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749.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1)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1) (백성호著, 판미동刊)

by 물가에 앉는 마음

읽었던 책 같은데 컴퓨터를 뒤져봐도 서머리한 흔적이 없다. 벼리고 벼려 시퍼런 칼날 같던 기억력이 예리함을 잃은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두 번 읽어도 무방한 책이다.


intro

‘인문학이라는 건 인간과 학문의 존재론적인 가치와 이유를 제공하는 것이라야 해요.’


‘사람들은 지식을 쌓아서 입신양명하는 것을 공부라고 생각해요. 틀렸어요. 공부는 다른 입장에서 나를 보는 연습이에요. 식물의 입장에서 나를 보는 것이 식물학이고 동물의 입장에서 나를 보는 것이 동물학이듯, 공부를 하다보면 점점 나를 비우고 나의 원심력이 커집니다. 그렇게 생겨난 공간, 그렇게 넓어진 마음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너‘를 담게 됩니다.’


‘어떤 종교인들은 상처받은 자들에게 위로와 힐링을 주려 합니다. 그러나 모든 문제의 중심에는 자신이 있습니다. 그것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죠. 그 과정 속에서 운명과 마주하는 맷집이 길러지는 겁니다.’


‘기도란 뭘 바라는 게 아닙니다. 나는 왜 존재하는가, 나는 지금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깊은 묵상을 통해 신을 만나는 겁니다. 그 속에서 내 삶의 안내자를 만날 수 있는 거죠. 그것을 신이라 부르든 뭐라 부르든. 중요한 것은 내 삶의 이유를 나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거예요.’


어설픈 위로에 대한 기대를 접는 일.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는 일. 그리고 상처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그것이 시작되는 과정을 들여다보는 것.


‘땅 위의 나무는 아름다워요. 잎도 있고, 꽃도 피고 새가 둥지를 틀지요. 하지만 땅 속은 캄캄합니다. 벌레도 많고, 바위투성이에 공기도 희박하죠. 그래도 뿌리는 아래로 내려가야 해요. 뿌리가 내려간 만큼 몸통도 자라는 거니까. 그래야 나무는 건강해 집니다.’


들어가는 말: 인생은 모든 의미를 잃어버렸을 때 가장 의미 깊은 것이 된다.

헤르만 헤세의 시 ‘행복해진다는 것’에 이런 구절이 있다.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 다른 아무것도 없다네. 그저 행복이라는 한 가지 의무 뿐 ’ 헤르만 헤세에게 인간의 구원과 행복만큼 중요한 화두는 없었고, 인간의 존재의미는 행복이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다음구절에서 그는 씁쓸한 고백을 한다. 온갖 도덕과 온갖 계명을 갖고도 행복을 찾을 수 없단다. 그럼 이제 우리는 무엇을 보며 행복을 찾아야 하는가? 아이러니하게도 답은 우리가 ‘행복하지 못한 이유’속에 함께 숨어 있었다. 헤르만 헤세는 말한다. ‘그것은 사람들 스스로 행복을 만들지 않는 까닭’이라고.


,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복잡하고 치열한 세상을 살아가지만 행복을 희구한다. 이 시대에도 ‘행복의 공식’은 있다. 좋은 대학 나오고, 근사한 직장에 들어가 경제적으로 안락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것이다. 실현 불가능한 꿈으로 보이진 않는다. 20세기보다 일자리가 많이 생겼고 부의 총량도 늘어났으니까. 그러나 그걸 놓친 사람이나 힘들게 이룬 사람도 절망하게 되는 이상한 시대에 우리는 서 있다. ‘이것이 행복 아니었나? 행복이 있기나 하나?’ 어느 쪽이든 우리가 믿어 온 ‘행복의 공식’이 마땅한 답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그것에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헤세는 사람들이 스스로 행복을 만들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행복의 자가 생성’, 혹시 여기에 열쇠가 있지 않을까? 그게 바로 우리시대의 ‘강호의 고수’를 찾아 나서게 된 이유다. 어쩌면 비급을 전수받으려 무림을 떠도는 자의 심정이었는지 모른다.


‘행복은 어디에 있나. 어떻게 행복을 만드나.’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이 한권에 모았다. 한 그루의 나무를 알아야 숲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만난 17명의 고수는 철학, 음악, 건축, 종교, 의학, 과학 분야에서 자기 나무 한 그루를 꿰뚫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자기 전공분야를 넘어 더 큰 세상을 조망하고 있었다. 이 책은 그들이 바라본 17장의 지도를 모자이크 해 놓은 일종의 길라잡이다.

어쩌면 당신은 이 안에서 스스로 행복을 만드는 법, 그 비밀스러운 오솔길을 찾을지도 모른다. 그 길은 드러나 있을 수도, 감추어져 있을 수도 있다. 고수는 방향만 가리킬 뿐 당신의 길을 알려주진 않는다. 목적지를 향하는 나침반은 당신에게서 꺼내야 한다. 그것이 길을 찾는 묘미 아니겠는가.

앞서 간 이의 발자국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도 좋다. 어차피 그 길은 세상 어느 누구의 길과도 같지 않다.


16장 일하는 기쁨

정희선(국립과학수사 연구원 초대원장): 정말 사랑하는 일을 하고 계십니까

화학이 좋아 약대에 진학했다. 3학년 때 오수창 국과수연구소장의 강연이 인상 깊었다. 당시 약대를 졸업하면 약국, 제약회사에 취업했어요. 국과수 실험실 같은 곳은 생소하기도 하고 선호하지 않았는데 저는 졸업하고 바로 들어갔어요. 운대가 맞은 거지요. 어쩌면 그때 ‘행복의 첫 단추’가 끼워졌는지 모른다.

국과수 면접관은 ‘3년만 버텨 달라’고 주문했으나 나의 꿈은 과학의 힘을 빌려 진실을 캐내는 것이었다. 초대 국과수원장이었을 때 슬로건도 ‘진실을 밝히는 과학의 힘’이었다. 물론 그 꿈은 첫 출근부터 허물어졌다. 실험기구 닦고 커피 타는 일이 주 업무였다. 후배들이 와도 커피 타는 일은 ‘미스 정’ 몫이었다.

과장실 문을 두드려 자신의 길을 열기 시작했다. 굉장한 일을 하고 싶은데 할 만한 일이 없다 말씀드렸더니 ‘너 이 일 한번 해볼래?’ 하시는 거예요. 진짜 꿀과 가짜 꿀을 구분하는 실험이었죠. 1년 동안 밤에도, 주말에도 매달려 방법을 찾아냈어요.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찾아내니 폭발적인 열정과 에너지가 생겨난 거죠. 이후 가짜참기름 구별법을 찾느라 3~4년이 걸렸어요. 내 힘으로 뭔가를 해결한다는 게 너무 좋았어요. 내가 원해서, 내가 좋아서 한 일이니 삶의 희열이죠.


누구나 살면서 문제를 만난다. 골치 아픈 문제가 생기지 않길 바라고 피하려 한다. 문제가 생길 여지만 보여도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하고 문제가 생기면 일상도 삶도 힘겨워진다. 하지만 정박사는 ‘문제’의 생성과 소멸과정을 즐긴다. 모든 문제는 원인이 있고, 원인을 찾아야 문제가 풀린다. 원인을 찾아가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고 문제를 풀기위해 궁리하는 과정이 자신을 성장시킨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를 즐긴다.

‘Work+Love=Happiness’ 일에 대한 사랑, 이게 기초인거죠. 이게 없으면 애를 쓰고 노력하는 자체가 고통스러운 일이 될 뿐이에요. 이게 있으면 달라져요. 좋아서 할 수 있어요. 좋으면 나중에 장인이 되고 전문가가 될 수 있어요. 자기 일을 사랑할 때 나도 나를 인정하고, 남도 나를 인정하더군요. 제겐 그게 행복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613. 행복의 기원(3) (서은국著, 21세기북스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