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옳지만 상대방 말을 경청해주고 옳다는 인식을 해준다면
광화문 앞의 촛불과 대한문 앞의 태극기는 탄핵과 탄핵저지라는 의견만큼이나 극명하게 대비되는 풍경이다. 진보는 국민을 우롱한 보수를 규탄하고 보수는 모함과 여론몰이로 탄핵정국을 조성했다며 진보를 규탄한다. 국민들이 촛불과 태극기로 정치의 장을 만들어줬으면 국민들은 퇴장하고 여야정치인들이 머리를 맞대어 정치적 합의하의 탈출구를 만들어야 하나 아직도 광장의 주인공은 국민들이고 정치인들은 무임승차를 하고 있는 셈이다. 하긴, 예전부터 보수는 기득권을 지키려 하고, 진보는 세상을 바꾸겠다지만 현실적 대안이 부족했다. 냉정하게 따지면 정치력의 실종사태이며 정치인들은 광장의 국민들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진보와 보수의 도그마에 갇혀 합의안을 만들어 내야하는 중도가 설자리는 없어 보이며 보수와 진보는 사느냐 죽느냐 사활을 건 치킨게임을 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맞다, 틀리다’라는 ‘O, X’문제나 사지선다형 문제를 풀어와서 그런지 몰라도 좋은 표현으로는 확실하게 흑백을 가리는 것을 좋아하고 나쁘게 이야기하면 극단주의적이며 말을 많이 해야 하는 토론도 싫어한다. 또한, 네 말도 맞고 또한 네 말도 맞는다는 황희정승식의 사고방식은 우유부단함으로 비춰지고 네 말도 틀리고 네 말에는 이런 모순이 있다는 양비론이 득세하는 사회가 되었다. 토론해도 도대체 나와 다른 것을 이해하거나 인정하지 않고 누르려는 공격적 성향이 강하다. 신사중의 신사여야 하는 의원들도 국회 내에서의 모두발언은 존경하는 ooo의원님으로 시작되나 그것은 정치적 수사일 뿐이고 때로는 멱살잡이에 뒷골목에서나 들어봄직한 언어가 난무한다.
이러한 사회현상을 두고 전문가들은 인문학이 완벽히 배제된 보통교육, 즉 우민화 교육인 일제 식민교육의 폐해라고 이야기 한다. 1945년 9월12일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가 우리나라를 떠나며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이 승리한 것은 아니다. 장담컨대 조선이 제 정신을 차리고 위대하고 찬란했던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앞으로 100년도 넘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총,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놓았다.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보라! 조선은 찬란하고 위대했지만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 처단 대상이었던 조선 총독 아베 노부유키 친손자가 현재 일본 수상인 아베 신조이다. 3대에 걸쳐 역사를 부정하고 대한민국을 하대하는 ‘아베’집안 내력으로 인해 의식 저변에는 혐한사상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저주에 가득 찬 아베 노부유키 예언이 들어맞았는지 한민족 특성인 은근과 끈기는 간데없고 화끈하고 조급함으로 대체되었다. 살림이 넉넉하지 않아도 품격 있게 살았던 선비들의 고급스러운 삶은 사라졌으며, 배금주의에 물들어 名利(명리)만 쫒는 저급함만 남았다. 심하게 표현하면 한쪽이 죽어야 싸움이 끝나는 鬪鷄(투계)장에서 손에 판돈을 쥐고 흥분해서 소리 지르는 관중들, 대한민국의 모습과 흡사한 것 같다. 지고 이기고의 차원이 아닌 문제들도 어떻게든 결판나야 직성이 풀리는 저열하고도 냉혹한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국가뿐 아니라 기업도 마찬가지다. 과거보다 인식이 좋아졌기는 하나 노사는 항상 대립의 상징이었고, 타도 대상이었다. 국민 불편을 아랑곳하지 않고 지하철, 철도...공공부문까지 실제로 파업에 돌입하는 것을 보면 노사상생을 입으로 이야기하고 있으나 노와 사의 생각은 다르고 각자의 주판을 갖고 각자의 셈법으로 계산하고 있으며 일방이 져야 직성이 풀리는 상황이다. 노와 사를 떠나 같은 회사에서 한솥밥을 먹는 동료들끼리 3대조 전부터 철천지원수가 졌는지 타도대상이 된 것이다. (나는 적어도 우리 회사와 좁게는 GT센터 상황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지고 이기고, 살고 죽고 하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탈출해야 하고 현상을 보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 이기고 지는 게임으로 생각하고 달려들면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이기고 죽여야 하는 스타크래프트, 답이 명확해야 하는 수학과 과학문제가 아니라 나와 네가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답이 아니더라도 또는 미흡함이 있더라도 더불어 살 수 있는 답안이 정답이다. 역사 발전은 正, 反, 合에 의한다고 했지만 正과 反까지는 있으되 合을 이루지 못하고 있으니 최근 대한민국의 역사발전은 정체된 것이나 다름없다.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큰 어른 황희정승은 다투는 두 사람 모두 옳다 하셨다.
머슴둘이 싸우다가 황희정승에게 억울함을 토로 했다.
‘이 사람이 이러이러 했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 아닙니까?’
황희정승이 차분하게 듣고서는
‘그래, 네 말이 옳구나.’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상대방 머슴이 황당해 하며
‘대감님, 사실은 이러이러 했는데 어찌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사실이 이러이러 하니 제가 아니라 저 사람이 잘못한 것 아닙니까?’
라고 하자 황희정승이 차분하게 듣고서는
‘그래, 듣고 보니 네 말이 맞구나’라고 말씀하셨다.
둘 다 옳다고 말씀하시자 옆에 있던 다른 머슴이 당혹해 하며
‘대감, 어찌 이 사람도 옳고, 저 사람도 옳다고 하십니까?’
라고 하자 정승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허허허, 자네 말도 옳구나.’
나도 옳지만 상대방 말을 경청해주고 옳다는 인식을 해준다면 제 3의 정답을 만들 수 있을 텐데 자기주장과 생각만이 옳다고 생각하면 나는 이겨야 하고 상대방은 져야 한다. 여야가, 촛불과 태극기가 물러설 줄 모르는 鬪鷄처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이즈음에 관대하고, 침착하고, 신중하며, 식견 있는 후덕한 어른이 나타나 대한민국을 조율 한번 해주셨으면 한다, ‘이 사람들아, 촛불과 태극기는 지고 이기고의 문제가 아니라 타협과 상생과 인정의 문제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