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2) (김정운著, 21세기북스刊)
그림공부 하겠다고 일본으로 건너와 원룸 아파트에서 자취를 했다.
오늘도 부엌 한구석에 주저앉아 울었다. 외로워서가 아니라 열어놓은 싱크대 모서리에 머리를 박았기 때문이다.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 환장하게 아프다. 주저앉아 울면서 고독사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심각하게 잠시 했다. 일본에서의 고독은 아주 자연스럽다. 혼자 밥해먹고 혼자 돌아다녀도 불편하지 않다. 일본은 일찌감치 고령화 진입하여 ‘고독순응사회’를 모두 다 받아들인다. 서구의 대부분의 나라도 그렇다. 한국은 고령화 속도 또한 세계수준이나 아직 ‘고독’은 낯선 단어이다. 우리 문화에서 ‘고독’은 실패한 인생의 특징일 뿐이다. 경조사에 죽어라하고 쫒아 다니는 것도 내 경조사에 외로워 보이면 절대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토록 바쁜 이유는 고독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고독저항사회’인 까닭이다.
50년대 한국 남자의 평균수명은 51.1세, 여자는 53.7세였는데 수십 년 사이에 배로 늘었다. 그 어떤 자연변화나 사회변혁도 수명의 연장과는 비교할 수 없다. 수명 50세를 기준으로 한 윤리 도덕기준도 바꿔야 하고 부부, 가족관계도 해단된다. 수차례 결혼, 이혼도 특별할 게 없는 일이 됐다. 지금의 남편과 50년을 더 살라고 하면 아내들은 고독사를 택할지 모른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살게 된 각 개인은 그에 상응하는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데 그것이 ‘고독’이다.
사실 고독은 인류역사와 함께 등장한 현상이나 수백 년에 걸친 서구의 근대화를 불과 수십 년에 해치운 압축성장 과정에서 우리는 고독할 틈도 없었다. 고독은 사치였으나 100세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고독은 존재의 근거가 된다. 하지만 ‘고독 저항사회’에서의 고독은 호환 마마보다 무섭다. 고독에 대처하는 방법을 모르는데 연금만 보장되면 해결되는 줄 안다. 누구나 고독에 몸부림치면서도 그것이 자기 운명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수용소나 정신병원의 삶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도대체 숨을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수용소의 삶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 대부분은 죽어나간다. 한국 남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적 역할을 떨어내고 차분히 생각할 수 있는 배후공간이다. 권력관계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되는 삶만 진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속도로위의 자동차는 그저 앞으로만 달린다. 돌아설 수가 없고 멈춰서도 안 된다. 누가 추월하면 분노하고 끼어들려고 깜박이 신호를 보내면 오히려 속도를 높인다. 못된 게 아니라 숨을 곳이 없는 한국 남자들의 ‘찌질한’ 반항이다.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정말 가당치도 않은 만용으로 정년보장 교수직을 때려치우고 일본에 왔다. 그러나 이내 후회하며 두려움으로 다섯 평 남짓한 방바닥을 구르며 또 굴렀다. 내 두려움을 위로한다며 시인 김갑수와 사진작가 윤광준이 가끔 찾아와 교토 북쪽의 계곡으로 뱃놀이를 갔다. 강물은 아주 느리게 흘렀고 천천히 내려오는 배위에서 ‘20년 전 시집 한권 낸 게 전부인 시인’과 ‘사진 찍어 돈 버는 일이 거의 없는 사진작가’와 ‘여자심리에 대해 도무지 아는 게 없는 심리학자’에게서 아주 큰 변화를 찾아냈다. 말투도 느려지고 걸음걸이도 느려졌다는 것이다.
바로 그거였다. 지난 몇 년간 내 삶이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던 것은 너무 빨랐기 때문이다.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내 삶의 속도가 나를 슬프고 우울하게 했다는 이야기다. 난 언제나 빨리 말해야 했고, 남이 천천히 생각하거나 느리게 말하면 짜증내고 중간에 말을 끊었다. 조교나 학생들의 느린 일처리에 불같이 화를 냈다. 수업이나 각종 모임, 약속시간에는 수시로 지각했으며, 바쁘다고 항사 먼저 나왔다. 그러나 아무도 날 찾지 않는 교토의 한 귀퉁이에서 내 삶은 비로소 정상속도를 찾은 것이다.
청소, 설거지, 빨래, 장보기와 같은 ‘기초 생활시간’이 너무 길다. 책 읽고 글 쓰는 시간은 채 몇 시간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책을 빨리 읽어야할 이유는 없다. 느리게 걷고, 천천히 말하며 기분 좋은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그래야 행복한 거다. 행복은 추상적 사유를 통한 자기 설득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인 감각적 경험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의 내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행복은 아주 느린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