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2. 카르페 디엠과 메멘토 모리

메멘토 모리와 카르페 디엠이 결합되어 있다고 생각한

by 물가에 앉는 마음

‘카르페 디엠’의 뜻은 ‘현재를 즐겨라.’ 또는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뜻이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명대사였다. 명문 고등학교에 새로 부임한 존 키딩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자신만의 길을 가라고 조언해 준다. 명문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공부만을 반복해야 했던 학생들에게는 충격이었다. 존 키딩은 학교선배였으므로 명문대 입학과 좋은 직업이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을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충실해야 하며, 현재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가는 삶이 가장 행복한 삶이라는 말이다. 명문 대학 입학을 위해 획일적으로 공부하던 학생들에게는 ‘카르페 디엠’은 신세계였다. 일부 학생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택하지만 부모의 반대에 부딪쳤다. 닐이라는 학생이 자살로 생을 끝맺게 됨으로써 학교에서도 존 키딩의 수업에 잘못이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고 그는 학교를 떠나게 된다.

‘카르페 디엠’을 단순하게 ‘현재를 즐겨라.’ ‘미래가 없을지 모르니 오늘을 환락적으로 즐기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사는 네 자신과 너의 감정에 충실하라.’는 뜻이 더 어울릴 듯하다.


‘메멘토 모리’도 영화 속 한 장면을 봤지만 영화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다. 로마제국 시절,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이 마차를 타고 휘하 군사들과 함께 로마로 입성한다. 로마 시민들은 개선장군의 이름을 연호하며 왕에 버금가는 분위기를 고조시키지만 옆에 타고 있는 노예는 끊임없이 메멘토 모리(너의 죽음을 잊지 말라)라는 말을 속삭인다.

이는 개선장군에게 승리에 취해 너무 우쭐대어 경거망동 하지 말라고 하는 경고다. 환영 분위기에 취하면 왕에게 밉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이 현실적인 이유가 될 것이고, 이번 전쟁에서는 상대방을 무찌르고 개선장군이 되었으나 다음번 전쟁에서는 네가 패해 죽을 수 있으니 자만하지 말라는 메시지였다. 완벽한 신이 아니라 허술한 인간이기에 방심하지 말고 겸손해져야 한다고 일깨워줬던 것이다.


카르페 디엠과 메멘토 모리는 다른 경우, 다른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광의의 시각에서 본다면 서로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時點(시점)으로는 카르페 디엠은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 했으니 오늘을, 메멘토 모리는 네가 죽을 수 있음을 잊지 말라 했으니 내일을 이야기하고 있다. 시점에서는 다를 수 있으나 관통하는 의미는 모두 ‘오늘의 삶과 태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전쟁에 나선 장수가 전투에 충실하지 않았다면 전쟁에서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므로 내일은 없었을 것이다. 죽음에 의한 육신의 고통은 물론이거니와 역사 속에서 패장으로 기록되는 치욕도 감당해야 한다. 개선장군의 이름을 연호하는 시민들과 함께하는 벅찬 감동을 꿈꾸기 위해서는 ‘카르페 디엠’이 필요하다.

‘카르페 디엠’의 자세가 없었다면 굳이 ‘메멘토 모리’까지 염두에 둘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저 시키는 대로 他者(타자)의 삶을 살다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의미 없는 죽음을 맞으면 된다. 이런 사람들의 신조는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인생, 오늘을 흥청망청 즐겨라.’일 것이다.


‘메멘토 모리’를 염두에 두고 산다면 ‘카르페 디엠’의 자세로 삶을 대할 것 같다. 불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 같이 무모한 처신을 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충실했을 것이다. 인생은 유한하며 남아있는 시간은 많지 않기에 사소한 것에 신경 쓰지 않고 하루하루 충실하고 행복하게 살기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고통을 참아야 하겠지만 내일의 행복이라는 실체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한다. 삶은 유한한데 ‘누구를 위한 행복일까?’ ‘내가 원했던 행복일까? 아니면 등 떠밀린 행복이었을까?’ ‘내일의 행복은 10년 후의 행복인가 아니면 20년 후의 행복일까?’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존 키딩은 명문 고등학교를 졸업해 명문대를 입학했고 모교로 부임한 학교선배였기에 제자들처럼 명문대 진학을 위한 공부만을 반복했던 사람이었다. 맹목적인 공부로 좋은 대학, 좋은 직업이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을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모교의 후배들만이라도 자기만의 삶을 찾게 해주고 싶어 했던 사람이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메멘토 모리와 카르페 디엠이 결합되어 있다고 생각한 또 다른 사람이 있었다.

로마인들은 화려한 연회를 열 때마다 노예가 은쟁반에 해골을 받쳐 들고 손님들 사이를 지나다니게 했다고 한다. ‘메멘토 모리’ 즉 ‘죽음을 기억하라’같은 깊은 뜻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단지 그게 연회의 흥을 더 돋우었기 때문이다. 해골바가지를 보면 술맛이 더 났던 것이다. 로마인은 변태였나? 아니다. 지금도 전통은 할로윈으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그 날이 되면 해골과 좀비들이 거리를 행진하고 죽은 자의 가면을 쓴 사람들이 밤새 술을 마셔댄다. 할로윈의 상징, 속을 파내고 불을 밝힌 호박은 해골바가지를 연상시킨다. 죽음과 종말을 떠올리면 현재의 삶은 더 진지하고 달콤해진다. 로마인들은 이천년 전에 그것을 알고 있었다.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미래의 시점에서 현재의 파국을 상상해보는 것은 지금의 삶을 더 각별하게 만든다. 그게 바로 카르페 디엠이다. 메멘토 모리와 카르페 디엠은 그렇게 결합되어 있다.

- 보다(김영하著, 문학동네刊)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