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4. 에디톨로지, 창조는 편집이다(1)

에디톨로지, 창조는 편집이다(1) (김정운著, 21세기북스刊)

by 물가에 앉는 마음



김정운 교수를 좋아한다. 어려운 심리학을 문어체가 아닌 구어체로 풀어써 독자들이 읽기 좋게 글을 쓰며 심리학박사이면서도 박사 냄새가 덜 나는 서민적인 필체가 마음에 들고 나와 비슷하게 엉뚱한 사고를 갖고 있는 것 같아서 좋아한다. (김정운교수는 얼마 전 교수직을 그만두고 그림을 배우고 있으며, 여러 가지 문제 연구소 소장직은 유지하고 있다.)


보기는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

개인 일정이나 데이터가 들어있는 PDA와 휴대폰을 들고 다니는 것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닌데 아이폰은 한 대에 기능을 축약했기에 나는 아이폰이 출시되길 고대했다. 삼성전자 임원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에서 ‘아이폰이 들어오면 삼성 휴대폰은 한방에 훅 간다.’엄포를 놓았더니 한 임원이 ‘아이폰을 다 분해하고 조사했더니 겁낼 것이 없더라. 삼성과 기술적으로 상대가 되지 않는다.’ 전문용어를 늘어놓으며 설명하는 그에게 나는 바로 꼬리를 내렸지만 몇 난후 아이 폰이 한국에 상륙하자 삼성은 한방에 훅 갔다. 삼성은 아직도 2% 부족하지만 노키아와 모토로라에 비교하면 훌륭히 방어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선택적으로 보기에 보기는 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이 많다. ‘받아들인 정보를 서로 연계하여 지식으로 발전시키는 것’ 내가 설명하려는 에디톨로지의 주요 내용이다.


에디톨로지는 編輯學(편집학)이다.

세상 모든 것들은 끊임없이 구성되고, 해체되고, 재구성된다. 이 모든 과정을 나는 한마디로 ‘편집’이라고 정의한다. 신문이나 잡지의 편집자가 원고를 모아 지면에 맞게 재구성하는 것, 혹은 영화 편집자가 거친 촬영 자료를 모아 속도나 장면의 길이를 편집하여 관객들에게 전혀 다른 경험을 가능케 하는 것처럼 우리는 세상의 모든 사건과 의미를 각자의 방식대로 편집한다. 이 같은 ‘편집의 방법론’을 통틀어 나는 ‘에디톨로지’라고 명명한다.

비슷한 개념은 많다. 통섭, 융합, 크로스오버, 최근엔 콜라보레이션까지 에디톨로지와 유사한 개념이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는 간단하다. 세상을 이해하려는 방법이 너무 세분화되어 서로 전혀 소통이 안 되기 때문이다. 세상을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 최소 단위로 나누고 각 부분을 준석하면 전체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근대의 해석학은 그 한계를 드러낸 지 이미 오래다. 통섭, 융합을 부르짖는 이유는 낡은 해석학으로는 더 이상 새로운 세상을 꿈 꿀 수 없기 때문이다. 왜 통섭이나 융합이 아니고 에디톨로지인가? 통섭이나 융합은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그럴듯해 보이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 자연과학자와 인문학자가 그저 마주보며 폼 잡고 앉아 있다고 통섭이나 융합이 되는 게 아니다. 내가 이야기하고픈 에디톨로지는 인간이 구체적이며 주체적인 편집행위에 관한 설명이다.


창조는 편집이다.

이제 세상은 바뀌었다. 아침형인간이 성공하는 산업사회는 오래전에 끝났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 다는 이야기는 식상한 전설이며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일찍 일어난 벌레는 뭔가. 일찍 잡혀 먹히기밖에 더하겠냐는 거다. ‘열심히 하자.’는 이야기도 충분히 했다. 이제는 좀 더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한다. 창조적 행위는 유희이자 놀이다. 이같이 즐거운 창조의 구체적 방법론이 ‘에디톨로지’다. 세상의 모든 창조는 이미 존재하는 것들의 또 다른 편집이다. 해 아래 새로운 것들은 없다. ‘창조는 편집이다.’


실생활에서

사실 인문학을 현업과 실생활에 접목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자기 계발 서적들은 ‘하루 1시간 책보기’와 같은 구체적 지침들을 이야기하고 있으나 인문학은 구체적이지 않고 모호한 부분이 있다. 김정운 교수가 이야기 하는 ‘창조는 편집이다.’라는 것을 이해하고 실생활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조금 고민해 봐야 한다.


기술기획업무를 담당할 때 R&D업무에 ‘中間進入戰略(중간진입전략:Mid-Entry Strategy)’이란 개념을 도입했다. 전 세계적으로 연구를 담당하는 사람들의 고민거리는 연구결과를 사업화하는 것이나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개발하려다 보니 사업화 성공률이 낮아진다. 우리 회사도 연구소를 설립하여 초기에는 ‘무엇을 연구할까?’를 연구했다. 10년 정도 시간이 흐르니 본인의 역량에 맞게 연구하는 문제와 처음부터 끝까지 본인이 연구하려는 문제로 인해 현장적용이 어렵고 사업화 되지 않는 연구결과물들이 쏟아졌다. 물론 초창기에 겪어야 하는 시행착오이기도 하지만 ‘기업부설 연구소의 최종목표는 무엇일까?’라는 당연한 질문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질문했다면 시행착오기간을 단축시켰을 가능성이 많았다.

중간진입전략이란 김정운 교수가 이야기하는 ‘에디톨로지’와 맥을 같이 한다. 시중에서 구매할 수 있는 드론과 열화상 카메라를 조합(에디트)하면 밀림으로 도주한 범죄자나 실종자를 손쉽게 찾아내는 발명품이 되며, 설비의 과열개소를 진단하는 기능도 수행할 수 있다. 기존에 발명된 제품이나 기술들을 조합하여 새로운 기술을 창조하는 것이 에디톨로지이며 중간진입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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