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손이 크셨고
매콤하고 쫄깃한 대구뽈찜을 좋아하지만 모든 생선 대가리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이고도 상식적으로 생선은 대가리보다 푸짐한 몸통이 맛있다. 하지만 ‘어머니는 생선대가리가 맛있다고 하셨어.’ 대한민국 모든 어머니들은 생선대가리가 맛있다고 하신다. 자녀들은 철들기 전까지 당연한 듯 생선 몸통을 먹고 어머니는 생선대가리를 드신다.
자녀들은 철들기 전까지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르면 몰상식을 깨닫게 된다. 예전의 어머님들은 할머니가 되어서야 자식들이 숟가락에 올려주는 생선몸통을 드실 수 있다. 비단 생선뿐 아니라 자식들과 남편에게 먹을 것, 입을 것을 양보해가며 한평생을 살아오신 분들이 대한민국 어머님들이다.
어머니는 손이 크셨고 당신의 입에 넣기보다 주변에 나눠주시는 것을 좋아하셨다. 명절 때 어마어마하게 부쳐내는 평양식 빈대떡은 아파트 경비아저씨부터 멀게는 은퇴하신 원로 목사님 밥상에까지 올랐다. 나이든 아들과 며느리들 무릎 관절이 시원치 않다면 종일 쪼그려 앉아 부처야 하는 빈대떡과의 인과성을 찾아야 한다. 삼형제가 빈대떡 분량을 줄이자고 매년 말씀드렸으나 돌아가시기 직전에서야 승낙하셨다.
자식들이 굴비나 과일을 아무리 많이 갖고 와도 어머님의 커다란 손을 당해내지 못했다. 굴비 세 두름이 모자라니 다음 명절에 다섯 두름, 일곱 두름 갖다 드려도 당신이 드실 굴비는 한 마리도 남지 않았다. 어머니와 몇 번이나 부딪쳤지만 평생을 그렇게 살아오셨는데 고집을 꺽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럴 때는 포기하는 것이 좋다. 의례 그러시려니 하면 분량에 맞게 알아서 나눠주신다.
미국 사는 누나가 병원 진료차 한국에 올 때도 어머니의 위시리스트를 사갖고 와야 한다. 코티 분, 레브론..., 돈이 문제가 아니라 오래된 브랜드가 되어 미국에서도 구하기 어려운 물건들이란다. 물론 어머니께서 사용하시는 물건은 아니다. 집사, 권사, 장로 평소에 신세 진 분들 모두에게 원수 갚듯 답례해야 편한 잠을 주무시는 어머니셨다.
흉보면서 닮아간다고 무의식적으로 닮아가는가 보다. 오랫동안 지켜보고 선물을 사 날랐던 누나도 만만치 않다. 한국에서 큰 수술 후 몇 달간 통원치료를 받았고 집사람이 모시고 다녔다. 집사람 왈
‘어머니하고 고모하고 똑같으셔.’
‘왜?’
‘아픈 몸을 끌고 진료 받으러 가는 길인데도 병원 지하에 있는 빵집에 둘러 의사, 간호사 먹을 빵을 사시는데 한 번도 빼놓지 않으셔.’
‘그래?’
‘미국에서 병원 다니실 때도 매번 의사, 간호사 먹을 떡을 사셨데’
물론 흉보면서 닮아가기에 시부모 모시고 살았던 집사람 모습에서 어머니 모습을 찾는 것도 어렵지 않다.
어머님 기일이 다가온다. 어찌하다보니 벌써 돌아가신지 일 년이 지났다. 아버님 제사는 기독교식으로 추모예배를 올리다보니 성묘할 때면 먹을 것 없이 예배만 봤다. 평생 교회 다니시고 봉사하셨던 어머니 생전에는 추모예배 후 아버님께 막걸리 한잔 올리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산소에 가게 되면 아버님께는 막걸리 한 병 올리는 것도 좋을 듯 하고, 어머님이 좋아하셨던 음식도 한 가지 가져갈까 생각중이나 걱정도 있다.
어머님은 주는 것을 좋아하셨고 오지랖이 넓으셨기에 그동안 옆에, 앞뒤로 누워계신 분들과 사귀셔서 음식 조금 갖고 왔다고 꾸중하시지 않을까 모르겠다.
‘애 둘째야 이것 가지고 누구 코에 부치냐? 많이 갖고 와야지.’
끄적거리다 보니 GOD의 ‘어머님께’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어머님께
GOD
어머니 보고 싶어요.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었고
남들 다하는 외식 몇 번
한 적이 없었고
일터에 나가신 어머니
집에 없으면
언제나 혼자서 끓여 먹었던 라면
그러다 라면이 너무 지겨웠어.
맛있는 것 좀 먹자고
대들었었어.
그러자 어머님은
마지못해 꺼내신
숨겨두신 비상금으로
시켜주신
자장면 하나에
너무나 행복했었어.
하지만 어머님은
왠지 드시질 않았어.
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야이야아아 그렇게 살아가고
그렇게 후회하고 눈물도 흘리고
야이야아아 그렇게 살아가고
너무나 아프고
하지만 다시 웃고
중학교 일 학년 때
도시락 까먹을 때
다 같이 함께 모여
도시락 뚜껑을 열었는데
부잣집 아들 녀석이
나에게 화를 냈어.
반찬이 그게 뭐냐며
나에게 뭐라고 했어
창피해서 그만 눈물이 났어.
그러자 그 녀석은
내가 운다며 놀려댔어.
참을 수 없어서
얼굴로 날아간 내 주먹에
일터에 계시던 어머님은
또 다시 학교에
불려오셨어
아니 또 끌려오셨어.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며 비셨어.
그 녀석 어머님께
고개를 숙여 비셨어.
우리 어머니가 비셨어.
야이야아아 그렇게 살아가고
그렇게 후회하고
눈물도 흘리고
야이야아아 그렇게 살아가고
너무나 아프고
하지만 다시 웃고
아버지 없이 마침내
우리는 해냈어.
마침내 조그만 식당을
하나 갖게 됐어
그리 크진 않았지만 행복했어.
주름진 어머님 눈가에
눈물이 고였어
어머니와 내 이름에
앞 글자를 따서
식당 이름을 짓고 고사를 지내고
밤이 깊어가도
아무도 떠날 줄 모르고
사람들의 축하는 계속되었고
자정이 다 돼서야 돌아갔어.
피곤하셨는지 어머님은
어느새 깊이 잠이 들어 버리시고는
깨지 않으셨어. 다시는
난 당신을 사랑했어요.
한 번도 말을 못했지만
사랑해요 이젠 편히 쉬어요
내가 없는 세상에서 영원토록
야이야아아 그렇게 살아가고
그렇게 후회하고
눈물도 흘리고
야이야아아 그렇게 살아가고
너무나 아프고
하지만 다시 웃고
야이야아아 그렇게 살아가고
그렇게 후회하고
눈물도 흘리고
야이야아아 그렇게 살아가고
너무나 아프고
하지만 다시 웃고