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톨로지, 창조는 편집이다(3) (김정운著, 21세기북스刊)
김정운교수 책을 두 편에 나눠 소개시켜 드리려 했으나 내 생각과 일치하는 대목을 발견해서 3편으로 소개한다. 등산과 인문학공부에서 공통적으로 필요한 것이 체력, 끈기, 목표의식이라 하지만 하기 싫은 공부는 에베레스트등반 만큼이나 어렵다. 이때는 보던 책을 덮고 눈길 가는 책을 읽으면 된다. 항시 책상위에 10여권의 책들이 놓여 있는데 이런 목적으로 쌓아 놓은 것이다. 장자를 읽다가 지루해지면 김정운교수도 읽고, 그것도 지루하면 한동안 쉬다가 한비자를 읽으면 되고 그도 지겨우면 책장 안에 넣으면 된다.
책은 끝까지 읽는 것이 아니다.
독일 유학시절 나는 자료복사와 제본을 잘했다. 하지만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제본기술은 쓸모없게 되어버렸다. 책을 읽으며 기록해둔 수천 장의 카드도 쓸모없게 되어버렸다. 절망한 나는 모두 태워버렸다. 다른 학생들은 컴퓨터를 워드프로세서로 사용했으나 나는 데이터관리프로그램부터 익혔다. 내가 에디톨로지: 창조는 편집이라는 이 책을 쓸 생각을 하게 된 것도 독일 유학에서의 이런 경험 때문이다. ‘공부는 데이터베이스 관리다.’ 나는 독일에서 심리학의 구체적 내용을 공부하지 않았다. ‘공부하는 방법’을 익혔다. 나는 연구소에 있는 자료들을 컴퓨터 데이터베이스에 정리해 넣었다. 나름대로 분류체계를 만들어 연구원들이 자료만 넣으면 되도록 절차도 간소화 했다. 지도교수도 내 데이터 관리방식에 감동하여 수업을 하다가도 나에게 자료를 뽑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박사과정에 들어간 후 지도교수의 연구소에 취직하길 바랐으나 교수는 어떤 제안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날 교수는 내게 정식연구원을 제안했다. 나는 못이기는 체하며 연구원에 취직을 했다. 데이터관리는 권력이었다.
책은 끝까지 읽을 필요가 없다. 긴 종이로 이루어진 두루마리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하나 오늘날의 책은 더 이상 두루마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책은 내가 원하는 내용을 빨리 찾아 골라 읽기만 하면 된다. 데이터가 많지 않을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느긋하게 읽어도 상관이 없지만 데이터가 많으면 한가하게 읽을 수 없는 노릇이다. 발췌하여 내가 읽고 싶은 것만 읽어야 하는데 문제는 내가 읽고 싶은 것이 뭐냐는 거다. 내 질문이 없으니,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는 것이다. 언젠가 네이버캐스트의 ‘지식인의 서재’라는 인터뷰에 ‘책을 끝까지 읽는 것은 바보짓이다.’라는 말을 했는데 올라온 악플이 엄청났다.
하지만 엄청난 양의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아무리 속독을 잘한다 해도 그것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 그래서 책 앞부분에 목차가 있고 맨 끝에는 찾아보기가 있는 것이다.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찾아 읽으라는 뜻이다.
모든 책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야 한다면 뭣 때문에 책의 편집자가 그토록 친절한 목차를 만들까? 찾아보기란 이름으로 그렇게 자세한 키워드를 만들고 해당페이지를 일일이 넣은 이유는 또 뭘까? 저자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데 급급한 사람은 저자의 수준을 뛰어넘을 수 없고 창조적인 ‘내 생각’을 절대 만들지 못한다.
내 서재에는 숱한 책들이 있다. 한국어 ,영어, 독일어, 일본어로 된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뒤섞여 책꽂이에서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독일 책이나 영어책은 한국 책이나 일본책에 비해 색깔이 훨씬 화려하여 폼도 난다. 내 서재를 방문한 사람들은 매번 묻는다. ‘이 책 다 읽으셨어요?’ 참으로 난감한 질문이다. 솔직히 끝까지 읽은 책은 10%도 되지 않는다. 대부분은 필요한 부분만 읽고 꽂아 두었다. 그러나 그렇게 읽은 책들은 내 사고의 한 부분을 이미 차지하고 있고 내 데이터베이스에도 개념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그저 목차만 읽은 책들도 많다.
에필로그(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아주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사실은 일본에서 만화를 공부하려 했다. 노인을 위한 ‘노인용 변태만화’를 그리려 했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성욕을 느끼기에 고령화 사회의 진정한 블루오션이라 할 수 있는 정말 기막힌 아이디어다. 교토 외곽의 아담한 예술학교에 입학했는데 지도교수가 만화를 하기에는 재능이 아까우니 일본화를 하라고 권했다. 하지만 언어장벽과 일본화를 그리는 작업이 힘이 들어 눈물도 났다.
나에게 다들 ‘중년의 로망’을 산다고 한다. 사실이다. 하고 싶었던 공부를 뒤늦게 마음껏 할 수 있는 행운아들은 세상에 별로 없으니 무조건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러나 오십 넘어 홀로 유학생활을 하는 것은 그리 간단치 않다. 혼자 청소하고 혼자 밥 먹고 혼자 그리고 혼자 음악을 듣는다.
그러나 누구나 한 번쯤은 아주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지금 하나도 외롭지 않으면서 풍요로운 미래를 꿈꾸는 것은 처음 만난 여자가 예쁘다고 그녀의 주스 잔에 수면제 타는 것과 마찬가지로 몹시 나쁜 생각이다. 뭔가 새로운 것을 손에 쥐려면 지금 쥐고 있는 것을 놓아야 한다. 지금 손에 있는 것 꽉 쥔 채 새로운 것까지 손에 쥐려니, 맘이 항상 그렇게 불안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