선생님 아시죠?

그럼요

요즘도 가끔 만나 뵈요.


眞露 두꺼비

眞池洞에서 만들던 술.

그래서 마시는 건 아니지만

소주를 좋아한답니다.


그녀가 말하길

술 많이 드시면 해로우세요.

아, 여기가 어드메길래

세월은 가고

존댓말이 서글픈 고향이야기.


林家(임가)는 젖꼭지 놓자마자 술꼭지 문다고 고모님들이 말씀하신걸 보면 내 주량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듯하다. 회사 내에서 가부좌를 풀지 않고 밤을 새운다는 전설적인 몇몇 선배님들 같이 酒神(주신)의 반열에는 오르지 못했어도 근처까지는 갔었다.

신입사원 환영식에서 나만 멀쩡했다. 소주 4~50잔을 거푸 마셨는데도 무표정이었으며 행동에 흐트러짐이 없었다. 다음부터 나는 2차, 3차에 당연히 가는 사람이 되었다. 통근버스가 해운대 달맞이고개를 넘기 전, 오늘은 술 먹지 말아야지 하며 마음먹지만 해운대 네온사인의 반짝거리는 유혹을 피하기 어려웠다. 6개월 만에 술 덜 먹고 공부하기 위해 발전소 앞으로 하숙을 옮겼으나 술집은 어느 곳에나 많았다.

팀장이 되었다. 팀원들이 팀장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장소와 방법은 환영식 하는 날 술을 먹이는 것이다. 하지만 팀원 50명으로는 신임팀장을 이기기 어려웠다. 한잔씩 받으면 50잔이며 한 병당 7.5잔이 나오니 소주 6.5병이다. 인원이 많아도 소주 10병 정도 되는 주량을 이기기 어렵다. 테이블을 한 바퀴 돌고 두 바퀴째 돌 것이라 예고하자 무지막지한 팀장에게 질린 팀원들은 하나둘 흩어졌다. 환영식을 받았으니 며칠 후 신고식을 하겠다고 하자 오히려 팀원들이 몸을 사렸다. 다행이다. 많이 마시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왜 그렇게 술을 마시고 다녔는지는 내 자신도 설명하기 어렵다. 학창시절에는 등교하다 아침 해장하는 선배들과 한잔하고 학교 잔디밭에서 낮잠 자다 깨어나면 다시 술집으로 향했다. 친구들과 어울려 주거니 받거니 하는 분위기가 좋았다. 취직해서도 팀원들과 몰려가 저녁 겸 소주한잔 마셔야만 하루 일과가 종료되었다.

50 즈음해서는 오랫동안 술을 나눠 마시기 위해 주종을 막걸리로 변경했다. 물론 체력적으로도 소주 10병을 마시지 못하는 나이가 되었고 무리하면 다음날 두들겨 맞은 듯 온몸이 뻐근해졌다. (술 먹은 다음날 몸이 쑤시는 것은 남편이 미워서 사모님이 밤새 지근지근 밟았기 때문이라는 說도 있다.)

소주가 좋은 점은 값싸고 배부르지 않게 취할 수 있는 것이고, 막걸리가 좋은 점은 기계적 제어장치(mechanical limitter)가 있어 과음을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막걸리 두병 먹으면 배가 불러 더 이상 먹지 못한다. 또한 낚시터에서의 막걸리 한 병은 끼니로서도 제격이다.


막걸리도 끊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술친구들은 금주 소식에 깜짝 놀란다. 혹시 죽을병에 걸린 것이 아닌가하고...눈길이 애처롭다. 과음하면 죽는 병이니 맞기는 하다.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은 주량과 낚시뿐만이 아니었다. 부계혈통으로 선천적으로 약한 신장을 가졌다. 신장에 물집이 생기는 다신증이 유전적 우성으로 다신증 환자는 뇌동맥류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신장내과 주치의 소개로 뇌혈관에 대한 MRI 검진결과 뇌동맥류가 발견되었다. 다신증과 뇌동맥류에는 알코올이 좋지 않다며 의사가 술을 먹지 말라고 권고 했다. 이제 소주, 막걸리는 추억이 되었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술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다. 종로통을 헤매고 다닐 때에는 앉은 자리에서 생맥주 5000CC를 먹었고, 소주 10병을 먹는 주량에 선친을 닮아 하루도 빠짐없이 술을 먹곤 했는데 술은 생각보다 중독성이 약한가보다.

중독성보다는 총량과 관련되어 있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 평생 마실 술의 양과 숨의 양을 정해주셨단다. 일명 ‘인생 총량의 법칙’이다. 그간 마신 술을 총량으로 따지면 보통사람의 두세 배를 주신 것이니 얼마나 감사하고 복 받은 일인가.


술 먹지 않는다고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고 단점도 있기는 하다. 같이 술을 먹었다면 모두 알아들었을 술친구들의 이야기가 이제는 잘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했던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 까지는 이해하겠는데 혀 꼬인 발음으로 비논리적 이야기를 하면 이해하기 어렵다. 예전에는 어떻게 알아듣고 고개 끄덕이며 대화 했을까? 술 끊은 이후의 단점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