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교양강의(스티븐 핑커 外 著, 김영사刊)
인간정신
인간은 과연 대단한 작품이로다!
이성은 얼마나 숭고한가!
능력은 얼마나 무한한가!
자태와 거동은 얼마나 분명하고 경탄스러운가!
행동은 얼마나 천사 같은가!
이해력은 얼마나 신 같은가! -햄릿 2장2막 중에서 -
햄릿이 인간을 두고 읊은 송시의 진가를 알아보는 여러 방법 중에, 인간정신을 과학으로 연구하는 것이 가장 정확한 방법이 아닐까.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성, 거동, 행동, 이해력에서 우리 능력을 당연하게 여긴다. 눈을 뜨면 사물과 인간세계가 눈앞에 저절로 펼쳐진다. 어떤 욕구가 생기면 그것을 달성하려는 계획이 의식에서 구체화 된다. 팔다리를 움직이려고 하면 대상과 신체가 맞아떨어져 움직인다. 정신 작용이 워낙 빈틈없이 작동하다보니 우리는 그 환상적인 복잡성을, 일상적 기능의 경이로운 설계를 쉽게 잊는다. 과학이라는 고지에 올라서서 그 작동을 설명할 때만이 우리는 인간이 가진 여러 기능의 숭고함, 경탄스러움, 무한한 역량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다.
사람들은 심리학을 괴상하고 비정상적이며 독특한 사람들, 이를테면 신동과 사이코패스, 성자와 연쇄 살인범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심리학 연구과정의 핵심은 시각, 운동조절, 기억, 언어, 감정, 개념, 사회 등과 관련한 따분한 지식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제대로 인식하는 출발점으로 내가 추천하는 연구는 특이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가 아니다. 아니 연구대상은 아예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일들은 수행할 로봇을 만들어야 한다면 로봇에 무엇을 입력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로봇이 보고, 기억하고, 추론하고, 사람들을 대하고,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처리할 수 있을까? 그릇을 치우거나 간단한 심부름을 하는 가정용 로봇도 아직은 시중에서 구할 수 없으며, 문장을 이해하거나 컵을 쥐는 행위는 어린애도 할 수 있지만, 로봇에 그런 능력을 구현하기란 지금 기술로는 불가능하다. 간단한 기능을 갖춘 로봇 만들기에 도전해 본다면 인간정신이 얼마나 복잡한지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별 생각 없이 획득한 기술이지만, 그 기술을 구현해 인간을 닮은 로봇을 만들려면 엄청난 공학 도전이 필요한 사례를 하나보자. 인터넷계정을 개설하려면 일그러진 문자나 숫자를 식별하고 입력해야 한다. 이 자동가입 방지시스템은 이용자가 스팸프로그램이 아님을 증명하는 장치다. 인간은 일그러진 문자를 식별할 수 있지만 컴퓨터알고리즘은 당분간 불가능하다.
‘자태와 거동은 얼마나 분명하고 경탄스러운가!’ 손, 팔, 몸통의 근육을 조절하는 운동 조절과정 또한 경이로운 공학이다. 인간의 손은 용도에 따라 골라 쓰는 스위스 군용 칼과는 다르다. 우리 뇌는 열손가락의 긴장과 위치를 조절해 구부리고, 조이고, 던지고, 움켜쥐는 수십 가지 기술을 구사한다. 다리 역시 놀라운 부속품이다. 우리는 바퀴 발명을 문명진보의 이정표로 여기지만 다리는 그보다 훨씬 더 인상적이다. 바퀴가 구르려면 길이나 선로가 필요하지만 다리는 가파른 길이나 돌과 도랑이 많은 울퉁불퉁한 길도 지나간다. 그러나 이런 장점을 이용하려면 머리로 다리를 조절하며 동작을 극적으로 변환해야 한다. 몸을 앞으로 밀고 몸무게를 한쪽 다리에서 다른 다리로 옮긴 다음 불안정한 몸이 넘어지지 않도록 중심을 잡고 만약 달릴 경우에는 약간 날아가듯 몸을 앞으로 미는 식이다. 이 동작이 얼마나 뛰어난 기술인지는 우리 몸을 로봇청소기 같은 최고의 가정용 로봇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청소기는 공학의 놀라운 성취지만 문턱을 올라가지도 양탄자 가장자리 술에 엉켰을 때 빠져나오지 못한다. 운동 조절계의 설계가 얼마나 뛰어난가를 이해하는 또 다른 방법은, 계단을 뛰어오르는 의족이라던가. 우유팩을 떨어뜨리거나 찌그러지지 않게 쥐는 의수 등 인간의 기술을 모방한 보철물 제작을 떠올려 보는 것이다.
인간의 주변장치에서 중앙처리장치로 가면 로봇제작의 어려움은 배가된다. 인간의 추론에서 생각의 기본단위는 무엇일까? 우리 언어에서 말의 기초가 되는 개념을 파악하는 일은 지독히도 어렵다. 루이 암스트롱은 ‘재즈'의 정의를 질문 받았을 때 ‘그것이 무엇이냐고 묻기 시작하면 절대로 그것을 알 수 없다.’라고 대답했다. 이는 미묘하고 감정적인 개념만이 아니라 비교적 분명한 개념에도 해당된다. 논리학 교사는 ‘총각’이라는 말을 쉽게 정의할 수 있는 개념의 예로 꼽곤 한다. ‘결혼한 적이 없는 성인 남자’, 그러나 그 간단한 개념도 컴퓨터로 해석한다면 인간관계라는 방대한 지식기반에 좌우된다. 예를 들어 파티에 총각을 초대하려는 친구를 도와주기 위해 총각의 정의를 알아본다고 하자. 아서는 앨리스와 두 살짜리 딸과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공식적인 부부가 되는데 필요한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 아서는 총각인가? 밥은 영주권이 필요해 동성애자인 바버라와 합의해 결혼신고를 했고 영주권을 얻었다. 밥은 총각인가? 파이살은 고향인 아부다비에서는 법적으로 세 명의 아내를 둘 수 있지만 현재 아내가 둘이다. 그도 총각인가? 성당의 주교는 어떤가? 이 모든 경우에 앞서의 총각이라는 개념을 규정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이는 전적으로 상식의 문제다. 상식은 대단히 복잡한 추론체계라 누구도 그 복제법을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바보 질문’ 몇 개를 생각해보자.
o 어빙은 개를 차에 놔두었다. 그 개는 집안에 있는가?
o 실라는 교회에 갔다. 머리도 같이 갔는가?
o 브루스는 집안에 있다. 그는 벽 틈으로 집에 들어갔는가?
o 메이빌은 오전 9시에 살아 있고 오후 5시에도 살아 있다. 정오에도 살아 있었는가?
o 잭은 금붕어 한 마리를 샀다. 금붕어는 속옷을 입고 있는가?
컴퓨터가 이 질문에 대답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라. 컴퓨터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수천가지 사실을 알거나 추론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대상은 한 번에 한 장소에만 있을 수 있다거나 어떤 대상의 부분은 전체와 함께 움직인다거나, 딱딱한 물건은 벽 틈을 통과할 수 없다거나, 사람은 한번 죽으면 계속 죽은 상태라거나, 이외에도 수백만 개가 더 있다. 물은 무엇을 적신다거나, 누구나 어머니가 있다거나, 물건은 손에서 놓으면 땅에 떨어진다거나 등등. 그러고 보면 인간의 상식은 심오한 과학 퍼즐이다. 우리는 수십 만 가지 사실을 일상에서 축적하는가? 아니면 어려서 그것들을 교육받으며 자라는가? 아니면 대상, 정신, 생물, 인공물, 질량, 장소 같은 현실의 기본요소에서 몇 가지 핵심사실을 알고 있고, 거기에서 새로운 사실을 이끌어 내는 추론법칙을 알고 있는가?
제가 읽고 느낀 점이니 주관적 書評입니다.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본문은 ‘인간정신, 도덕이란 무엇인가?, 지구화 시대의 지구사, 세계 인권에 관한 철학적 탐구, 사이버공간에서의 자유, 진화의 증거, 종교문맹 극복하기, 질병의 과학, 에너지 자원과 환경, 문학과 생태비평’ 등 10chapter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바와 같이 이 책은 하버드대학의 교양교육과정의 교재가 아니라 과정에서 다루는 주제 중 일부일 뿐이다. 사고의 폭을 넓히고 논리성을 키우는 동시에 현실에 적용되는 교육이 하버드의 목표라고 밝히고 있다.
‘인간정신’을 이야기하면서 결론을 내리지 않고 생각해야할 여러 사항들을 던졌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방법이 아니다. 서론, 본론, 결론으로 명확히 결론을 내고 그것을 암기해 시험문제를 푸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더욱 혼란스럽다.
읽다보니 예전에 소개해 드렸던 책 ‘정의란 무엇인가’와 전개가 비슷하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소개하며 주서를 달은 내용이 있었다. 마이크 샌델이 하버드교수라 그런지 ‘하버드 교양강의’를 읽으며 느낀 점도 다르지 않아 리바이벌 해 본다.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著, 김영사刊)’
오랜만에 서양 사람이 저자인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느끼는 점이 있다. 토론식 교육의 우월성이다. 이 책은 ‘학생들에게 정의를 다룬 뛰어난 철학서를 소개하고, 철학적 문제를 제기하는 오늘날의 법적, 정치적 논쟁을 다루는 수업내용’으로 하버드 교육방식을 소개했다. 초격차(권오현著, 쌤앤파커스刊)에서는 스탠포드 교육방식을 소개했다. ‘그동안 어떻게(how)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만 교육을 받았으나, 왜(why) 이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for what)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 깨우쳐주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공자도 제자들과 문답/토론식 교육을 했으나 일제 식민이후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게(how)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만 교육받았다. 왜(why), 무엇을 위해(for what)를 알려주지 않았으니 응용력과 창조력이 뒤떨어지고 배운 것을 현업에서 활용하지 못하는 인력만을 양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