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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8. 영화 ‘阿修羅(아수라)’

이렇게 될 줄 알았어요. 알면서도 어쩔 수가 없네요

by 물가에 앉는 마음

외화와 한국영화 구분 없이 영화를 자주 보는 편이며 아침형 인간이다보니 집사람과 주로 조조할인으로 오붓하게 데이트를 즐긴다. 최근 화제작과 관객동원 순위를 보면 한국영화가 상위권을 차지한다. 감성적으로 유리한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돈이 많이 소요되는 특수효과부분만 제외하면 한국영화 완성도는 이미 외화와 대등한 수준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지난 9월 개봉하자마자 관람한 ‘아수라’는 너무 잔혹하다는 혹평도 있지만 秀作(수작)이며 2016.10.09현재 이백오십만 관객을 동원했다.


민선시장인 황정민이 분당 신도시개발에 버금가는 도시개발을 계획한다. 황정민은 본인 선거에 도움을 준 건설업자와 유착되어 있으며, 시장의 여동생 남편인 정우성은 경찰이지만 부인 병원비를 황정민에게 지원 받는 입장이다 보니 황정민을 돕게 된다. 악의 축으로 등장하는 황정민과 이러저러하게 얽힌 공무원, 검찰, 경찰, 조폭 등은 본업(?)에 충실하려 하지만 악의 구렁텅이에 서서히 빠져들게 되며,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결국에는 관련자들 서로가 죽고 죽이는 관계가 되어 모두 죽는다. ‘아수라’라는 지옥에서 본인이 살기 위해 남을 죽여야 하는 나쁜 놈들의 나쁜 이야기이다.


황정민은 돈과 정치적 입지확보를 위해 악인이 되었고, 건설업자는 부정한 축재를 위해 황정민을 돕지만 신도시개발 진척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황정민 비리를 협박하다 오히려 죽임을 당한다. 경찰인 정우성은 불치 암에 걸린 부인 병원비 조달을 위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지만 황정민을 돕게 되었고, 범인체포와 관련된 격투과정에서 실수로 동료형사가 죽게 되는데 이를 알고 있는 검찰은 황정민을 잡기 위해 정우성을 첩자로 이용한다. 정우성을 형님처럼 따르는 후배 경찰은 정우성의 꼬임으로 황정민을 돕게 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정우성 자리를 차지하는 악인으로 변해가며 정우성과 싸움과정에서 죽는다.

황정민을 수사하는 검찰은 세칭 족보 없는 지방대 출신 검사로 본인의 출세를 위해 정우성을 이용하지만 목숨을 잃을 처지에 이르자 황정민에게 충성을 다짐하나 결국 죽임을 당한다. 모두가 서서히 악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지만 헤어 나오지 못한다. 이들의 심정은 정우성의 마지막 대사 ‘이렇게 될 줄 알았어요. 알면서도 어쩔 수가 없네요.’로 표현할 수 있다.


영화처럼 피비린내 나는 상황은 아니지만 회사에서 있었던 비슷한 상황이 떠올랐다.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에는 직원들 회식비용 등 조직 운영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나 예산이 충분치도 않고 현금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현재는 제도가 보완되어 꿈도 못 꿀 사항이지만 허술한 시절에는 출장 간 것처럼 서류를 꾸몄다. 출장비를 현금화하여 조직 운영 경비로 사용했던 경우가 많았다.

사업소장이 새로 부임하여 현장 팀장들에게 고생하는 팀원들 저녁 사줄 돈을 출장비로 만들어 사용하라고 했다. 나는 소장과 같이 직원 생활을 했었기에 소장의 비열함을 알고 있어 거절 했지만 경비를 사용한 팀장들은 이후 몇 년간 시달렸다. 본인이 부정한 짓을 했기에 소장이 돈을 만들라는 지시에 불복할 수 없었다. 잘못된 일인 줄 알면서도 할 수 없이 코가 꿰어 끌려가는 팀장들이 하고 싶었던 말은 정우성의 마지막 대사와 같았을 것이다. ‘이렇게 될 줄 알았어요. 알면서도 어쩔 수가 없네요.’


해석이 모호한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속칭 김영란법) 시행으로 시범케이스에 걸리지 않기 위해 야근한 직원들과의 저녁식사까지도 주저하는 상황은 조금 더 지속될 것 같다. 정작 법을 만든 국회의원이나 해석과 집행을 담당하는 국민권익위원회조차도 위법과 준법의 기준과 경계에 대해 명확한 판정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이 또한 ‘阿修羅場(아수라장)’이다.

학생이 교수에게 드린 캔 커피가 고발 1호로 기록되었고, 운동회 때 선생님에게 드리는 김밥, 스승의 날 선생님 가슴에 달아드리는 카네이션(생화는 안 되고 조화는 된단다.)도 김영란법에 저촉되는 세상이 되었다. 법 시행이후 모호한 기준들로 인해 혁신도시 공공기관들마다 ‘회식금지령’이 내렸다. 상사가 계산하는 회식자리는 참석해도 무방하다는 유권해석이 있지만 법 시행이 정립되기 전까지는 ‘더치페이’가 최상의 방법인 것 같다.

김영란법을 만든 여의도사람들은 어떻게 밥값을 계산하는지 궁금하다. 잘 하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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