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는 놀 시간이어른들에게는 쉴 시간이 필요합니다.
자기 이해와 욕심으로는 존재와 세계의 실상을 보지 못한다고 지혜로운 이들이 알려 주셨습니다. 미래를 말하지만 가능성은 없는, 겉만 화사한 거리를 떠나야 합니다. 말을 화려하고 삶은 누추한 사람들 곁을 떠나야 합니다. 그 마음의 폐허를 떠나야 합니다. 소박하고 단순한 삶과 조용히 깊어지는 내면의 조화 말고 다른 길이 있나요? 욕심 하나씩 내려놓기, 조금 더 나누기, 더 많이 행동하고 저항하기 - 2010년이 저무는 어느 한낮에 -
사람
아무리 봐도 돈보다 사람이 작다. 사람은 값이 싸다. 귀한 물건은 많고, 귀한 사람은 적다. 사람은 아무 것도 아니다. 돈보다 더 흔해서, 돈은 아무도 버리지 않지만 사람은 쉽게 버린다. 마음도 돈으로 표현하고, 사람도 돈으로 값을 매겨서 사고판다. 싸면 사고 비싸면 안 산다. 싸게 샀다고 좋아도 하고, 비싸게 샀다고 후회하기도 한다. 사람은 그렇게, 사고파는 물건이다.
눈꽃
키 작은 마른 풀들 눈밭에 묻혀 버리고, 겨우 드러난 꽃대 위 꽃받침에, 희게 피어 있는 눈꽃 잠시 예쁘다.
추우면 오래 피어 있겠지만, 바람 거칠어도 지기 쉽고, 소한 추위에 잠시 다녀가는 한낮 햇볕에도 조금씩 시들어가겠지. 눈꽃.
우리 시대
중환자실이 그럴까?
응급실도 그렇지는 않던데...
신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고
고통의 비명이 그치지 않는데,
들을 귀도 없는 걸까
달려오는 발소리 들리지 않고
섬세하고 날렵한 손길도
없다. 보이지 않는다.
춥고, 어둡고, 적막한 날이다.
그런 하루하루. 우리시대
무서운 주인
아이들에게는 놀 시간이
어른들에게는 쉴 시간이 필요합니다.
놀지 못하고 쉬지 못하는 이유가 뭐지요?
노예가 아니라면 그래야 할 까닭이 없는데...
그렇겠지요?
우리를 부리는 무서운 주인이 있는 거지요?
누덕 국수
저녁밥 짓는다고 건너간 아내가 생각보다 일찍 건너오라고 했습니다. 수제비인지 국수인지 모를, 누덕누덕한 밀가루 반죽으로 끓인 음식이었습니다. 우리밀로 과자 만드는 수녀님들이 과자 틀로 과자 모양을 찍어내고 남은 반죽으로 ‘누덕국수’를 만드신 모양입니다. 단순하고 담백한 맛도 맛이지만, 조각보처럼 자칫 버려질 수도 있는 자투리를 살린 마음씀씀이가 고마웠습니다. 맛있게 그릇을 비우면서 천상음식의 맛을 조금 엿본 기분이었습니다.
아, 매화!
친구와 전화하다가
지리산, 매화, 저 남쪽…….
그런 단어를 들었습니다.
아, 매화!
붉은 매화 때로는 잘고 볼품없다 싶지만
매화 향을 차가운 대기 중에 쏟아내는 기운 앞에 서면 그 곁에 오래 있기 마련.
벌써! 매화 소식인가?
늘 꽃이 앞서고 소식은 늦습니다.
봄날 황홀합니다.
비 잦은 늦겨울 전원에서 연한 봄 색깔을 느끼겠습니다.
이렇게 시작하면 봄이 성큼성큼 오지요.
경칩이라 빈 논 고인 물에 개구리 알이 보입니다. 벌써!
쉬지 않는 건 시간입니다. 마음으로는 더 못 느끼고 보내는 시간이지만 몸은 빈틈없이 알고 자라고 시들고 늙습니다.
그래서, 봄날 황홀합니다. 겨울 물론 그러셨지요? 또, 여름도!
작별
느낌표처럼 와서 떠나고 나면 그만 감쪽같습니다.
법정 스님께서 그렇게 떠나셨습니다.
슬픈 소식으로 듣지 말라고 하실 겁니다.
작별 인사 올립니다.
온 힘을 다해
살아남은 생명들의 봄은 상심하지 않는다.
있는 대로 생생하고 눈부시게 아름답다
지난해 한 몸이던 가지에는 시든 잎들이 묵묵하게 달려있지만
그저 그럴 따름.
새 잎은 온 힘을 다해 이 봄을 산다.
아마, 저 상실의 빈자리를 다 채우겠다고 그러나 슬픔과 아픔은 겨울에게 주어바리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리라.
얼어 죽은 가지를 베어내고 잘라서 퇴비장에 던져 넣었습니다.
봄의 심부름이었던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