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 미움 받을 용기(1)

미움 받을 용기(1) (가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著 인플루엔셜刊)

by 물가에 앉는 마음

베스트셀러인 ‘미움 받을 용기’ 광고 카피가 멋지다. 인생살이 중의 애환이 타인의 눈치 보는 것만은 아닐 텐데 광고 카피가 마음에 드는 것은 눈치 보는 비중이 크다는 증거다.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 타인에게 미움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모든 것은 용기의 문제다. 내가 나를 위해 인생을 살지 않으면 대체 누가 나를 위해 살아준단 말인가? 누구를 위해 사느냐고 하면 당연히 나를 위해 살아야겠지. 과거의 트라우마적 사건에 현재의 내 인생을 맡길 수는 없다.


일본인 著者(저자)에 譯者(역자)는 전경아씨이다. 전경아(?), 이름 모름, 문화 심리학자이자 여러 가지 문제 연구소장인 김정운교수가 감수하고 추천사를 썼다. 전경아씨가 유명작가, 권위자가 아니기에 출판사에서 김정운교수 감수를 받는 것으로 기획하고 발간한 것으로 추측된다. 김정운교수 문체처럼 추천사가 아주 간결하고 직설적이다.


추천사

20세기 초반의 알프레드 아들러를 21세기를 사는 자기 삶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저자는 탁월한 해석을 통해 아들러 개인심리학에 기초하여 ‘인생의 과제’, ‘인정욕구’, ‘과제의 분리’, ‘타자공헌’, ‘공동체 감각’에 대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지금, 여기’를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꿈과 목적을 위해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를 위해 현재의 삶을 희생하다가 만약 미래의 꿈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그 인생은 도대체 무엇이냐는 질문도 던진다. 설사 미래의 꿈이 이뤄 진다해도 그 꿈을 위해 희생한 그 숱한 ‘오늘’은 내 인생이 아니냐는 물음이다. 인생은 과거에서 현재를 지나 미래로 이어지는 ‘선’이 아니라 ‘점’과 같은 찰나가 쭉 이어질 뿐이라는 주장이다. 지금, 현재의 순간에 주어진 내게 주어진 ‘안생의 과제’에 춤추듯 즐겁게 몰두해야 ‘내 인생’을 즐겁게 살 수 있다.

‘타인의 인정’을 얻기 위한 ‘인정욕구’를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도 흥미롭다. 남의 이목에 신경 쓰느라 현재 자신의 행복을 놓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된다. 내가 아무리 잘 보이려고 애써도 나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니 미움 받을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 누구도 거울속의 내 얼굴을 나만큼 오래 들여다보지 않기 때문이다. 남의 이목 때문에 내 삶을 희생하는 바보 같은 것이 있겠느냐는 저자의 주장은 일상의 인간관계에서뿐 아니라 페이스북에 ‘좋아요’를 죽어라 누르며 ‘싸구려 인정’에 목매어 사는 사람이라면 모두 귀담아 들을 만하다.

---------

대담 형식으로 표현한 저자의 프롤로그가 인상적이다. 이러한 형식의 프롤로그를 처음 봤는데 대화체로 엮어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알기 쉽게 풀어냈다. 본문 또한 도를 구하려는 청년과 철학자와의 대화체로 구성되었다.


프롤로그

과거 1000년의 도읍으로 번성을 누리던 도시 외곽에 사는 철학자 한명은 ‘세계는 아주 단순하며 오늘이라도 당장 행복해 질수 있다.’고 주장했다. 번뇌로 가득한 세계는 혼돈과 모순으로 가득 찼다고 생각했던 청년은 철학자의 말을 납득할 수 없어 철학자에게 물었다.

청년: 이상론이 아니라 현실론적인 이야기로 그런 주장을 하는 겁니까? 다시 말해 제 인생이나 선생님 인생 앞에 놓인 모든 문제가 단순하다고요?

철학자: 물론이네.

청년: 좋습니다. 논의에 앞서 제 방문 목적은 제가 납득이 될 때까지 의견을 나누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선생님의 지론을 철회하도록 할 생각입니다.

철학자: 허허.

청년: 바람결에 들은 선생님의 평판은 괴짜 철학자이며 이상론을 떠들고 다닌다고 합니다. 자고로 인간은 변할 수 있다. 세상은 단순하다. 누구나 행복해 질수 있다고 말씀하신 다는데 저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제가 확인해보고 잘못을 바로 잡아드리려 합니다. 불편하십니까?

철학자: 아니 환영이네 나도 젊은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배우고 싶던 참이네.

청년: 저도 선생님의 의견을 덮어놓고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지론을 옳다는 전제하에 생각해 봤습니다. ‘세계는 단순하고 인생 역시 단순하다.’는 말씀은 아이에게나 해단되는 것 같습니다. 근로 납세의무 없이 부모의 보호 하에 마음대로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어른이 되면 ‘너는 그 정도 밖에 안 되는 인간이다.’라는 매정한 현실이 펼쳐집니다.

철학자: 그래 재미있군.

청년: 그뿐 아니라 어른이 되면 복잡한 인간관계에 얽히고 수많은 책임을 떠안게 됩니다. 어린 시절 이해하지 못했던 차별, 전쟁, 빈부격차와 같은 사회의 온갖 문제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아닙니까?

철학자: 그렇지 계속해 보게.

청년: 그나마 종교가 힘을 가졌던 시대에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신의 가르침이 진리이며 세계였으니까요. 하지만 신에 대한 믿음이 빈껍데기만 남아 누구나 불안에 떨고 시기와 질투심만 가득하며 하나같이 자기만 생각하며 삽니다. 이것이 현대사회인데 선생님은 어떻게 세계가 단순하다고 보십니까?

철학자: 내 대답은 같네. 세계는 단순하고 인생도 그러하네.

청년: 어째서요? 누가 어떻게 봐도 세계는 혼돈과 모순으로 가득한 곳이 아닙니까?

철학자: 그것은 세계가 복잡한 것이 아니라 자네가 세계를 복잡하게 보고 있기 때문일세.

청년: 제가요?

철학자: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 의미를 부여한 주관적인 세상에 살고 있지. 객관적인 세계에 사는 것이 아니라네. 자네가 보는 세계와 내가 보는 세계는 달라.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세계일 테지.

청년: 선생님도 저와 같은 나라 같은 시대에 태어나 같은 것을 보고 있지 않습니까?

철학자: 그런가? 우물물을 마셔본 적이 있는가?

청년: 아주 오래전 여름날 할머니 댁에서 먹어본 차가운 우물물은 꿀맛이었습니다.

철학자: 우물물은 항상 18도를 유지한다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느껴질 뿐이지.

청년: 환경의 변화에 착각하게 된다?

철학자: 착각이 아니라 차갑다고 느끼는 것은 사실이네. 주관적인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은 바로 그런 거지. 우리는 ‘어떻게 보고 있는가.’라는 주관에 지배받고 주관을 벋어날 수 없다네. 자네 눈에 비친 세계가 복잡하고 혼돈처럼 비춰진데도 자네가 변한다면 세계가 단순하게 바뀌네. 문제는 세계가 어떠한가가 아니라 자네가 어떠한가 하는 점이라네

청년: 내가 어떠한가?

철학자: 그렇지, 어쩌면 자네는 선글라스 너머로 세상을 보고 있는지도 몰라. 세상이 어둡게 보이는 것은 당연하지. 세계가 어둡다 할 것이 아니라 선글라스를 벋으면 되네. 눈이 부셔서 선글라스를 다시 찾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선글라스를 벋을 수 있을까? 세계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자네에게 그런 용기가 있을까?

청년: 용기요?

철학자: 그래 용기의 문제라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427. 인문학명강(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