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명강(2) (강신주등 15명共著, 21세기북스刊)
프롤로그, 주경철
16세기, 아메리카는 에스파냐의 식민지였는데 에스파냐 국왕이 죽었다는 소식이 아메리카에 전해지는데 3개월, 왕자탄생 소식은 5개월이 걸렸다. 이후 속도는 점점 빨라져 1821년 나폴레옹이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죽었다는 소식이 런던에 도착하는데 2개월이 소요되었으며,1799 조지워싱턴이 죽었다는 소식이 워싱턴에 전해지는데 7일, 1963 케네디 암살 소식은 30분 내에 미국 전 지역에 퍼졌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것이 빠른 속도로 소통되고 교환되는 시대입니다. 이런 차원으로 모든 것이 너무나 빨리 변화하는 세계에서 고리타분한 인문학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시대에 고전을 읽는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라는 생각을 안 할 수 없습니다. 세상이 빠르게 변화한다 해도 인간은 인간입니다. 기술만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에 대한 고려와 이해, 지역사회에 대한 이해등과 결부되어야 선한 결과가 도출됩니다. 인문학이 시대 변화에 발맞추지 못하는 것 같지만 빠른 변화의 흐름에 대한 좌표를 잡아주고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는 역할을 인문학이 하기 때문입니다.
스펙보다 더 중요한 자기발견: 격몽요결, 한형조
장자가 진단한 인간의 현실
깨어나면 주어지는 상황과 날마다 얽히는 씨름질... 자잘한 걱정거리에 잠 못 들다 거대한 공포에 질리는 우리네 인생, 시비를 가릴 땐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나르고, 붙잡은 것을 지킬 땐 하늘에 맹세한 듯 꿈쩍도 않는다. 그렇게 하루하루 시들어 간다. ...마침내 지치고 눌려 낡은 하수구처럼 막힌 죽음 가까이의 정신은 떠오르는 빛을 다시 보지 못한다.
잠에서 깨어나면 걱정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삶을 어떻게 행복하게 만들어 갈 것인가?
격몽요결은 1577년 이이가 집필, 학문을 시작하는 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지은 것으로 조선시대 가장 기본적인 교과서였는데 어린아이들이 읽는 책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격몽요결은 남녀노소 누구나가 읽어야할 책이다.
19세기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인문학을 ‘고전 작가들에 대한 연구’라고 말했습니다. 고전을 읽고 연구하는 것이 곧 인문학이라 한 이유는 고전을 통해서야 비로소 우리가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아프면 의사를 찾고 차가 고장 나면 카센터로 가듯 삶의 진실과 인간의 본질에 대해 알고 싶다면 현자, 성인, 고전 학자를 찾아야 합니다. 그 사람들에게서 배우고 그 사람들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인문학이며 인문학은 ‘삶의 기술’입니다.
격몽요설은 ‘삶의 기술’에 대한 유교적 입문, 혹은 기초를 담고 있는데 서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사람 노릇을 하자면 ‘공부, 學問’ 을 해야 한다. ‘공부’라고 하는 것은 무슨 남다른, 특별한 어떤 것이 아니다. 일상적 삶에서, 관계와 거래에서, 일을 적절히 처리하는 법을 배우는 것일 뿐이다. 산에서 한 소식을 하거나 세상을 지배하는 힘을 얻자고 하는 일이 아니다. 공부를 안 하면 마음은 잡초로 뒤덮이고, 세상은 캄캄해진다. 그래서 책을 읽고 지식을 찾는다. 지식이 길을 밝혀줄 것이니 오직 그때라야 정신의 뿌리가 튼튼해지고 활동이 균형을 얻는다.
우리가 매순간 어떻게 살아가고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습득하고 가르치는 것이 학문이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 학문은 인간으로 살면서 익혀야할 최초이자 최후의 기술이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유교식 학문의 정의인데 현대식 용어로는 인문학이라 부릅니다.
인문학은 몇 가지 효용이 있습니다. 첫째,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하고, 둘째, 삶을 견디는 기술을 습득시킵니다. 사실 최고의 행복은 소수의 사람들한테만 주어진 것입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자식의 짐, 자신의 짐, 부모의 짐 등 수많은 짐을 지고 인생이란 항로를 개척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자면 맷집이 튼튼해야 하는데 인문학은 맷집을 키우는 힘을 줍니다.
셋째, 인문학은 의미와 유대를 강화하는 훈련입니다. 우리는 각자 분절된 개인으로 타인과 소통이 잘 안됩니다. 가족 간에도 잘 안되고 부모 자식 간에도 그렇고 이웃 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문학은 이것을 강화시켜 주는 기술을 가르쳐 줍니다.
격몽요결은 유교 인문학의 기초로 추구하는 목표는 성숙한 인간입니다. 첫 장은 立志(입지)로 이 길을 내가 과연 갈 것인가, 내면의 가능성을 끌어올리는 것에 내 인생을 걸 것인가라는 문제입니다. 그러자면 바깥 세상에 너무 연연하지 않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제 2장은 革舊習(혁구습)으로 남과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두려워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부귀를 너무 부러워하거나 가난을 혐오하지 말고 세속잡사에 연연하지 말며 생활태도를 단정히 하고 불건전한 자기 욕구를 다스려야 한다고 충고합니다.
다음 장이 持身(지신)으로 일찍 일어나며 늦게 자고 몸가짐을 단정히 해야 한다. 신중한 언행, 고요한 평정 등이 요구되는 몸가짐으로 이 토대 없이는 지식과 학습이 사상누각이라고 경고합니다. 몸이 긴장과 균형을 놓치면 마음 또한 흐트러진다는 것이 유교의 믿음입니다. 그러한 기초위에서 인문학 훈련이 본격화 되는데 제 4장은 독서로 책과 지식의 학습이 그것입니다. 고전은 본시 어렵고 난해한 것으로 주자는 ‘책을 삼키지 말고 씹어라.’하고 권하는데 ‘현대인처럼 약삭빨라서는’ 안 되고 ‘소처럼’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