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다.
전남 나주에서 기러기 생활을 하고 있을 때는 격주로 집에 올라갔다. 집근처 인천으로 전근왔지만 살인적인 교통체증으로 분당에서 출퇴근 하는 것을 포기하고 주말마다 집에 가니 기러기 생활을 청산한 것은 아니다. 집에 가면 정신적으로 안정 되지만 시간적으로 쫒기는 경우가 많다. 친지 결혼식에도 참석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혼자 계시는 노모께 인사도 가야하며 집에 남자가 없으니 고장 난 형광등 고치는 일은 내 몫이며 김치거리등 무거운 물건을 사야 할 때는 집사람은 내가 오길 기다려야 한다. 주말 연휴 2일 동안 나름 바쁘게 움직여야 마음이 편안하다.
봄이 왔다. 집사람과 시장보고 오는 길에 모처럼 양재동 꽃시장에 둘렀다. 카네이션과 작은 튤립모양의 시클라멘이라는 꽃모종을 구입하여 집에 있던 예쁜 화분에 심었다. 다음날 카네이션화분과 어른들이 제일 좋아하신다는 현금봉투를 어머님께 드렸더니 흡족해 하신다. 물론, 카네이션 화분이 현금 때문에 더욱 예뻐 보였을 것이다.
어머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 집에 봄기운이 부족한 듯하여 조금 규모가 큰 내곡동 꽃 도매시장을 둘러보니 비닐하우스 안의 꽃들이 어쩜 그리도 예쁜지 꽃구경에 혼이 나갈 정도다. 사고 싶은 꽃들이 너무 많았지만 욕심내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집에 와서 세어보니 시클라멘 등 꽃모종이 12포기, 아이비 2포기, 상추와 머스터드가 10포기나 된다. 작년에 심었던 꽃들이 대부분 죽어 썰렁했던 베란다에 화사한 꽃들을 옮겨 심었더니 허리는 뻐근했지만 눈이 시원하고 마음이 즐겁다. 내친김에 창문의 묵은 때까지 벗겨 내니 식물원이 따로 없는 듯하다. 그날 유독 낮잠이 달콤하게 느껴졌던 것은 오래된 숙제를 말끔하게 해치운 덕분일 것이다.
거실에 앉아서 쉬는데 집사람이 과일을 깎으며 한마디 거든다. ‘당신이 꽃 화분을 만드는 것을 보니 피는 속이지 못하는 것 같네요. 아버님과 어머님께서 꽃을 좋아하셔서 항상 화분이 넘쳐났는데 당신도 꽃 욕심이 많은 것을 보니 부모님과 똑같은 것 같네요.‘ 집사람이 시집오니 마당에 꽃이 그득한데도 손님이 오신다면 어머님께서 꽃시장에서 꽃을 사오셨단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집사람 말이 맞았다. 집사람이 시집올 때는 단독주택에 살았기에 마당에 사과나무, 은행나무 같은 유실수와 국화, 수국, 철쭉 등 꽃나무가 그득했고 등나무가 지붕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집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꽃나무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친척이나 손님이 오신다고 하면 어머니께서는 꽃을 사와 화병에 꼽고 손님을 맞이하셨다. 정원 가꾸기는 아버님 몫이었다. 가을이면 볏짚으로 옷을 입혀주고 봄에는 묵은 가지를 쳐내는 솜씨가 프로에 가까웠다. 음식물쓰레기로 거름을 만드시고 죽어가는 화초들을 분갈이 해주면 신기하게도 말라 죽을 것 같던 화초들이 생기를 되찾았다.
아파트로 이사 가셔서도 넓은 베란다에 발 디딜 틈 없이 화분이 그득했는데 어머님은 정성스레 화초 잎의 먼지를 닦아 나무가 숨 쉬게 해주셨다. 꽃나무를 좋아하셨던 아버님은 은퇴 후 아파트 화단을 당신집 마당처럼 정성스레 가꾸셨다.
예전 해외출장을 가서 코디네이터가 집으로 초대하면 무엇을 선물로 가져가면 좋을지가 가장 커다란 골칫거리였다. 그들의 생활문화를 모르니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는 것도 실례가 될 수 있으니 망설여졌다. 그렇다고 당신이 좋아하는 선물이 무엇이냐고 물어보기도 곤란하여 며칠간 전전긍긍했다. 하지만 꽃을 좋아하지 않는 민족이 있으려고... 아이들 있는 집은 초콜릿과 화분을, 부활절 즈음에서는 커다란 칠면조 한 마리와 화려한 색상의 꽃 화분을 사서 선물로 들고 갔다. 피를 속이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라온 환경을 무시 못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아버님이 돌아가시자 어머님은 좋아하시던 꽃도 보기 싫다며 화분들을 모두 치웠고 근10년 이상을 화분 없이 사셨다. 이번에 만들어 드린 작은 카네이션 화분이 어머니 모습같이 외롭게 있는데 다음에 어머님 뵈러 갈 때는 화분을 한 개 더 만들어 드려야 할 것 같다. 오늘은 화분을 만들며 화단 정리와 꽃나무 가꾸기 달인이셨던 아버님이 생각나는 날이다. 봄치고는 쌀쌀했던 초봄에 운명하신 아버님, 봉분을 다듬고 추도식을 마치려할 때 무덤가에 하얀 나비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같이 예배를 보셨던 친척 분들이 꽃을 좋아하셨던 아버님께서 나비로 환생하신 것 같다며 신기해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