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러와 프로이트의 대결(와다 히데키著, 에쎄刊)
심리학은 크게 ‘건강한 마음’을 취급하는 실험심리학과 ‘병든 마음’을 취급하는 임상심리학으로 나눌 수 있다. 아들러와 프로이트는 모두 임상심리학분야에서 활약한 사람으로 ‘병든’사람들에게 ‘마음의 건강’을 되찾아주기 위해 심리학을 공부하고 연구한 사람들이다.
임상심리학만이 마음의 병과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 정신의학’도 마음의 건강을 다룬다. 하지만 생물학적 정신의학은 심리학이 아니다. 대상이 마음이 아니라 뇌이기에 오히려 뇌 과학에 가깝다. 생물학적 정신의학에서는 우울증이나 조현병같은 정신질환의 원인이 뇌기능의 변조에 있다고 보기에 신경전달물질의 제어 등 뇌의 화상진단이나 약물치료가 중심이 된다. 이에 반해 임상심리학은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심리치료’ 혹은 ‘정신치료’라는 치료법을 이용한다. 의사와 환자와의 소통으로 증상의 개선을 도모하는 것이다. 약물치료가 환자의 ‘뇌’에 작용한다면 심리치료는 환자의 ‘마음’에 접근하는 것이다.
‘뇌’, 심장과 같은 장기이나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을뿐더러 존재하는지 조차 분명하지 않다. 물론 마음의 움직임은 뇌에서 제어되고 뇌가 없으면 마음도 없기에 ‘마음은 뇌에 있다.’ 는 말도 전혀 틀린 것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정상적인 마음’이건 ‘병든 마음’이건 오직 뇌 과학만 열심히 연구하면 이해가능할 거라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애매모호한 심리학은 필요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분명 마음과 뇌는 밀접한 관계가 있기는 하나 뇌를 해부한다 해도 마음을 가시적인 형태로 나타낼 수는 없다.
컴퓨터와 같이 뇌에도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장기로서의 뇌세포와 신경전달물질이 하드웨어라고 하면 마음은 소프트웨어다. 다라서 하드웨어를 수리하는 기술만으로 소프트웨어의 버그를 해결할 수는 없다.
신경내과 의사였던 지그문트 프로이드는 최면을 통해 정신병을 치료했으나 커다란 성과를 올리지는 못했다 하지만 ‘무의식’의 발견을 비롯해 20세기 심리학과 정신의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철학과 문학 등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쳤다고 하는 것이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그의 정신분석이 신경증치료에 크게 도움이 되었으나 현대인의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데 에는 큰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예전의 정신치료는 마음에 병이 생기면 ‘원인’을 찾는데 중점을 두었다 하지만 원인이 ‘부모 때문에 일그러진 마음을 갖게 되었다.’고 믿어버리면 병이 치료되기는커녕 부모에 대한 원망으로 더욱 괴로워할 수도 있다.
그래서 ‘원인’보다는 ‘목적’에 주목하는 심리학이 생기게 되었다. 예컨대 묻지마 살인이 일어나면 대부분은 ‘범인의 왜곡된 마음은 무어 때문인가?’를 조사해 무엇 때문에 범인의 마음에 상처를 입었는지 파헤친다. 하지만 과거에 범인과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들 모두가 묻지마 살인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무엇을 위해 그런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되었는가?’하는 범인의 목적에 접근하는 심리치료가 주목을 받게 되었다. 가령 ‘악의 주인공이 되어 세상의 주목을 받고 싶다.’라는 범인의 목적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매스컴의 보도는 세상의 주목을 받고 싶다는 범인의 목적에 부합한다. ‘이런 사람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통렬한 비판을 해도 유사 범죄를 억제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정도의 사건을 일으키면 주목을 받는다.’는 사실을 잠재적 범죄자들에게 알려줄 뿐이다.
오늘날의 심리치료는 ‘원인’보다는 ‘목적’치료가 주류를 이룬다. 창시자는 알프레드 아들러이다. 원래 프로이드의 공동연구자였지만 그의 심리학은 프로이드와 대조된다. 현대 심리학의 원류는 아들러이며 프로이드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현대 임상심리학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인간을 동물의 한 부류로 생각한 프로이트 이론과 다르게 아들러는 사회가 인간의 정신에 미치는 영향을 중시했다. 오늘날의 심리치료사들은 마음의 질병을 ‘대인관계의 병’으로 보기 때문에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간주한 아들러의 심리학은 그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아들러도 유아기의 환경이 심적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과거에 일어난 일이므로 이제 와서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과거’가 아닌 ‘현재’와 ‘미래’에 주목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과거의 경험을 바꿀 수 없지만 현재와 미래의 행동은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행동을 하는 어린이는 부모에게 혼이 나도 그 행동을 좀처럼 멈추지 않으려 한다. 부모는 양육방식에 문제가 있거나 애정결핍이라 생각해 더욱 애정을 쏟아 붓자하는데 이것이 원인론이다. 행동을 고치지 않는 이유가 부모나 교사로부터 관심을 받기 위한 것이라면 문제행동의 목적이 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애정을 쏟기보다는 무시하는 것이 효과적인데 이것이 목적론이다. 나쁜 행동으로 주목받지 못한 아이는 좋은 행동을 해서 칭찬받으려 할지 모른다. 그런 식으로 행동이 바뀌면 마음이 변화하게 된다.
아들러 심리학이 오랜 세월 빛을 보지 못한 것은 그의 후계자들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지 못했기 때문만은 아니다.(아들러는 유태인으로 1935년 미국으로 이주했으며 상당수 제자들은 처형되었다) 아들러 심리학이 시대를 앞서갔기 때문일 수도 있다. 당시에는 ‘원인론’이 대세라 아들러의 ‘목적론’은 생소했다. 감기에 걸렸을 때 ‘감기의 목적’을 찾는 것은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가? 그러기에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정신분석도 ‘원인론’부터 시작되었다.
현대사회 정신병의 치료 개념은 크게 세 가지이다. 먼저 ‘생각의 집착’에서 벋어나는 것이다. 아이의 문제행동이 부모의 양육방법에 기인한 것이라는 자기만의 생각에 집착하여 사안을 판단하는 것은 마음에 병이 있건 없건 모두에게 좋지 않다. 두 번째는 원만한 대인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인간의 고민은 전부 대인관계의 고민’이라는 아들러의 말처럼 건강한 마음을 유지하는데 이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 공동체 감각이 발달한 사람은 자신의 이익뿐 아니라 공동체의 보다 큰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 세 번째는 ‘감정제어’이다. 우울증, 인격장애, 공황장애등은 감정을 제어하지 못해 본인이 괴롭거나 주위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병이다. 조금만 아파도 암에 걸렸을지 모른다 생각하고, 돈이 많은데도 회사를 그만두면 금방 파산하여 가난해 질것이라고 믿는 현실과 동떨어진 생각에 잡혀버리는 것도 우울증의 증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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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에서 이야기하는 처방과 고전이 맞아 들어가는 부분이 많다.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데 행복이 보이지 않는 절망상태가 되면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다. ‘자살’, OECD국가 중 12년째 1위를 달리고 있고 평균치의 두 배, 하루 37명이 자살한다. 40대의 사망률이 가장 높지만 이를 방치할 경우 우리의 아이들이 답습할 수도 있다. 본 책에서 생각과 집착에서 벋어나야 한다는 것은 넓게 보라는 이야기이며, 원만한 대인관계를 만들어가라는 것은 배려와 역지사지를 하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감정제어가 필요하다는 것은 마음을 굳고 크게 먹으라는 것이니 심리학을 전공한 정신과 의사가 이야기하는 것은 고전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