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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7. X파리 떼

돈이 되는 곳에 사람들이 모인다.

by 물가에 앉는 마음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창조하실 때 필요 없는 것은 만드시지 않았을 것이다. 필요에 의해 만드신 동물의 세계에는 먹이사슬 질서가 있으나 천재지변이나 인위적인 방법으로 먹이 사슬이 끊어지게 된다면 생태계에 혼란이 생긴다. 상위포식자와 하위포식자간 균형이 맞아야 생태계 질서가 유지되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 오히려 인간에게 해가 되어 돌아온다. 제주도에서 인위적으로 입식한 노루는 상위포식자가 없으니 무한정 번식하여 농부들을 괴롭히고 있으며,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통제되지 않은 일본 멧돼지들이 무한정 늘고 있어 골칫거리가 되었다는 뉴스도 있었다. 먹이 사슬중 하위권인 파리는 성가시기만한 존재이지만 동물들의 사체를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다.


돈이 되는 곳에 사람들이 모인다. 그중 건설 분야에는 편법을 동원하여 한몫 챙기려는 부류도 있는데 사업부서 전문용어로는 이런 부류를 통칭하여 ‘X파리 떼’라고 지칭한다. 물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은 아닐 텐데 돈 될 만한 꺼리가 있다면 달라붙는 X파리 떼는 정말로 백해무익하니 자연생태계 X파리 떼보다도 못한 존재이다. (전문용어에 익숙지 않아 돈 냄새만 나면 달려드는 폼이 ‘하이에나’같다고 했더니 직원들이 ‘하이에나’는 고상한 표현이고 ‘X파리 떼’라고 정정해 줬다.) 겪어보고 생각해보니 어느 누가 작명을 했는지 ‘X파리 떼’가 가장 적절할 듯하다. 쫒아도 성가시게 달라붙는 X파리의 끈질김... 전문용어로 사용될 만하다.


겪어본 ‘X파리 떼’의 여러 특징 중 첫 번째는 예의 없는 것이다. 어떻게 전화번호를 알았는지 전화해서 무작정 찾아오겠다고 한다. 전화로 이야기 하자고 해도 허락 없이 찾아오는 예의는 어느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인지 모르겠다.

두 번째 특징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상대방이 곤란해져도 상관없다는 식이니 무대뽀로 용감하다.

세 번째는 생물학적으로 분류를 한다면 사오정目에 사오정科. ‘우리 회사는 공기업이기에 특정 업체로 하도급을 줄 수 있는 방안이 없다.’ 해도 귀가 들리지 않는 사오정이라 막무가내이다.

네 번째 특징은 하나같이 고위층과의 인연을 과시한다. 어떤 업자들은 고위층과 친분관계를 앞세워 압력을 가해온다. 임원사무실을 방문하고 왔다는 X파리는 특히 주의해야 한다. 전직 장관과의 친분을 내세우는 X파리도 있다. 나는 대통령과 친분이 있으니 솔직히 이야기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공기업 직원이니 당연히 X파리보다 대통령과 가까운 대단한 친분이 있는데 이를 X파리에게 말해야 하는지 고민된다.

마지막 특징은 매우 끈질기고 속담을 신봉한다는 것이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했는데 X파리들은 넘어갈 때까지 찍어대는 존경스러운 끈질김이 있다. 이정도면 다른 사업을 해도 성공할 것 같은데 왜 파리를 직업으로 선택했는지 의문이다.


X파리 떼를 쫒아내는 우리 직원들 실력도 나날이 향상되어 보통이상은 된다. X파리를 만날 때는 ‘F Killer’가 아닌 스마트폰 녹음기능을 이용하여 대화를 녹음한다. 훗날 생떼 쓸 때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다. 상황에 대해 일기 식으로 만난 상황을 묘사해 놓는다. 이것도 훗날 소송 등에 대비하기 위한 전략이다.

아쉽게도 한솥밥을 먹다가 퇴사한 이들 중에도 X파리가 존재한다. 어느 X파리는 회사 간부 중 자기가 보낸 굴비를 먹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공언하고 다닌다. 나는 그 X파리에게 굴비를 받지 못했으니 다음에 만나면 따져봐야 한다. ‘당신 말에 의하면 나는 굴비도 얻어먹지 못한 팔불출인데 지금이라도 굴비를 사서 보내던가 아니면 나 빼고는 모두 굴비를 얻어먹었다고 떠들고 다녀라.’ 이런 부류를 통칭해서 아는 놈이 더 무섭다고 한다.


예전 재수할 때 경복 고등학교를 졸업한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이다. 학교식당에서 숟가락하나만 들고 친구들 점심도시락을 빼앗아 먹는 속칭 ‘빈대’들이 성가셔서 식당 건의함에 ‘식당에 빈대가 많습니다.’라는 건의서를 넣었더니 다음날 학교에서 식당방역작업을 하느라 연기가 자욱했다고 한다. 나도 ‘X파리 떼가 많아 매우 성가십니다.’라고 하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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